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후반의 세입자였던 A씨는 지난 봄 전세보증금 문제로 골머리를 썩었다. 서울 금호동에서 전세보증금 5억5000만원짜리 아파트에 살다가 전세계약 만료 후 분양받은 새 아파트로 이사하려 했으나 자금 동원 계획에 차질이 생겼던 것이다.

문제는 전세보증금이었다. 전세계약 만료 당시 해당 지역 아파트의 전세가가 2년 전보다 낮게 형성돼 있었지만 집 주인이 이전 가격 그대로를 고수하다 보니 신규 세입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 바람에 A씨는 집 주인과 언쟁을 벌이면서 몇 달을 더 그 집에서 눌러 살아야 했다. 전세보증금을 제때 받지 못하는 바람에 대출원금 상환 계획에도 차질이 생겨 이자도 몇 달치를 더 물어야 했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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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적 소송으로 이어지기 직전 집주인이 2년 전보다 낮은 가격으로 전세를 내놓음으로써 신규 전세계약이 이뤄졌지만 A씨는 그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분노가 치솟는다.

일부 지역에서 전세가격이 하락함에 따라 A씨처럼 곤란을 겪는 사례가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다. 전세가격뿐 아니라 매매가격이 하락함에 따라 전세보증금 반환이 지체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이는 매매가격 하락으로 집값이 전세보증금과 근저당 설정액을 합친 금액보다 낮아진, 소위 ‘깡통주택’이 곳곳에서 등장하고 있는 것과 관련이 있다.

전세보증금의 반환 지체 또는 거부는 그 돈이 전재산이다시피 한 세입자들에게는 치명타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들어 이같은 사례가 증가하자 전세보증금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에 가입하려는 이들이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은 전세 입주자가 제때에 전세보증금을 받지 못할 경우 보증기관이 세입자에게 우선 전세보증금을 갚아주고 나중에 집주인으로부터 대신 돈을 받아내는 서비스 상품이다.

현재 이런 종류의 보증상품을 취급하는 곳은 도시주택보증공사(HUG)와 민간 보증기관인 서울보증보험 두 곳이다.

두 기관에서 취급하는 상품은 명칭과 내용에서 약간씩의 차이를 보인다. 우선 HUG의 경우 상품 명칭이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이고, 서울보증보험의 상품명은 ‘전세금신용보장보험’이다. HUG에서는 보증 한도를 수도권 7억, 기타 5억원으로 설정한 반면 서울보증보험엔 아파트의 경우 한도가 정해져 있지 않다.

또 하나 알아두면 좋은 점은 집주인의 동의가 없어도 가입이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이 제도를 이용하려면 상품 가입을 한 뒤 일정액의 보증 수수료를 지불해야 한다. HUG 상품의 경우 보증수수료는 전세금의 0.128%다. 1억원당 12만8000원꼴이다.

이처럼 보증수수료를 내야 하지만 이 제도를 활용하는 이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부동산 시장의 열기가 식어가면서 불안정성이 증대되고 있는 점이 그 원인이다.

20일 HUG에 따르면 이달 들어 16일 현재까지 집계된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가입 건수는 4531건이다. 보증금액은 9337억원에 달한다, 이같은 추세라면 이달의 가입 실적이 건수와 액수 모두에서 2013년 이 제도가 도입된 이후 최고기록을 한 달 만에 갈아치울 수도 있다. 현재의 월간 최고기록은 지난 10월의 8833건, 1조8625억원이다.

올해 가입 실적의 증가세는 지난해에 비하면 폭발적이라 할 수 있다. 1월을 기준으로 비교하면 지난해 1718건, 3727억원이던 것이 올해엔 4461건, 9778억원으로 급증했다. 그러다가 올해 말에 이르러서는 월 1만건에 2조원 수준을 바라보게 된 것이다.

HUG 관계자는 “지방은 물론 수도권에서도 전세가격이 약세를 보이면서 보증금을 제때 돌려받지 못할 수 있다는 세입자들의 우려가 커짐에 따라 보증상품 가입이 늘고 있다”며 “특히 전세가와 매매가의 차이가 작은 지역에서 보증서 발급이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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