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이 근래 보기 드물었을 정도의 강도로 신흥국들을 향해 경고음을 발했다. 신흥국들에서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못지않은 대규모 자본 이탈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게 경고의 요지다.

비록 최악의 시나리오라는 전제가 달리기는 했지만, IMF의 이번 경고는 예사롭지 않은 수준이어서 눈길을 끌었다. 이같은 경고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개막될 세계은행과의 연차총회를 앞두고 10일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를 통해 공개됐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 [사진 = 연합뉴스]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 [사진 = AFP/연합뉴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IMF는 경고에 무게를 실으려 했던 듯 신흥국들의 자본 유출 규모까지 추산해 공개했다. 중국을 제외한 신흥국들로부터 유출될 수 있는 자본의 규모가 1000억 달러(약 113조4000억원)에 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IMF는 또 부채 상환 문제로 곤경에 빠져 있거나 그렇게 될 위험이 큰 저소득 국가들의 비율이 5년 전엔 25%였으나 지금은 그 비율이 45% 이상으로 확대됐다고 집계했다.

IMF는 경고음을 발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덧붙였다. 아르헨티나 같은 일부 신흥국이 마이너스 성장을 하겠지만 신흥국 다수는 때때로 닥칠 통화가치 하락 사태를 이겨내며 경제성장을 이뤄나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결국 IMF의 경고는 대규모 자본 유출이 발생할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한번 발생하면 엄청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려는데 목적을 둔 것으로 보인다.

그같은 의도를 함축하듯 IMF는 향후 발생할 위험성이 있는 자본유출 사태를 ‘꼬리 위험’(Tail Risk)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꼬리 위험’은 현실화될 가능성은 작지만 한번 실현되면 엄청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험을 가리키는 말이다.

IMF의 경고는 웬만큼의 기초체력을 갖춘 신흥국들은 별 문제 없이 사태를 헤쳐나갈 수 있지만 아르헨티나나 터키 등처럼 기반이 취약한 신흥국들은 급격한 자본 이탈을 경험할 수 있고, 자칫 리스크가 신흥국 전반으로 확산될 수 있음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IMF는 그같은 상황이 초래되면 외부 자금에 의존하는 국가나 기업들은 큰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근 국제사회에서는 몇몇 신흥국들이 급격한 통화가치 하락에 의한 자본 유출 위기를 겪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환율위기로 인해 IMF에 570억 달러 규모의 구제금융을 신청했고, 최근엔 파키스탄도 IMF에 도움을 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럽에서도 터키가 미국과 대립하는 과정에서 고율의 철강관세 폭탄을 맞으면서 통화가치 하락에 신음하고 있다.

WSJ는 이들 신흥국에서 이탈한 자본이 미국으로 유입됐다고 전하면서, 미국의 급격한 정책금리 인상이 이같은 사태를 일으킨 측면도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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