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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가 사는 길
보수가 사는 길
  • 나이스경제
  • 승인 2017.02.20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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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佛家)의 윤회사상은 윤리를 기본 바탕으로 삼는다. 불교식 윤리의 작동 원리는 상선벌악(賞善罰惡)이다. 모든게 인과응보의 법칙에 따라 움직일 때 세상사는 공정해지고 정의로워지며 예측 가능해진다. 그 기본틀은 모든 사유와 도덕이 이성을 기반으로 이뤄진다는 서양의 이성철학과 궤를 같이한다. 그같은 원리가 응축돼 만들어진 것이 세속의 법이다. 법은 사회 구성원들의 합의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서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적용된다.

법도 진화 과정을 겪는다. 법의 진화가 이뤄지는 과정에서는 갈등이 일기 마련이다. 기존의 것을 보다 오래 유지하려는 보수와 새로운 변화를 서둘러 일으키려는 진보가 대립하는데 따라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드러나는 것이 보수의 핵심 가치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법치다. ‘악법도 법’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리는 쪽도 보수다. 법치의 틀 속에서 보수가 추구하는 또 다른 중요한 가치는 자유와 책임이다. 보수의 그같은 핵심 가치들을 재확인해준 것이 최근 새롭게 태어난 자유한국당(구 새누리당)의 새 강령이다. 한국당 강령엔 이 세 가지 가치가 빠짐 없이 명기돼 있다.

중요한 것은 그 가치들을 제대로 추구하고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느냐 여부다. 일단 허울은 갖췄으되 그 허울이 내용을 지배하느냐가 문제로 남는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 사태를 맞은 지금, 우리 사회의 보수에게 새삼 요구되는 가치는 법치다. 사회가 혼란스러울수록,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순간일수록 더 중요한 것이 법치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법치를 핵심 가치로 우선시해야 비정상의 정상화를 이룰 수 있고, 보수의 존재 의미도 재평가받을 수 있다.

보수가 법치를 무시한다면 그건 진정한 보수가 아니다. 박근혜와 한국당, 그리고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각별히 유념해야 할 진리다. 그들이 진정한 보수를 자처한다면 법치주의에 보다 충실해질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해야만 박근혜 정부가 죽더라도 대한민국 보수 만큼은 온전히 살아남는다.

요컨대, 박근혜 정권의 실정(失政)이 법대로 심판받도록 협조하라는 얘기다. 법치를 무시한 채 억지와 거짓, 궤변, 식언, 특권의식을 동원해 위기를 모면하려 하지 말라는 것이다. 지금 드러나고 있는 박근혜의 행동은 법치와 거리가 멀다. 자기 홀로 무법지대에 머물면서 법치주의의 근간인 인과응보의 원리를 묵살하는 것은 진정한 보수의 처신이 아니다.

사이비 보수, 가짜 보수가 몰락한다고 해서 진짜 보수까지 궤멸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진보가 멸망하면 안되듯 보수 또한 궤멸되어서는 안된다. 진영의 일방이 무너진 사회는 한쪽 날개를 잃은 새나 복원력을 잃은 배와 같다. 박근혜 정권이 폐족의 상황을 맞더라도 대한민국 보수는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다.

현재 시점에서 보수의 가치를 지켜낼 최후의 보루는 황교안이다. 그에겐 대통령과 비선이 공모해 저지른 희대의 국정농단 사건을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충실히 수사해, 추상 같은 사초를 끝까지 써내려가도록 지원해야 할 역사적 의무가 주어져 있다.

특검 활동기간 연장의 명분은 얼마든지 있다. 가장 큰 단초를 제공한 쪽은 박근혜와 청와대다. 박근혜가 국정 농단의 몸통임에도 불구하고 대국민 약속까지 파기하며 조사에 임하지 않고 있는 점, 청와대가 특검의 압수수색에 불응한 점 등은 특검 수사를 더디게 한 주요 원인들이다. 그로 인해 뇌물을 준 것으로 의심받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까지 됐지만, 수뢰 혐의자에 대해서는 직접 조사조차 못하는 부조리한 상황이 벌어졌다.

이재용은 뇌물 공여 혐의와 제3자 뇌물 공여 혐의를 동시에 받고 있다. 삼성이 최순실에게 제공한 돈은 뇌물 혐의, 미르 및 K스포츠재단에 제공한 돈은 제3자 뇌물 혐의의 근거가 됐다. 이 중 후자의 혐의는 박근혜와 직접 관련돼 있다.

최순실 게이트의 핵심인 뇌물 혐의 조사가 일방에 대한 심문만 수행한 상태에서 종료된다면 우리 사회는 엄청난 후폭풍에 휘말릴게 뻔하다. 사태 수습을 위해 시작된 특검 수사가 상처를 덧내는 결과만 남기게 되기 때문이다.

뇌물 혐의 수사 말고도 특검이 마무리해야 할 일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직무유기 및 직권남용, 삼성 외 기타 기업들의 뇌물 공여, 비선 진료, 세월호 7시간, 청와대의 극우단체 원격 지원 의혹 또는 혐의 등등.... 이 중 SK나 롯데 등 기타 기업들에 대한 수사는 이번 특검 수사가 ‘삼성 수사’가 아니라 ‘최순실 게이트 수사’라는 명분을 살리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지금 추세라면 이재용 관련 사건에 대한 공소 유지권은 둘째 치고 기소권조차 특검이 검찰로 넘겨야 하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상식적인 이야기이지만, 특검이 섣불리 사건을 검찰로 넘겨서는 안되는 이유들도 여럿 있다. 특검 수사 사건들이 검찰로 넘어가는 순간 모든 수사 진행 상황을 황교안과 법무장관(대행), 검찰총장 등이 보고받게 되는 현실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 과정에서 수사 상황이 박근혜에게 우회 보고될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이 자신들의 과오를 들춰가면서까지 국정 농단 수사에 최선을 다할지도 의문이다. 검찰은 정윤회 문건 파동 당시 일부 확인한 최순실의 국정 농단을 없던 일로 덮고 지나간 과오를 안고 있다. 검찰 내 우병우 사단을 둘러싼 논란, 박근혜 정부 내내 이뤄져온 검찰과 청와대 간의 편법적 인사 교류 등도 께름칙한 요소들이다.

여야가 최순실 게이트 특검법에 합의할 때 기본적으로 100일 활동을 염두에 두었다는 점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주장처럼 6개월을 특검의 활동 기간으로 정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여야는 합의 당시 ‘일단’ 그 기간을 70일로 잡았다. 나머지 30일은 필요시 추가할 수 있다는게 당시 여야 합의의 정신이었다.

특검법 개정안 국회 처리를 통한 특검의 활동 기간 연장 방안은 여러 모로 번거롭고 성사될 확률이 특별히 높을 것 같지도 않다. 대통령 권한대행의 상식적 판단에 의한 기간 연장 승인이 가장 효율적이고 깔끔한 방법이다. 그렇게 할 때 비로소 보수가 보수다워지면서 모처럼 박수도 받을 수 있다. 그게 곧 대한민국 보수가 사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