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대한(對韓) 수출 규제가 장기화될 조짐이 보다 명확해졌다. 일본 참의원 선거가 끝나면 일본 정부의 자세가 다소 누그러질 것이란 일말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이 같은 당초 기대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한국에 대한 보복을 참의원 선거용 카드로 꺼내들었을 것이란 분석을 토대로 한 것이었다.

그러나 참의원 선거가 아베 총리의 정치적 승리로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의 자세는 전혀 변할 기미를 드러내지 않고 있다. 오히려 기존의 강경 모드가 상승작용을 일으키고 있음을 짐작하게 하는 분위기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이 같은 기류는 수출 규제를 주도하고 있는 아베 총리의 발언을 통해 분명히 드러났다. 그는 21일 밤에 끝난 참의원 선거 개표방송에 출연해 한국에 대한 입장이 전혀 바뀌지 않았음을 나타냈다. 사실상 한국이 징용공 문제에 대한 일본의 입장에 동조하지 않는 한 자세 변화가 없을 것임을 공언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 [사진 =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 [사진 = 연합뉴스]

그는 “한국이 청구권협정 위반에 대해 제대로 된 답변을 가져오지 않는 한 건설적 논의는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 대법원의 징용공 배상 판결이 청구권협정에 위배된다고 주장하면서 동시에 한국 정부를 향해 그 대안을 마련해 제시할 것을 요구한 셈이다.

일본 정부의 완강한 자세는 일본 주재 한국 언론인들과의 간담회를 통해서도 재확인됐다. 22일 도쿄의 경제산업성 본관에서 진행된 간담회에서 일본 정부 당국자는 논리성 없는 억지 주장을 이어가며 한국에 대한 보복이 정당하다고 강변했다.

그는 전략물자에 대한 한국 측의 관리가 부실하다는 기존의 입장을 재확인하면서 한국을 화이트국가 리스트에서 제외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취지의 주장을 쏟아냈다.

한국으로 수출된 전략물자 일부가 북한으로 흘러들어간 것처럼 분위기를 풍겨온 데 대해서는 “일본 정부는 그런 발표를 한 적이 없다”고 맞받았다. 그 같은 취지의 억지 주장을 연이어 내놓고도 ‘정부’가 ‘공식발표’를 한 적은 없다는, 야비한 주장을 펼친 것으로 해석된다.

그는 27개 화이트국가 중 유독 한국만 집어내 문제삼는 이유가 뭐냐는 질문이 나오자 “한국은 중요한 파트너이기 때문”이라는 모순된 답변을 내놓았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사진 = 연합뉴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사진 = EPA/연합뉴스]

이 관계자는 이날 간담회에 대해서도 이전 당국자 간 실무대화에서 주장했던 것처럼 ‘설명회’라는 타이틀을 붙였다. 현안에 대해 의견을 청취하거나 질문에 답을 하는 자리가 아니라 자신들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전하는 자리임을 명확히 한 것이다.

일본 정부의 강공에 한국도 맞대응 의지를 천명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2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를 통해 현 상황을 “자유무역 질서를 훼손하는 기술패권이 경제를 위협하는 상황”이라 진단하며 일본의 수출 규제를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청와대는 또 고민정 대변인을 통해 아베 총리의 ‘답을 가져오라’라는 요구에 정면으로 대응했다. 고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지금까지 제대로 된 답변을 하지 않았는지 묻고 싶다”고 반문한 뒤 “최소한의 선을 지키라”고 말했다.

정부 당국과 여당도 일본의 무역보복에 맞서기 위한 대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을 보였다. 산업통상자원부 차원에서 세계무역기구(WTO) 일반이사회 논의에 대비하는 한편 소재 및 부품 산업 연구개발 지원을 위한 당·정 협의도 이어졌다.

이날 산업부는 일본이 경제산업성 국장급 인사를 WTO 이사회에 파견하기로 한데 맞서기 위해 실장급 인사를 보내기로 결정했다. 산업부는 오는 23~24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WTO 일반이사회에 김승호 신통상질서전략실장을 수석대표로 파견한다고 발표했다.

이런 가운데 정부와 여당은 이날 당정협의를 열고 부품 및 소재 산업 활성화를 위한 방안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당·정은 세제 개편을 통해 부품 및 소재 국산화를 촉진하기 위한 연구개발(R&D)을 적극 지원하기로 했다. 세제 개편을 통해 관련 R&D 비용에 대해서는 세액공제 등을 해주도록 한다는 것이 논의의 주된 내용이었다.

저작권자 © 나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