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또 국제무역기구(WTO) 탈퇴 카드를 흔들어보였다. 다시 한번 불만을 토로하며 탈퇴 가능성을 암시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행동은 현재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미·중 무역전쟁과 연관돼 있다.  WTO가 미국의 행보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인식이 그 배경이다. 보다 큰 틀에서는 미국 우선주의 강화에 대한 의지가 바탕에 깔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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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은 30일(현지시간) 블룸버그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WTO 탈퇴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는 “그들(WTO)이 태도를 개선하지 않으면 탈퇴하겠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말한 ‘그들의 태도 개선’은 중국에 대한 편들기를 중단하고 미국의 입장을 지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트럼프의 이번 발언은 다음달 초부터 중국산 수입품 2000억 달러어치에 대해 새로이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려는 움직임이 구체화되는 가운데 나왔다.

미국은 현재 중국산 제품 500억 달러어치에 대해 25%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이 같은 방식으로 맞대응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미 무역대표부(USTR)에 추가로 2000억 달러어치의 중국산 제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앞서 중국은 관세폭탄 선제공격이 있은 뒤 미국을 WTO에 제소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WTO 탈퇴 협박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는 대선 후보 시절부터 WTO에 대해 노골적 불만을 토로해왔다. WTO가 세계 양강중 하나인 중국을 여전히 개발도상국으로 취급하면서 각종 우대 혜택을 부여하고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중국에 대한 불만은 오래 전부터 미국 외 회원국들로부터도 나오고 있다. 특히 중국 정부가 자국 기업들에 대해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하면서 그들 기업으로 하여금 해외 투자를 하지 못하도록 규제를 가하고 있다는 게 불만의 주 내용이다. 유·무형의 비관세 장벽을 통해 수입을 규제하는 중국 특유의 행위 역시 도마 위에 올라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WTO에 대해 지닌 불만은 보다 근본적인 차원의 것으로 보인다. 선진국들에 대해 더 많은 규제를 가하고자 하는 게 국제교역 질서를 책임진 다자기구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즉, 균형을 갖춘 공정한 룰을 강조하는 WTO의 존재가 그가 내세우는 미국 우선주의 실현에 장애가 된다는 뜻이다.

주지하다시피 트럼프 대통령은 다자기구나 다자간협정에 의한 게임을 선호하던 전임 버락 오바마 대통령 등과는 다르다. 오직 힘의 논리를 앞세운 양자간 협정을 선호한다. 그런 만큼 그에게는 고른 혜택을 강조하며 국제무역 시스템의 기초를 제공하는 WTO가 달가울 리 없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는 미국 행정부 내 강경파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미국 교역 당국인 USTR을 이끌고 있는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대표도 그중 한명이다. 라이트하이저 대표는 중국을 WTO에 받아들인 것이 실수였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그는 미국이 WTO에 대해 더욱 공격적인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인물이기도 하다.

그가 주장하는 불만의 요지는 자유시장경제 체제를 갖지 않은 중국과 공정경쟁을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함에도 불구하고, WTO의 분쟁 해결 시스템이 미국의 반덤핑 제재를 견제함으로써 미국의 주권을 침해한다는 것 등이다.

블룸버그는 미국의 WTO 탈퇴가 세계 경제에 무역전쟁보다 훨씬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WTO 탈퇴가 연쇄 탈퇴를 부르고 결국 이 기구에 의해 유지돼온 세계 교역질서가 붕괴되는 현상으로 이어질 것이란 우울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현재 WTO는 회원국 3분의2 찬성과 각종 제약 부여 등 가입 조건을 까다롭게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탈퇴에 대해서는 사실상 속수무책이다. 회원국 각자는 6개월 전에 통보만 하면 기구 탈퇴가 가능하다.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유네스코(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와 유엔인권위원회에서 차례로 탈퇴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유엔에 대해서도 갖은 불만을 토로하며 분담금 삭감을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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