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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옥의 나이스한 세상] 공짜 전기는 없다
[박해옥의 나이스한 세상] 공짜 전기는 없다
  • 박해옥
  • 승인 2019.07.01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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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용어중 ‘스키마’라는 것이 있다. 골자는 ‘인지의 고정틀’ 정도로 설명될 수 있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앞 부분에 나오는 보아뱀 그림을 예로 들면 개념 설명이 쉬울 듯 싶다. 작품이 말해주듯 대개의 어른들은 그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 중절모로 이해하기 쉽다. 하지만 아이들이라면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연상할 수 있다. 이는 해당 그림의 모양을 두고 어른들에겐 중절모, 아이들에겐 코끼리와 보아뱀으로 인식하려는 각각의 스키마가 강하게 작용한데 따른 인지의 차이다.

스키마는 각 개인이 지닌 지식 구조나 경험에 의해 형성된다. 그래서 간혹 우리에게 착각을 안겨주기도 한다. 스키마가 초래하는 착각은 시간이 지날수록 공고해지는 경향을 보인다는 게 정설이다. 즉, ‘어린 왕자’의 그림을 중절모라 생각한 사람에게 그 모습을 연상하며 다시 그려보이라고 요구하면 원래의 모습보다 더 중절모다운 모습을 그린다는 것이다. 이는 ‘기억의 변형’이란 말로 설명된다.

사람이 지니는 무형의 인식에도 이와 유사한 속성이 엿보인다. 어떤 계기로 인해 특정 대상에 대해 지닌 선입견은 날이 갈수록 자신을 합리화시키는 방향으로 더욱 공고해지는 경향이 있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그 예 중 하나가 원자력 발전에 대한 거부감이다. 원전 반대론자들 머릿속엔 원전은 위험한 것, 생태친화적이지 않은 것이란 인식이 강하게 자리하고 있는 듯 보인다. 원자력 이용이 원전 분야로 급격히 확산되면서 그 위험성은 더욱 구체화되고 증폭되기 시작했다.

원자력은 에너지 자원으로 막 활용되기 시작하던 당시, 그 속에 숨어 있는 가공할 위험성으로 인해 숱한 반발을 샀던 게 사실이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말기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은 핵과 원자력에 대한 공포를 키우는데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핵폭탄은 대량 살상용으로 만들어진 무기다. 같은 원자력을 이용해 만들어졌지만 전기 에너지를 생산하는데 쓰이는 원전과는 차원이 다른 발명품이다. 불이 엄청난 재앙을 부르는 요소일 수 있지만, 쓰기에 따라서는 한없이 이로운 도구가 되는 것처럼 원자력도 어디에 어떻게 이용하느냐가 중요하다.

에너지 자원으로서의 원자력에 대한 공포는 쓸데 없이 과장돼 있다. 주지하다시피 60여년의 원자력 발전 역사에서 유의미한 사고가 발생한 것은 세 차례뿐이다. 1979년 미국 스리마일섬 원전 사고, 1986년 소련 체르노빌(지금의 우크라이나) 원전사고,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그에 해당한다. 원전 사고에 의한 사망자를 직접 발생시킨 예는 체르노빌이 유일하다. 체르노빌 사고 당시 사망한 사람 수는 31명으로 기록돼 있다. 물론 여기엔 장기간에 걸쳐 암 발생 등으로 사망한 수천명의 사람들은 포함되지 않았다.

원전에서 발생하는 방사능으로 인해 사망한 사람 수를 정확히 집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화력 발전 등을 통해 발생하는 오염물질로 사망한 사람 수는 이보다 훨씬 많다고 보는 게 합리적 추론일 것이다. 요즘 들어 전세계적으로 원전을 에너지 자원으로 이용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는 것은 그 같은 인식이 확산된 결과라 할 수 있다. 탈원전을 선언했던 일본과 타이완이 원점으로 방향을 되돌렸고, 원전 축소 정책을 펼쳐왔던 영국과 프랑스 역시 최근 들어서는 원전 비중을 늘리거나 유지하는 쪽으로 노선을 변경하고 있다.

원자력에 대한 공포가 과장됐다는 것은 원전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과장의 배경은 원전 사고 피해가 즉시적이고, 보다 충격적이며 광범위하다는 점일 것이다. 비행기가 여러 탈것 중 가장 안전한 교통수단이면서도 사고와 관련해서는 가장 큰 공포의 대상으로 자리하고 있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원전이 친환경적인 에너지 생산 시설이라는 새로운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미세먼지나 온실가스 배출이 없다는 게 그 이유다. 방사능 오염 문제가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지만 원전 역사가 길어지면서 안전관리 기술이 발전한 점 또한 인식을 바꾸는데 일조했다. 거기다 원자력은 발전 원료중 최상의 가격 경쟁력까지 갖추고 있으니 원전을 마다할 이유는 이제 거의 사라졌다고 볼 수 있다.

원자력은 에너지 사용료 절감 차원에서도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자원이다. 요즘 한국전력이 여름철 전기요금 인하 문제로 홍역을 치르는 것도 탈원전 정책과 관련이 깊다. 탈원전을 추진하다 보니 발전 단가가 원자력의 각각 두 배 세 배나 되는 액화천연가스(LNG) 및 신재생에너지 사용을 늘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바람에 2017년만 해도 4조9532억원을 기록했던 한전의 영업이익은 지난해 2080억원의 적자로 돌아섰다. 시점과 실적을 함께 고려할 때 탈원전 정책에 따른 비용의 급격한 증가가 우량기업이던 한전을 부실화시킨 원인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한전의 부실화를 부추긴 건 에너지 원료값 상승 외에 또 있다. 온실가스 배출권을 사들이느라 비용이 늘어난 것도 영업실적 악화를 심화시켰다. 원전 정책을 이어갔더라면 지출하지 않아도 됐을 정책비용까지 지불하느라 한전의 영업실적이 수직낙하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지난 28일 주식회사 한전은 두 번째 이사회를 열고 논의를 이어간 끝에 정부의 여름철 전기요금 한시적 인하를 수용하기로 했다. 정부의 요구에 응하기 위해 배임 시비를 무릅쓰고 약관 변경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 임기 중 전기요금을 인상하지 않고, 그러면서도 혹서기엔 할인된 가격에 전기를 공급하겠다는 모순된 정책이 강제한 울며 겨자먹기 식의 결정이었다.

정부의 여름철 전기요금 인하 방침은 조삼모사의 전형이다. 다는 아니더라도 요금 인하분에 육박하는 한전의 손실을 정부가 보전해주기로 했으니 하는 말이다. 국민들 입장에서 보자면 여름철에 할인받은 것을 결국 세금으로 토해내야 하는 꼴이다.

정부의 여름철 전기료 인하는 앞뒤도 안 맞고 말도 안 되는 비논리적 방침이다. 발전 단가가 올라가는데도 전기요금을 내릴 수 있는 묘수는 없다. 그러니 전기료 한시 인하 방침을 두고 ‘총선용’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솔직해져야 한다. 탈원전 정책을 계속 밀어붙일 요량이라면 비싼 전기료를 감내해야 한다고 국민을 설득하는 게 당당하고 양심적인 태도다. 그게 아니라면 탈원전 정책을 포기하는 것 말고는 답이 없다. 현 정부의 에너지 정책은 한전이 신비한 동화나라의 연금술사를 구해오지 않는 한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비현실적이다.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