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한국을 화이트국가 리스트에서 제외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양국 간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일본의 조치가 현실화된다면 두 나라는 사실상 총성 없는 전쟁 상태에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 싸움의 여파가 두 나라를 넘어 전세계로 번져갈 것이란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당장 미국과 유럽 등의 정보기술(IT)산업이 타격을 입을 것이란 분석이 많다. 일본의 주요 규제 대상이 한국의 반도체 산업인 탓이다. 메모리 강국인 우리나라는 전세계 D램의 70%, 낸드플래시의 50% 정도를 생산·공급하고 있다.

충격은 반도체 분야에 그치지 않는다. 일본이 추진중인 한국에 대한 화이트리스트 배제 조치는 세계 10대 교역국인 한국의 산업생산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일본의 화이트국가 리스트는 무엇이고, 일본이 여기서 한국을 제외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를 갖는지, 또 일본의 화이트국가 리스트 운용실태는 어떤지 등을 차례로 살펴보기로 하자.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한국에 대한 일본의 수출 규제는 지난 1일 일본 경제산업성이 수출관리 운영조치를 수정 발표하면서 공식화됐다. 일본이 제도를 수정하겠다고 밝힌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첫째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3대 소재에 한해 기존의 포괄수출허가제가 아니라 개별허가제를 이달 4일부터 적용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포함된 것이 불화수소, 불화폴리이미드, 레지스트다.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제품에서 차지하는 가격 비중은 미미하지만 제품 생산에 있어서 필수적인 것들이다. 비행기에 비유하면 엔진을 조립하는 마지막 볼트너트 하나를 공급하지 않음으로써 비행기 생산 전체에 차질을 빚게 하는 야비한 수단을 택한 것이다. 수출이 안 되어도 일본의 피해는 적고 한국의 피해는 막대한 방법을 택했다고 볼 수 있다. 

두 번째는 우리나라를 아예 화이트국가 리스트에서 제외함으로써 모든 한국행 전략 수출품에 대해 일일이 경제산업성의 심사를 받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일본의 화이트국가 리스트에는 현재 27개국이 명기돼 있다. 일본은 이들 국가로 수출되는 품목에 대해 포괄허가제를 적용하고 있다. 화이트국가로 수출되는 제품에 대해서는 일일이 심사하지 않고 원칙상 3년 동안 개별허가를 면제하도록 제도화한 것이다.

즉, 화이트국가는 일본이 안보상 우방국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나라라 할 수 있다. 여기엔 미국을 비롯해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덴마크 벨기에 불가리아 체코 핀란드 그리스 헝가리 아일랜드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노르웨이 폴란드 포르투갈 스페인 스웨덴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 유럽 국가들과 오세아니아주의 호주 뉴질랜드, 북미의 캐나다, 남미의 아르헨티나, 그리고 한국 등이 포함돼 있다.

보다시피 화이트국가 리스트에는 웬만한 서방국가와 친서방 국가들이 망라돼 있다. 여기서 한국을 제외한다는 것은 곧 일본이 한국을 안보우방국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이 수출 규제 대상으로 삼은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소재들. [그래픽 = 연합뉴스]
일본이 수출 규제 대상으로 삼은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소재들. [그래픽 = 연합뉴스]

일본은 현재 한국을 화이트국가에서 제외하기 위한 절차를 착착 진행하고 있다. 우선은 오는 24일을 시한으로 정한 뒤 전자정부종합창구(https://search.e-gov.go.jp/servlet/Public)를 통해 일본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의견 수렴 이후엔 각의를 열고 변경 내용을 확정한 뒤 공포하는 절차가 기다리고 있다. 일단 공포가 이뤄지면 3주 뒤부터 그 효력이 발생한다.

일본 정부의 계획대로 화이트국가에서 한국이 제외되면 농수산물 등을 제외한 웬만한 품목에 대해서는 개별허가제가 적용된다. 이 때부터 한국으로 물품을 수출하려는 일본 기업은 수출 허가 신청서에 제품명과 판매처, 수량 등을 기재한 뒤 기타 필요 서류와 함께 경제산업성에 제출해야 하고, 경제산업성은 90일 정도 소요되는 심사를 거쳐 허가 여부를 결정한다.

살펴보겠다는 내용은 제품이 수입처로 정확히 도착할지, 사용 목적이 합당한지, 안보상 위협 요인은 없는지, 제품이 불량국가 등으로 흘러갈 가능성은 없는지 등이다. 한국을 준불량국가 취급하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낼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대한무역진흥공사(코트라) 도쿄무역관은 필요한 모든 절차가 예정대로 진행될 경우 다음 달 안에 변경된 제도가 시행될 수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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