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수출 규제 사태의 전개 과정에서 오는 24일은 의미심장한 날이 될 것 같다. 이날 일본의 행동에 영향을 미칠 유의미한 결과물들이 복수로 나온다는 점이 그 전망의 배경이다.

우선 일본은 이날 한국을 화이트국가 리스트에서 제외하는 문제에 대한 자국내 의견 수렴을 마무리한다. 일본 정부는 21일 현재 전자정부 창구를 통해 온라인으로 수일째 자국민들의 의견을 취합하고 있다. 반한 감정 조성용이라는 혐의가 짙게 느껴지지만, 의도가 무엇이든 일본 정부의 한국 공격에 대한 지지 정도를 가늠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 결과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의견 수렴 결과를 토대로 각료회의를 열고 화이트국가 리스트 변경 문제를 논의하게 된다. 날짜가 언제로 잡힐지 모르지만 각의가 열리면 한국 규제와 관련된 정령(시행령)인 ‘수출무역관리령’과 이를 알리는 절차인 통달(고시)의 수정을 의결할 것으로 예상된다. 각의 의결 후 수정안이 공포되면 3주 후 그 효력이 발생한다.

[그래픽 = 연합뉴스TV/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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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도쿄무역관 보고서에 따르면 이 과정이 예정대로 진행될 경우 이르면 8월 중 정령 개정안이 효력을 발할 수 있다. 도쿄무역관은 경제산업성 의견을 인용, 해당 절차가 모두 완료되고 한국이 화이트국가에서 제외될지 여부가 결정되기까지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한국 정부는 일본의 의견수렴 마감 하루 전까지 수출 규제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한편 철회를 촉구하는 내용의 문서를 이메일을 통해 일본 정부 당국에 보내기로 했다.

오는 24일이 주목되는 또 다른 이유는 이 날이 세계무역기구(WTO) 일반이사회가 끝나는 날이라는 점이다. 스위스 제네바에 소재한 WTO는 오는 23~24일(현지시간) 일반이사회를 열고 일본의 대한(對韓) 수출 규제 문제를 논의한다. 이는 지난 8일 열린 WTO 상품무역위원회에서 우리 측이 일본의 무역규제 안건을 일반이사회 안건으로 상정할 것을 제의했고, 우리 요구가 수용된데 따른 것이다.

일반이사회는 WTO의 최고 의결기관인 각료회의와 맞먹는 위상을 지닌다. 각료회의가 2년에 한번 열리기 때문에 평시에 긴급 안건이 발생할 경우 일반이사회가 그 기능을 대신한다. 그런 만큼 일반이사회는 사실상 WTO의 최고 의결기관이라 할 수 있다.

지난 12일 도쿄에서 마주 앉은 한국과 일본의 통상 관계자들. [사진 = 연합뉴스]
지난 12일 도쿄에서 마주 앉은 한국과 일본의 통상 관계자들. [사진 = 연합뉴스]

다만, 일반이사회는 분쟁해결기관이 아니어서 여기서 논의되거나 결정된 내용이 구속력을 갖는 것은 아니다. 현재 한국 정부는 일반이사회 논의와 별개로 WTO에 일본의 수출규제 안건을 제소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 경우 WTO는 분쟁해결기구를 구성해 안건 심사에 나선다.

일반이사회에서 각국을 대표하는 이는 각 나라의 제네바 주재 대사들이다. 그러나 이번 안건의 경우 그 중요성과 민감성, 전문성 등을 고려해 한·일 두 나라 모두 정부 당국자들을 파견하기로 했다. 일본은 일반이사회에 야마가미 신고 외무성 경제국장을 파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도 이에 맞서 산업통상자원부의 국장급 인사나 그 이상 직급의 인사를 파견할 것으로 보인다.

이사회 결과가 구속력은 없다지만 이사회 논의의 무게를 가볍게 여길 수는 없다. 이번 회의가 164개 회원국의 대사급들이 대거 참여하는 모임이라는 점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이번 이사회를 통해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가 정치적 보복행위라는 점을 십분 강조하면서 그 부당성을 전세계에 알리려 하고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각료회의를 제외하고는 WTO 최고 의사결정기구라 할 일반이사회에서 일본의 조치가 공론화된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자유무역을 지지하는 전세계 국가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주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소득은 여기에 그치지 않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회의가 과거의 전범 행위에 대해 반성하지 않는 일본의 태도를 자연스레 만천하에 알리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어서이다.

이런 가운데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일본을 거쳐 오는 23~24일 한국을 방문한다.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 및 강경화 외교부 장관 등과 만나 한반도 비핵화 등 양국 간 현안을 논의하는 게 주 목적이다. 하지만 미묘한 시기인 만큼 일본의 무역 보복 문제에 대한 논의도 함께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더구나 볼턴 보좌관이 일본을 거쳐서 한국에 오기 때문에 양국의 대립을 중재하는 역할을 할 가능성이 있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두 나라가 원한다면’이란 전제 하에 한·일 간 대립 사태에 관여할 수 있음을 내비쳤다. 미국은 최근 들어 한국이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파기 가능성을 시사하자 보다 적극적으로 한·일 간 문제에 개입할 기미를 보이고 있다. 이 문제가 한·미·일 3국의 안보상 연대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한 결과로 풀이된다.

1년 단위로 갱신되어온 GSOMIA는 어느 한쪽이 파기 의사를 밝히면 다음 달 말 종료된다.

이 협정을 통해 한국은 지리적 이점과 휴민트(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취득하는 정보)를 활용한 북한 관련 정보를 일본에 제공해왔다. 대신 일본은 우리보다 우위에 있는 공중 정찰 활동 등을 통해 추가로 얻은 정보를 우리 측과 공유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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