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시간당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2.9% 오른 8590원으로 사실상 결정됐다. 액수로 치면 올해에 비해 240원이 올랐다. 내년 최저임금 인상률은 2010년 2.8% 인상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지난해와 올해 최저임금이 연이어 두자릿수로 인상되면서 도합 30% 가까이 급등한 것에 견주면 인상 행진이 일단 숨고르기 국면에 들어갔다고 볼 수 있다.

내년 최저임금 최종안은 12일 새벽까지 이어진 최저임금위원회의 난상토론 끝에 결정됐다. 아직 고용노동부의 판단이 남아 있지만 그간 정부·여당이 ‘속도 조절론’을 은근히 강조해온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내년 최저임금은 이미 확정됐다고 볼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자신이 내건 대선 공약인 ‘2020년 최저임금 1만원 달성’이 어렵게 됐다고 밝힌 바 있다. 3년 연속 최저임금 고속 인상은 무리라는 메시지를 공약 당사자가 먼저 정부와 여당에 전달한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변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노동계에서는 강한 불만을 나타내며 총파업 등 모든 투쟁 수단을 사용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부에 이의 신청을 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하지만 노동부가 이의신청은 받되 최저임금위 결정 내용을 수정한 전례가 없고, 여당 내부에서 동결론까지 제기됐던데 비춰보면 답은 이미 정해졌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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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노동계의 반발 강도가 전에 비해서는 그리 강하지 않아 보인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사용자를 대변하는 단체에서도 동결 요구가 관철되지 않은데 대해 일부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지만 아쉬움을 나타내는 수준인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이재갑 노동부 장관은 이번 최저임금위안에 대한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쳐 다음달 5일까지 내년 최저임금을 확정고시하겠다고 밝혔다.

올해도 파행이 있긴 했지만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이 비교적 순탄하게 이뤄지는 데는 앞서도 언급했듯이 청와대와 정부·여당의 속도 조절 메시지가 중요한 작용을 했다. 이 같은 메시지는 최저임금위의 결정을 사실상 주도해온 공익위원들이 최소한의 인상률을 제시한 사용자측 안을 수용하는 데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최저임금위 회의에서는 사용자측 안과 근로자측 안이 나란히 제시된 가운데 투표가 이뤄졌고, 결국 사용자안이 전체 27표(사용자위원·근로자위원·공익위원 각 9명) 중 15표를 얻어 최종안으로 결정됐다. 8880원으로 제시된 근로자안은 11표를 얻었다. 나머지 1표는 기권으로 처리됐다.

찬성 15표는 사용자위원 9명에 공익위원 6명이 가세해 나온 것으로 분석된다. 투표에 앞서 공익위원 측은 한자릿수 인상안을 양측에 제시했었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결국 예년과 비교하면 투표 방식과 내용에서 약간의 차이는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이번에도 공익위원이 최저임금위 최종안을 결정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이는 최저임금위가 안고 있는 한계를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다. 매년 공익위원들이 최저임금을 주도한다는 것은 곧 정부 의도대로 번번이 최저임금이 결정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공익위원을 포함한 모든 위원을 노동부 장관의 제청을 거쳐 대통령이 위촉하도록 규정한 최저임금법 시행령에 뿌리를 두고 있다. 특히 공익위원은 제3 기관이나 단체의 추천도 없이 노동부 장관이 제청하는 인사들로만 구성되도록 규정돼 있다. 그러니 공익위원 구성이 정권의 입맛에 따라 이뤄지고, 그 결과 최저임금 결정에 경제 논리가 아니라 정치 논리가 더 크게 작용할 개연성이 상존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최저임금 결정 과정 등을 제도적으로 보완하는 것도 좋지만 먼저 명실상부한 공익위원단을 구성하는 게 더 큰 과제라 할 수 있다. 그 대안 중 하나는 공익위원들도 중립적 기관이나 단체의 추천을 받도록 하는 것이다.

정부·여당도 이를 의식, 이 같은 내용을 포함시킨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만들어 이미 국회에 제출했다. 더불어민주당 신창현 의원이 대표발의한 개정안의 골자는 기존의 최저임금위원회를 구간설정위원회와 결정위원회로 이원화하고, 결정위원회의 공익위원을 정부와 국회가 나누어 추천한다는 것이다. 결정위와 관련한 구체적 내용은 21명의 위원 중 7명을 공익위원으로 구성하되 정부가 3명, 국회가 4명을 추천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국회 추천 4인 중 일부가 여당 몫이 될 것을 감안하면 정부안에 대한 야당의 불만이 제기될 수 있지만 어떻게 해서든 균형점을 찾아 공익위원들이 이름에 걸맞는 역할을 충실히 하도록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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