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터키에 대한 압박 강도를 한층 더 높이기 시작했다. 양국 간 분쟁의 불씨였던 미국인 목사의 석방도 이젠 관세 폭탄을 철회하는 수단이 되지 못하리라는 것을 공언한 것이다.

터키산 철강 및 알루미늄 제품에 고율의 관세를 처음 부과할 때만 해도 미국은 그 이유로 미국인 목사 앤드루 브런슨씨의 구금을 제시했었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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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강화된 입장은 15일(이하 현지시간)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의 입을 통해 공개됐다. 샌더스 대변인은 “터키가 구금중인 미국인 목사를 석방하더라도 터키산 제품에 대한 관세 철회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터키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지적과 함께였다.

샌더스 대변인의 발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나온 만큼 사전에 내부 논의를 거쳐 치밀하게 준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샌더스의 발언은 터키에 대한 미국의 압박이 간단히 끝나지 않을 것임을 예고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의 이같은 자세는 터키가 미국의 관세 부과 조치에 정면 대응키로 결정한 직후에 나왔다. 앞서 터키는 미국의 관세폭탄을 고스란히 되돌려주는 내용의 맞대응 조치를 발표했다. 그 내용은 미국산 자동차(120%)와 주류(140%), 잎담배(60%) 제품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한다는 것이었다.

미국 측의 ‘목회자’ 주장과 달리 터키는 브런슨 목사가 미국의 스파이라는 심증을 굳히고 있다. 그가 잠입 활동을 하면서 2016년에 발생한 터키의 쿠데타에도 개입했다는 게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주장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미국의 압박이 시작된 이후 터키리라화 가치가 폭락하는 등 금융위기 상황을 맞고 있지만 대미 강경 자세를 누그러뜨리지 않고 있다. 자신의 장기집권 기반인 강한 민족주의 기조를 유지함으로써 리더십을 잃지 않겠다는 의지가 그 배경에 깔린 것으로 보인다.

터키발 리스크가 신흥국으로 번질 조짐이 나타날 만큼 상황이 심각함에도 불구하고 그가 국제통화기금(IMF)에 도움을 청하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분석가들은 에르도안 대통령이 IMF에 손을 벌리는 순간부터 사실상 미국의 통제 하에 들어간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금력을 바탕으로 IMF를 좌지우지하는 미국이 IMF를 통해 터키에 치욕적인 요구를 하리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에르도안의 생각이 아니더라도 IMF는 터키에 구제금융을 해주는 대가로 복지 축소와 증세 등 에르도안의 정치적 입지를 불안하게 할 요구를 쏟아낼 가능성이 크다. 이를 잘 알고 있는 에르도안 대통령은 IMF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정치적 주권 포기”라 주장하며 그 가능성을 일축하고 있다.

현재의 터키 금융불안 현상이 미국의 압박 때문에 생긴 것만은 아니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에르도안의 장기 집권(총리 11년, 대통령 4년 재임) 기간 동안 터키경제는 만신창이가 됐다. 대대적인 토목 건설을 통해 사회간접자본 구축 사업을 벌이느라 대외 부채를 지나치게 끌어온 것이 화근이었다.

이번 위기를 몰고온 근본 원인도 따지고 보면 과도한 부채로 인한 채무상환 능력 부족이었다.

이로 인해 터키가 결국은 IMF에 손을 벌릴 수밖에 없을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미 유럽은행들이 등을 돌린 마당에 IMF를 제외하고는 터키가 딱히 도움을 청할 곳이 없기 때문이다.

15일 현재 터키리라화 환율이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갔지만 분석가들 사이에서는 터키발 위기가 단기적 악재로 끝나지 않을 것이란 평가가 주를 이룬다. 이들은 터키의 금융위기가 취약한 신흥국 경제로 전이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조짐은 이미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14일 인도 루피화 가치가 사상 최저치를 기록하며 달러당 70루피대에 진입한 것이나 아르헨티나 페소화 가치가 이날 하룻새 2% 이상 급락한 것 등이 대표적 예다.

신흥국에서 나타나는 이같은 현상은 터키 사태로 긴장한 외국인 투자자들이 긴급히 외화 자금을 회수하면서 빚어지고 있다. 악재가 또 다른 악재를 낳는 형국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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