현대 사회학에서 불평등 또는 사회변동 주제를 논할 때 동원되는 주요 관점 중 하나가 갈등론이다. 개념을 한마디로 정리하긴 어렵지만, 정책개발 측면에서 바라보자면 갈등론은 사회구조 개혁을 제1 과제로 삼으려는 견해다. ‘태백산맥’ 등 조정래의 소설에 종종 등장하는 “하늘과 땅이 맞붙어 다글다글 맷돌질이나 했으면 좋겠다.”라는 민초들의 푸념은 갈등론적 시각의 한 단면을 드러낸다. 세상을 리셋하지 않으면 공정한 사회 구현이 어렵다는 생각이 그 바탕에 깔려 있다.

한동안 자주 들렸던 “이게 나라냐?” 하는 한탄 역시 구조개혁 필요성에 대한 절절한 희구를 함축했다. 그같은 정서가 모여 거대한 촛불 바다가 만들어졌다. 그 모두가 박근혜 정권의 기막힌 권력 농단에 대한 반작용이었다.

그러나, 언감생심이겠지만, 누구 말 마따나 촛불을 횃불로 만들려는 미세한 기미가 엿보이자 또 한번의 반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주말이면 경찰 차벽을 사이에 두고 촛불집회장 건너편에서 열리는 태극기 집회가 그 것이다. 촛불집회에서 “이석기 석방” “타도 자본주의”의 목소리가 더 자주 돌출할수록 태극기 집회의 규모는 커져갔다.

많은 이들이 느끼겠지만, 주변에서 태극기 집회에 나간다는 사람들이 하나 둘 생겨나고 있다. 신기한 건 그들 중 상당수가 촛불에 박수를 보냈던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한 지인이 의외로 태극기 집회에 다녀왔노라며 들려준 말은 태극기 물결이 왜 그리 넘쳐나는지 그 이유를 제시해주었다. “주변에 나가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한번 나가보았다.”는 그는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이 모두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박근혜 탄핵에 찬성한다는 TK 출신의 또 다른 지인도 자기 주변에서 태극기 집회에 나가는 탄핵 찬성론자들이 꽤 있다고 말했다.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왠지 불안해서” 태극기 집회에 나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게 요즘 분위기인 듯하다. 촛불 분위기가 묘하게 흘러 정말로 하늘과 땅이 맞닿아 맷돌질하는 상황이 올 것 같은 불안감을 느끼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뜻이다. 불안감은 조기 대선이 기정사실화되고 있는 정국 상황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불안감의 근원은 떠오르는 권력,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다. 문재인이 두려운 건 그가 상징하는 친노패권 때문이다. 특히 ‘꼴보수’들에게 친노패권은 공포의 대상이다.

사실, 친노패권이 뚜렷한 실체를 드러낸 적은 없다. 과문한 탓일 수 있겠으나, 필자의 생각엔 그렇다. 20대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전신)이 공천을 단행하면서 친박패권의 실체를 드러낸 것과 같은 사례는 발견할 수 없었다. 친노패권을 문재인과 연결시켜 생각하면 그 실체는 더욱 모호해진다. 19대 총선 당시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가 공천 과정에서 비주류의 반발을 크게 샀던 것에 비하면, 문재인의 친노패권질은 명함도 못 내밀 정도다.

실제로 문재인은 20대 총선 당시 공천 관리를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에게 넘긴 채 낭인처럼 외곽으로 떠돌았다. 그 바람에 친노의 대표급 인사들인 이해찬 의원과 유인태 전 의원은 컷오프의 수난을 겪었고, 이목희 전 의원은 가까스로 경선 진출을 보장받았으나 본선에 나가는데 실패했다. 또 다른 거물급인 문희상 의원은 기사회생해 힘겹게 6선에 성공했지만, 끝내 ‘친노’라는 죄명 탓에 그토록 원했던 국회의장직을 놓쳤다. 결과적으로 국회의장직은 친노로되 ‘덜 친노스러운’ 정세균 의원에게 돌아갔다. 

관전자 입장에서 볼 때 ‘친노’는 오히려 ‘주홍글씨’ 성격이 짙다. 친노 친문의 상징인 ‘3철’ 중에서도 문재인의 복심으로 평가받는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은 여전히 두드러진 직함 없이 그의 주변에서 잠행 중이다. 그가 전면에 나설 기미만 보이면 사방에서 무차별 공격이 쏟아지니 움치고 뛸 재간이 없는 것 같다.

양정철 뿐인가? 문재인이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민주당 전신) 대표가 된 뒤 정세균 만큼이나 ‘덜 친노스러운’ 최재성 전 의원을 사무총장 카드로 내밀었을 때도, 친노인 김경협 의원을 고작(?) 수석사무부총장에 임명했을 때도 당내에서는 한바탕씩 난리가 났었다. 당시의 당 원내대표는 비노인 이종걸 의원이었다.

안철수 의원이 친노패권에 반기를 들고 새정치민주연합을 떠났지만 그 역시, 친노패권의 실체를 명료하게 제시하지는 못했다. 그가 제3지대 구축을 외치며 '광야'로 나간 이유는 사실상 반(反)친노패권이 아니라 반문(反文)이었던 것으로 여겨졌다.

기억하기론, 뒤늦게 새정치민주연합을 뛰쳐나온 김한길 전 의원이 거의 유일하게 친노패권 정치의 개념을 구체적으로 정리해 제시한 바 있다. ▲안에서 싸우다 기운빼기 ▲오만과 독선, 증오, 기교 ▲제1 야당이란 기득권 안주 ▲굴종 강요 ▲계파 이익 추구 ▲비리, 갑질, 막말 등을 기반으로 한 정치가 그 것이었다. 그러나 이들 개념 역시 친노패권의 실체로 특정하기엔 모호한 구석이 있다.

친노패권의 가시화 사례가 종종 거론된 적도 있다. 당내 개헌론자들이 문재인을 공격하자 그들에게 거친 문자폭탄이 날아든 일, 문재인 호위무사 정청래 전 의원이 20대 총선 공천에서 배제되자 당 홈피가 다운된 일, 2014년 독불장군식의 박영선 비상대책위원장이 노선 갈등 속에 사퇴한 일 등이 그 사례들이다. 하지만 이들 사건 역시 친노패권의 전횡 사례로 치부하기엔 그 거창한 이름에 비해 지나치게 사소하거나 일회적인 것들이다.
       
실상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보수 성향의 유권자들에게 친노패권은 여전히 두려움의 대상이다. 뒤늦게 태극기 집회에 합류한 이들 중 상당수는 탄핵 찬반을 떠나 ‘좌빨’이 정권 잡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진 듯 보인다. 이같은 분석은 대통령 탄핵에 찬성하는 의견이 여전히 80%에 육박(한국갤럽 3월 3일 발표치 77%)하는 현실만으로도 충분히 뒷받침된다. 태극기 집회 현장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잘 했다는 것은 아니지만~”이란 인터뷰 멘트가 심심찮게 들리는 것 역시 그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확실히 친노패권은 실보다 명이 더 요란하게 부풀려진 측면이 있다. 굳이 정의하자면 호남을 제외한, PK 중심의 비호남권 진보정치 세력이라고나 할까?

따지고 보면 문제는 실체가 모호한 친노패권이 아니라 문재인 자신의 인식이다. 결정적인 순간마다 나타나는 그의 독선적이고 배타적이며 비타협적인 정치 성향이 친노패권의 허상을 키우고 그에 대한 공포심을 확대재생산하는 요소라는 얘기다.

정치 기상이 온화할 때는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하고, 최경환 부총리 경제팀의 구호였던 소득주도 성장을 이야기했으며, ‘천안함 폭침’을 말했던 그다. 그러나 정치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면서부터 당선되면 북한을 먼저 간다고 말하고(미국과의 선 타협을 전제하긴 했지만),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결정에 대한 무조건적 ‘승복’을 마지못해 입밖에 내고, ‘냉정’과 ‘화합’보다는 ‘분노’와 ‘배제’를 앞세우는 이가 또한 문재인이다. 문제는 그 자신의 완고함과 이념적 편향성, 거기서 비롯된 분파주의다. 그에 비하면 친노패권은 오히려 허상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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