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말의 정치가이자 문장가였던 김매순은 ‘응객’(應客)이란 글을 통해 ‘기세의 설’과 ‘이도의 설’을 비교하며 군자의 덕목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응객’은 그가 손님에게 이야기하는 형식을 빌려 경세가들이 갖추어야 할 기본 자세를 강조한 글이다. 요즘 말로 풀이하자면 ‘기세의 설’은 ‘형세의 논리’, ‘이도의 설’은 ‘도리의 논리’ 정도가 될 것이다.

‘형세의 논리’는 세력에 따라 이합집산이 이뤄지는 시속의 이치를 가리킨다. 반면 ‘도리의 논리’는 시속의 이해를 초탈한 자만이 취할 수 있는 논리다. ‘응객’은 ‘형세의 논리’에 갇혀 자기의 주장만 펴며 이해를 다투는 것은 위대한 경세가의 자세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면서 김매순은 ‘형세의 논리’가 ‘도리의 논리’와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충고한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대권 도전 의지를 재확인했다. ‘형세의 논리’가 그의 결심을 굳히는데 크게 작용했다고 여겨진다. 그 중요한 기반은 다시 고개를 쳐들기 시작한 충청대망론이다. 반기문은 현재로서는 가장 확실하고도 거의 유일한 충청대망론의 불쏘시개 감이다. 충청권 출신의 잠룡 중에는 안희정 충남지사도 있고 정우택 새누리당 의원, 정운찬 전 총리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말 한마디로 충청대망론을 활활 타오르게 하기엔 아직은 역부족이다.

유엔 수장으로 근 10년 세월을 보낸 반기문은 확실히 그들과는 유가 달랐다. 최근 미국을 찾은 정세균 국회의장 등 의회 지도자들에게 그가 말 몇 마디를 건네자 국내 정치권이 또 한번 술렁이기 시작했다. 올해 말로 사무총장 임기를 마치면 내년 1월 중순 이전에 귀국하겠다, 귀국한 뒤 박근혜 대통령 등 정치 지도자들을 찾아가 귀국보고를 하겠다는 것 정도가 그가 말한 내용의 전부였다. 맥락 없이 뚝 떼어놓고 보면 의당 나올 수 있는 말이다. 그렇지만 반기문은 지난 5월 귀국했을 때 향후 자신의 귀국 시점이 곧 대권 도전 행보의 시작점임을 시사했다. 이번에 나온 그의 발언은 자신의 권력의지가 여전히 식지 않았음을 확인해준 것이었다.

“유엔 수장으로서 얻은 경험과 지혜를 미래를 위해 써달라.”는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덕담 섞인 부탁에 대한 답변도 거침이 없었다. “그런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대놓고 맞장구를 쳤단다. 불감청고소원이란 취지로 읽히는 말이었다. 정진석 역시 충청 출신이다.

반기문의 말에 국내에서는 곧바로 충청대망론이 다시 한번 타오르기 시작했다. 김종필 전 총리는 이번에 반기문에게 대권 도전을 부추김으로써 타는 불에 기름을 부었다. 이로써 충청대망론은 이제 충청권을 넘어 대한민국 정치권 전체의 중요한 의제가 되어버렸다.

그렇다면 과연 충청대망론은 대한민국 발전에 유용한 것일까? 이걸 그냥 무비판적으로 수용해도 좋은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이에 대한 필자의 대답은 단연코 ‘노’이다.

그 첫째 이유는 반기문의 대권 도전으로 대한민국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으리라는 나름의 신념이다. 필자는 앞서 이 난을 통해 반기문이 귀국한 뒤 상처받지 않은 ‘전직 유엔 사무총장’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는 뜻을 밝혔었다. 정파나 정권을 초월한, 그런 반기문이라야 통일시대를 주도해갈 대한민국의 소중한 자산으로 온전히 보존될 수 있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 견해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충청대망론 자체가 지닌 정치적 함의가 발전적이지 못하다는 점도 필자가 반기문의 대권 도전을 부정적으로 여기는 중요한 이유다. 충청대망론이란 말에는 필연적으로 지역주의 냄새가 배어들 수밖에 없다. 과거 김종필이 영호남에 비해 결집도가 약한 충청도 민심을 자극할 목적으로 구사했던 ‘핫바지’라는 표현과 정확히 연결되는 용어가 충청대망론이다.

충청대망론이 통하리라 믿는 이들이 자주 내세우는 선거사적 사실이 하나 있다. 군부 출신이 정권을 내놓은 이후의 모든 대선에서 충청도를 장악한 사람이 대권을 차지했다는 게 그 것이다. 실제로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은 모두 충청권에서 승리를 거두고서야 당선의 영예를 안았다. 불과 108만표 남짓한 차이로 당락이 갈린 지난 대선에서도 그 같은 공식은 어김 없이 통했다. 당시 박근혜는 충청권에서 문재인 후보에게 약 28만5900표를 더 얻었다. 충청권 승리가 결정적 승인이었음을 짐작하게 해주는 결과였다. 

이같은 사실들만 놓고 보면 충청권에서 승리하는 자만이 왕좌를 차지한다는 논리가 성립될 수 있다. 이는 어느 정도 타당한 논리이기도 하다. 충청권이 그 동안의 대선에서 캐스팅 보트를 행사해온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충청권 유권자들은 어느 한쪽을 일방적으로 지지하지 않는 속성을 지녔으면서도 절묘하게 승패를 가름하는 역할을 도맡아 왔다. 반기문이 출마한다면 그런 충청권에서의 결과는 뻔하지 않겠느냐는 게 충청대망론을 선창(先唱)하는 이들의 논리일 것이다. 인구 수에서 충청이 호남을 앞선 것을 빗대 등장한 ‘영충호 시대’라는 용어도 충청대망론자들의 신바람을 부채질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은 충청대망론엔 중요한 전제가 따른다는 점이다. 상호 대립적인 영호남 중 어느 한 지역을 일부나마 장악해야 한다는 게 바로 그 것이다. 그같은 논리는 소위 ‘충청-TK연합 정권론’의 자양분이 되고 있다. 충청-TK연합 정권론은 반기문이 친박의 러브콜을 받고 있는 지금의 현실과 맞아떨어진다. 반기문이 지난 5월 경북 안동의 서애 유성룡 생가에 들러 그의 덕을 흐드러지게 칭송한 것도 연합 정권론과 맞물려 의미심장하게 해석되고 있다. 이 정도면 충청과 TK라는 지역적 토양을 밑천 삼아, 지역주의를 업고 대권 야욕을 달성하려 한다고 비판해도 할 말이 없을 듯하다. 이는 반기문 스스로 대권 도전 의지를 처음 공표하면서 강조한 ‘통합’의 메시지와도 어긋나는 행태다.

반기문이 정치 공학적으로 ‘형세의 논리’만을 따져 대권 도전에 나선다면 성공 가능성도 없을 뿐더러 대한민국의 통합은 물론 남북의 통합도 미뤄지기 십상이다. 이제 지역주의는 극복의 대상일지언정 기댈 언덕일 수 없는 시대가 됐다. 대구에서 더불어민주당의 김부겸 의원이, 호남에서 새누리당의 이정현 의원이 당선됐다는 사실은 누가 뭐래도 시대 변화를 알리는 연역적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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