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 이사회가 21일 여름철 전기요금 부담을 한시 완화해주는 누진제 개편안을 보류시켰다.

한전은 이날 서초구 한전아트센터에서 이사회(의장 김태유 서울대 교수)를 열고 민관 태스크포스(TF)가 제시한 전기요금 개편 최종 권고안을 토대로 심의를 진행했으나 전기요금 공급 약관 반영 의결을 보류했다. 한전은 “회의에서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아 의결을 보류하고 조만간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열린 이사회는 정기이사회로, 한전은 조만간 임시이사회를 열어 이 문제를 다시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전력 이사회 회의 모습. [사진 = 연합뉴스]
한국전력 이사회 회의 모습. [사진 = 연합뉴스]

하지만 전기요금 개편안이 이날 이사회 문턱을 넘지 못하면서 당초 다음 주 전기위원회 심의 및 인가를 거쳐 다음 달부터 누진제 개편안을 시행하려던 정부 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산업부 관계자는 “지난해에도 8월 초에 결정해 7월까지 소급적용을 한 만큼 이번에도 의결만 된다면 다음 달부터 시행하는 데 문제는 없을 것”이라며 “한전 의사결정 절차를 존중하고 최대한 협의해 향후 시행에 차질이 없도록 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날 이사회는 회의장에서 도시락 점심을 먹으면서 누진제 개편안 심의만 1시간 반 넘게 진행했으나 결국 결론을 내지 못했다. 한전은 올해 1분기 6000억원 이상의 적자를 기록하는 등 역대 최악 실적을 내는 분위기 속에서 더는 재정적인 부담을 감당하기 어렵다며 누진제 개편안에 난색을 보여왔다.

한전 소액주주들도 개편안이 의결될 경우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고 경고했다. 한전 재무구조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개편안을 이사회가 의결한다면 경영진을 배임 행위로 고소하겠다는 입장도 밝힌 바 있다.

이에 최근 한전은 이사회가 개편안을 의결할 경우 배임에 해당하는지를 로펌에 의뢰했다. 소액주주들이 이사회를 상대로 소송을 걸 경우 승소 가능성과 이를 임원 배상보험으로 처리할 수 있는지도 질의했다. 한전 관계자는 그러나 “배임 여부에 대한 로펌 판단을 공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앞서 민관합동 전기요금 누진제 TF는 3가지 개편안 가운데 여름철 누진 구간을 확장해 한시적으로 전기요금 부담을 줄여주는 안을 최종 권고안으로 내놨다. 개편안은 기존 누진제의 틀을 유지하되 냉방기기 사용으로 전기소비가 많은 7∼8월에만 한시적으로 누진 구간을 확장해 요금 부담을 덜어주는 방식이다.

TF는 이 방식을 적용하면 2018년 기준 1629만 가구가 월평균 1142원의 전기요금을 아낄 수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총 할인 추정액은 지난해 기준 2874억원, 기온이 평년 수준이었던 2017년 기준 2536억원이다.

문제는 2000억∼3000억원에 달하는 할인분을 누가 감당하느냐는 것이다. 정부는 일단 한전이 부담하되 지원해줄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겠다는 입장이다. 지난 3일 ‘주택용 전기요금 개편 전문가 토론회’에서 산업부 관계자는 “한전의 공기업으로서의 사회적 책임을 고려해 부담할 예정”이라며 “국회 동의를 얻어 정부가 어느 정도 재정 지원을 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한시 할인 때는 한전이 약 3000억원의 비용을 부담했다. 정부는 지난해에도 한전에 대한 지원방안을 추진했으나 해당 예산안은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지난해는 특례로 한 번만 했지만 이번에는 한전의 요금표가 바뀌는 사안인 만큼 관계부처와 협의, 국회 심의 과정에서 (지원방안을) 충분히 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 폭염은 111년 만에 최악이었던 만큼 한전이 누진제 개편으로 올해도 작년 수준으로 3000억원 가까이 부담을 질 것이라고 보긴 어렵다”며 “다만 국회도 이상기온 상시화에 대비해 한전 재정지원에 협조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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