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경제보복 조치는 어디까지 이어질 것인가. 이에 대해 뚜렷한 답이 제시되지 않는 가운데 각종 시나리오가 난무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한국내 금융시장에서의 자금 회수다.

우리 금융 당국도 이에 대한 가능성을 상정한 채 대비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일본 자금의 갑작스러운 회수가 우리 기업들에게 부가적인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 그 배경이다.

현재 일본계 은행들이 국내에서 대출해준 돈을 모두 합치면 18조원이 조금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미쓰비시와 미쓰이스미토모, 미즈호, 야마구찌 등 4개 일본계 은행의 올해 3월 말 현재 국내 총여신은 18조2995억원이다. 이는 전체 외국계 은행의 여신총액인 77조9000억원의 27.1%에 해당한다. 이는 중국계 은행(34.3%) 다음으로 높은 비중이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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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위를 넓혀 일본계 은행들이 직·간접적으로 빌려준 돈을 모두 더하면 69조원에 이른다는 분석 결과도 있다. 이는 국내 기업과 국내에 들어와 있는 일본 기업들이 빌려 쓴 돈 외에 국내은행이 가져다 쓴 돈 등을 망라한 것이다.

우려의 핵심은 일본 은행들이 일본의 대한(對韓) 수출 규제에 적극 호응해 어느 순간부터 일제히 자금을 회수할지 모른다는 점이다. 연 단위로 계약을 한 뒤 연장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온 대출을 연장 없이 종료하는 한편 신규 대출을 금할 경우 차주들은 적지 않은 피해를 입을 수 있다.

현재 일본계 은행들은 본국에서 저금리로 자금을 조달한 뒤 국내에서 영업을 하고 있다. 따라서 일본계 은행에서 돈을 가져다 쓴 국내 기업들이 갑자기 대출 은행을 바꿀 경우 금융비용이 늘어날 가능성이 커진다. 일본 중앙은행은 현재 기준금리 수준을 마이너스 상태로 유지하고 있다.

일본계 은행들의 자금은 주식시장에도 상당액 들어와 있다. 현재 주식 시장에 들어와 있는 일본계 자금은 12조원을 웃돈다. 금감원 집계치는 5월 말 기준으로 12조4710억원이다.

일본계 은행의 국내 대출 자금 회수는 진작부터 이뤄지고 있다. 금감원 금융통계시스템 자료에 의하면 눈에 띄게 회수가 시작된 시점은 지난해 9월이다. 묘하게도 일본의 강제징용에 대한 우리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 직전 월부터 의미 있는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지난해 9월 말 기준 일본계 은행의 국내 총 여신은 21조817억원이었다. 이를 3월 말 기준 금액과 비교하면 반년 사이 3조원 가까이 줄어들었음을 알 수 있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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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국내 금융권에서는 일본계 은행들이 예대율(예금 잔액 대비 대출금 잔액 비율)을 낮추고, 익스포저(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금액)를 자발적으로 줄이기 위해 자금 회수에 나선 것이란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 해도 일본계 은행들의 국내 자금 회수는 향후 더욱 가속화될 가능성이 있다. 관(官)의 입김이 유독 강한 일본의 특성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다만 일본 은행계 자금이 이탈하더라도 그 파장은 크지 않으리란 전망이 많다.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리 크지 않기 때문이다. 주식시장에 들어와 있는 일본계 자금의 경우 외국인 자금 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3%에 불과하다. 개별 기업에 대한 지분 비율 역시 대부분 미미해 상법상 의미 있는 충격을 가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나마 일본계 자금이 주식시장에서 일사불란한 움직임을 보일 가능성도 커 보이지 않는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최종구 금융위원장도 지난 5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일본계 자금의 이탈은 그리 큰 우려 대상이 아님을 시사했다. 그는 “금융위기 당시와 달리 지금은 우리 금융시장이 안정돼 있어서 일본계 은행들이 돈을 안 빌려줘도 다른데서 얼마든지 빌려올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우리 정부는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소재에 대한 일본의 수출 규제가 세계무역기구(WTO)협정에 위배된다며 즉각 철회를 요구했다. 그러면서 국제 공조 체제를 강화해가며 대응해 나갈 뜻을 동시다발적으로 천명했다.

먼저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발언하면서 “업계 및 국제사회와의 긴밀한 소통, 공조 등을 통해 다각적이고 적극적인 대응을 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 역시 ‘국제공조 방안’을 거론하며 “여러 가지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는 전략상의 이유를 들어 밝히기 어렵다고 부연했다.

현재 정부가 검토 중이라는 국제 공조는 올해 하반기에 연이어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국제통화기금(IMF) 연차총회,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등 다자간 대화 행사들을 염두에 둔 방안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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