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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실접신’ 대통령의 과제
‘순실접신’ 대통령의 과제
  • 나이스경제
  • 승인 2016.10.31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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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실접신’

최순실씨의 '말씀자료' 첨삭 사실이 대통령의 대국민사과를 통해 확인된 다음 부산의 한 지하철역 출입구 계단에는 이 문구가 들어간 대자보가 나붙었다. 최순실 파문을 비웃으며 세태를 풍자한 이 대자보 내용은 지난 26일 하루 종일 인터넷을 떠돌며 눈길을 끌었다. ‘나라 꼴이 무지개 같아서 감탄 중인 젊은이’가 쓴 대자보 내용을 읽어가다 ‘연설은 순실접신’이란 부분에 이른 순간 전율이 느껴졌다. 무언가 섬찟함이 뇌수와 척수를 거쳐 전신을 훑고 내려가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접신(接神)은 사람 몸에 다른 이의 영혼이 깃들이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신내림’ 또는 ‘강신’이란 말로도 통한다. 지금은 달라졌지만 불과 20~30년 전만 해도 우리 주변에서 접신한 무당을 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접신한 무당은 온몸에 경련을 일으키며 날이 선 칼날 위를 걷거나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죽은 이의 혼령과 접신한 무당은 망자의 목소리를 그대로 뱉어내며 유족들의 심금을 울리기 일쑤였다. 그럴 때면 유족들은 또 한번 가슴 속 앙금으로 남아 있는 회한을 눈물로 씻어내며 카타르시스를 얻곤 했다.

접신한 무당에겐 자기 의식이 없다. 탈혼(脫魂) 상태는 아니지만 그의 정신을 지배하는 건 망자의 혼이다. ‘순실접신’이란 구절이 섬뜩하게 다가왔던 건 과거에 종종 보았던 접신한 무당의 모습이 연상됐기 때문이었다. ‘순실접신’은 요인 즉, 최순실의 영혼이 박근혜 대통령의 몸에 깃들어 몸 동작과 말을 멋대로 지배했다는 상징적이고 함축적 의미를 담은 촌철살인의 표현이었다.

그런 쪽으로의 해석을 강제하는 찌라시 수준 이상의 정황들도 몇몇 있었다. 과거 이명박 대선 후보 캠프에서 박근혜 자료 담당이었던 정두언 전 의원은 박근혜와 최순실의 관계를 “그냥 매직”이라 표현했다.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박근혜가 “사교(邪敎)에 씌었다”고 단정하듯 말했다.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 EG 회장은 “누나가 최순실 정윤회 이야기만 나오면 최면이 걸린다.”고 말하곤 했단다.

박근혜가 국정의 문외한인 최순실이 적어준 문장을 공식 연설문으로 채택하고, 그 글을 그대로 읊조렸다는 것이 사실로 드러났으니 ‘순실접신’이란 표현이 나온 것은 결코 무리가 아니다. 만약 최순실이 아버지 최태민의 영생교(혹은 영세교) 계승자라면 ‘순실접신’은 비유적 표현 이상일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워진다. 박지원의 말대로 박근혜가 최순실의 사교에 씌어 대통령직을 수행했다면 탈혼 일보직전의 신내림 상태에서 언행을 이어왔다는 얘기가 된다. 거기까지는 믿지도 않거니와 믿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한심한 나라 꼴에 절망한 사람들은 이제 박근혜가 낭독한 대국민 사과문조차 최순실의 혼이 깃든 글이었을지 모른다는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다.

일반 종교와 달리 사교나 미신이 위험한 것으로 간주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그 속에는 신앙만 있을 뿐 윤리관이 없다. 오직 개인을 위한 기복(祈福)만 있을 뿐 사회나 국가 공동체에 대한 고려가 없다. 이는 오늘날 일부 종교가 종교다움을 잃어가고 있는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사교 신봉자란 가정 하에 따져보면, 최순실의 행동 역시 이같은 분석 틀에 맞아 떨어진다. 국가 공동체의 정의를 훼손하고, 국기를 흔들면서 오직 자신과 자기 주변 인물들의 이익만을 극대화했으니 하는 말이다.

미신이 무작정 나쁜 건 아니다. 그 자체가 문화일 수도 있다. 단, 거기엔 적용 범위가 사생활 영역을 넘지 않고, 공동체 질서를 흔들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어야 한다. 이제는 동남서북 방향별 손의 위치를 가릴 줄 아는 어른들도 거의 없고, 손 있는 날 새벽 장손을 깨워 온 집안의 문을 먼저 여닫게 하는 완고한 노인들도 없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손이 사방 어디에도 없는 음력일 끝수 ‘9’자 ‘0’자인 날은 길일로 대접받는다. 그 날 이사를 하고, 결혼도 하는게 변함 없는 우리네 일상이다. 손 없는 날 대사를 치러 마음 속 불안감을 잠재울 수 있다면 그걸 나쁘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미신을 개인의 사생활을 넘어 국가의 운영원리에 적용하려 했다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설사 박근혜가 최순실의 생각을 신앙 수준으로 받들고 존중했다 하더라도 그 신앙이 자연인 박근혜가 아닌 대통령 박근혜의 행동을 좌우했다면 그건 온 나라가 자지러질 일이다.

그 간의 ‘순실접신’이 우리나라에 미친 영향은 막대했다. 국가의 운영 원리는 엉망이 되고 말았다. 청와대 실세들은 직속상사인 대통령 비서실장 모르게 최순실과 접촉했고, 사인인 CF감독이 문화체육관광부 행정을 농단했으며, 정부 기관장은 사인들의 조종에 의해 이권을 내놓으라고 민간기업을 겁박했다. 학생이 교수를 갈아치우고 총장 이하 대학 구성원 전체를 농락하는 일도 벌어졌다. 오로지 대통령의 혼을 지배한 최순실과의 거리가 대한민국 권력 서열을 결정할 뿐이었다.

‘순실접신’으로 흐트러진 국가 질서를 바로잡는 데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그 해답은 이미 나와 있다.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문제는 박근혜가 그 답을 해결방안으로 채택하느냐에 달려 있을 뿐이다. 워낙 쟁쟁한 전문가들이 난국 수습의 모범답안들을 쏟아내고 있는 마당에 여기에서 어설프게 새 제안을 말하는 것은 무의미하고 주제 넘는 일이라 여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마디 보태려 하는 것은 이젠 정말 ‘순실접신’에서 벗어나 여당 비주류와 야당들의 혼을 접신하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이다. 친박 일각과 일부 보수 언론에서는 지금도 청와대를 향해 허울 뿐인 책임총리제 카드를 제시하며 모처럼 마련된 혁신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그같은 기류는 청와대 안팎에서 책임총리제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아직도 대통령이 총리 지명권 행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음을 읽게 하는 대목이다.

초유의 사태엔 초유의 해결 방법이 동원돼야 하는 게 맞다. 그 답은 국회가 추천하는 책임총리 주도 하의 거국내각 구성일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어야만 복마전으로 변해버린 문화부의 수장을 혁신적 인물로 바꾸고, 그 안에서 벌어진 비선들의 전횡을 낱낱이 밝힌 뒤 잘못을 바로잡을 길도 열리게 될 것이다. 대통령 스스로, 상설특검법에 의한 특별검사가 아닌, 제3자가 지명하는 특검에 의해 조사받기를 자청해야 한다는 것은 재론할 필요도 없다.

현재의 국정 혼란상은 이전 같으면 군부가 들썩였을 만큼 심각한 상태라 할 수 있다. 대통령이 스스로 혼을 개조하겠다는 정도의 결단을 내려야 하는 이유다. 박근혜에게는 지금이 실정을 조금이라도 만회할 마지막 기회다. 이 기회마저 그냥 흘려버린다면 대한민국 18대 대통령이 이끈 정부는 두고두고 ‘최순실 정부’라는 비아냥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