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 리스트에는 ‘김영우’란 이름이 빈번히 오르내렸다. 새누리당 소속 김영우 의원은 국회 국방위원장이다. 당위(當爲)로 치면 국회와 대한민국 정치의 핵심축으로서 주목받아야 할 자리가 국회 상임위원장이다. 하지만 그건 우리의 정치현실과는 거리가 먼 얘기다. 우리의 정당정치 현실에서 국회 상임위원장직은 3선급 이상 의원들에게 적당히 ‘가오’를 세워주기 위해 배분되는 자리일 뿐이다.

반면 없어도 무방한 - 적어도 필자 생각은 그렇다 - 당 대표 등 당직자들이 주목받는게 우리 정치계의 기이한 현상이다. 그러다 보니 국회 운영의 핵심축인 상임위원장은 뉴스 메이커로서의 역할을 하기 힘들다. 정치인들에게 상임위원장은 존재감을 키우는데 크게 도움되는 자리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니 정치인으로서 성장하려면 어떻게 해서든 당내에서 지지세를 확보해 최고위원 자리 하나 정도는 꿰어차야 하는게 우리의 정치 현실이기도 하다. ‘봉숭아 학당’ 소릴 들을망정 그 안에서 지지고 볶으며 모두발언을 쏟아내거나, 하다 못해 ‘봄날은 간다’라는 노래라도 불러야 지명도를 높이는데 도움이 된다.

그런 우리네 정치판에서 김영우가 국방위 국정감사(국감) 참여 결정으로 사고를 쳐도 단단히 치자, 그의 이름이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 리스트에 오르내렸다. 인터넷 포털의 메커니즘을 감안할 때, 김영우가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내린 것은 역설적으로 그가 일반 유권자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음을 방증한다. 신문과 방송에서 갑자기 ‘김영우’ ‘김영우’ 해대니 그가 누구인지 궁금해 검색창에 ‘김영우’를 입력한 사람이 그만큼 많았다는 얘기다.

실제로 실시간 검색어 리스트엔 유명인의 이름이나 널리 알려진 관념어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유명인의 이름이 오르내리는게 일반적이지만, 그 반대인 경우도 많다. 특히 무명 인사가 이름을 올리는 경우라면 대부분 그의 정체에 대한 일반의 호기심이 반영된 결과라고 보는게 옳다. 관념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를테면 유명 인사가 갑자기 사의를 표명했다는 속보가 쏟아져 나올 때 ‘사의’란 단어가 실시간 검색어 상위를 차지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한글 세대 누리꾼들이 ‘사의’란 한자어의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검색창을 이용한 결과다.

김영우는 새누리당의 국감 보이콧 당론을 깨고 국방위 국감을 강행함으로써 정치인으로서의 존재감을 키웠다. 새누리당 의원 중에는 김영우의 행동을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한 일탈”이라 비꼰 이도 있었다. 그같은 비난에 동의할 수는 없지만, 결과적으로 이번 일이 정치인 김영우의 존재감을 뚜렷이 해주었다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김영우의 행동을 바라보는 관점은 여러가지일 것이다. 보는 이에 따라 관점은 180도 달라질 수 있다. 새누리당 일부 인사들의 악의에 찬 평가가 있는가 하면, 김영우의 행동을 ‘소신’과 ‘용기’로 찬양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의견이 분분한 만큼이나 이번 사태가 김영우 본인의 장래에 미칠 효과를 긍-불긍으로 간단히 분리해 전망하기도 쉽지 않다. 굳이 그의 행동을 평가하려 한다면 지금까지 그가 걸어온 길을 토대로 삼는게 가장 합리적인 자세일 것이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무수저’를 자칭했지만, 김영우 역시 그 못지 않은 무수저급이다. 스스로 밝혔듯이 그의 아버지는 환경미화원이었다. 그런 김영우에게 결혼과 사회생활의 출발인들 유별날 리 없었다. 사생활 이야기라 조심스럽긴 하지만,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출신인 그는 재학 시절 소문난 캠퍼스 커플의 한쪽 당사자였다. 그 상대는 지금 그의 배우자가 되어 있다. 필자가 아는 한 그의 배우자 역시 흙수저 출신이다. 한빈한 시골의 여염집에서 “공부 잘하는 것 외엔 길이 없다.”라는 아버지의 끝없는 다그침 속에 이를 악물고 공부해 서울로 대학을 갔고, 거기서 같은 학과, 같은 학번의 김영우를 만나 평생의 연을 맺었다.

김영우의 출생지가 현재의 지역구인 경기도 포천이기도 하지만, 흙수저끼리 만난 그들 부부인지라 결혼 후 서울살이를 할만한 형편은 못되었다. 게다가 김영우의 사회 진출 과정에서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의 처가 수더분한 성격의 소유자가 아니었던들 그의 인생은 꽤나 꼬여들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김영우는 당내에서 비박계 개혁파로 분류된다. 그가 이명박계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정치 성향은 다르지만 그가 자신 못지 않은 흙수저 출신의 이명박 전 대통령과 정치적 동지가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던 듯 보인다.

그러나 그가 지금까지 정치인으로서 보여온 행동을 계파색을 덧칠해가며 이해하려 하는 건 잘못이라는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가 평소 계파보다는 명분을 행동 기준으로 삼아왔다고 보기 때문이다. 김희옥 혁신비상대책위원회 체제에서 비대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유승민 복당을 주도했던 일도 그런 차원이었던 것으로 이해한다. 당시 김영우가 내세운 것은 ‘민심과 양심’이었다. 이번 국감 강행의 명분으로 그가 내세운 것은 ‘소신과 양심’이었다.

중요한 사실은 그의 결정이 번번이 유권자들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았다는 점이다. 당내 주류들의 눈엣가시 같은 존재가 된 그의 독불장군식 행보가 장차 그의 정치 행로에 어떻게 작용할지는 알 수 없다. 이번 일이 유승민 복당 주도 이상으로 친박의 심기, 나아가 청와대의 심기를 건드렸으리라는 것은 불문가지다. 친박들의 의도대로 국감이 한동안 보이콧됨으로써 웃을 사람들이 누구였는지를 가늠해보면, 이는 합리적 추론이다.

일주일여에 걸친 새누리당의 국감 보이콧 사태는 정부의 실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물타기용으로 기획됐다는 의혹을 면하기 어렵다. 이전처럼 국감장에서 야당의 공격을 맞고함으로 받아넘기는 방탄국감 전술만으로는 너무나 예민하고도 묵직한 사안들을 헤쳐나가기 어렵다고 판단한게 그 배경이었을 것이다. 미르 및 K스포츠재단 파동 및 이석수 특별감찰관 퇴임 사태 등의 메뉴들이 한결 같이 최고 권력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돼 있다는 점은 그같은 추론을 넉넉히 뒷받침해주고 있다.

김영우의 행동은 백번 옳았다. 새누리당 친박들이 그의 행동을 존재감 키우기로 보는 것 자체가 그 점을 입증해주었다. 그의 행동이 민심과 부합한다는 점을 친박 스스로 인정하지 않고서는 드러낼 수 없는 시각이었다.

김영우의 행동에 정말로 정치적 계산이 있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이 것 하나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설사 김영우의 행동이 포퓰리즘 차원에서 나왔다 할지라도, 국민 혈세를 자기의 쌈짓돈 꺼내쓰듯 하는 방식의 포퓰리즘에 비하면 백배 천배 유익하다는게 그 것이다. ‘맨입’ 의장과 그 의장에게 “야!”라고 소리지르는 여당 원내대표, 성격조차 불분명한 해외 출장 때 3당 원내대표들의 비즈니스 항공권 이용은 괜찮고 의장 부부의 일등석 탑승만 문제가 있는 듯 악다구니 쓰는 사람들이 날뛰는 정치판에서 김영우만한 정치인을 찾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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