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가 31일(현지시간) 기준금리를 기존치보다 0.25%포인트 인하했다. 이로써 미국의 기준금리는 2.00~2.25%로 재조정됐다. 연준이 금리를 내리기는 10년 7개월 만에 처음이다. 여기까지는 대체로 시장의 예상과 부합했다.

문제는 우리의 금융통화위원회 격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금리 인하가 결정된 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한 발언 내용이었다. 시장의 주된 관심은 진작부터 금리 인하 결정보다 파월의 발언 내용에 쏠려 있었다. 향후 연준의 통화정책 스탠스를 가늠할 단서가 그의 입을 통해 제시될 것이란 기대 때문이었다.

그러나 파월 의장의 발언은 근래 보기 드물 정도로 애매모호했다. 그는 회의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날의 결정에 대해 “기본적으로 정책에 대한 중간 사이클 조정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번 조치를 “명백히 보험적 측면”이란 말로 설명하면서 “장기적 연쇄금리 인하의 시작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사진 =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워싱턴의 연방준비제도이사회 건물. [사진 = 로이터/연합뉴스]

그 다음 말은 다시 한번 변곡점을 지나 예상 밖의 방향을 가리킨 것으로 해석됐다. 이 때 그가 한 말은 “나는 그것이(금리 인하가) 단지 한번이라고 말하지 않았다”였다.

그의 말은 추가로 금리를 인하하겠다는 것으로도, 그 반대의 뜻으로도 받아들여질 수 있는 양면적인 것이었다. ‘보험적 측면’에 방점을 찍으면 금리 인하가 추세적으로 진행되지는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다음 발언은 그 자체만 놓고 보면 연쇄적 금리 인하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이해될 수밖에 없다.

당연히 파월 의장의 선답(禪答) 같은 발언을 두고 갖가지 해석이 쏟아졌다. 당장 ‘중간 사이클 조정’의 의미를 두고 혼란스럽다는 반응이 곳곳에서 나왔다. 일각에선 중립금리 수준에서 통화정책을 운용하려 한다는 해석이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중립금리 자체가 모호한 개념인 탓에 이 같은 분석은 별다른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미국 언론들은 ‘중간 사이클 조정’ 발언을 두고 추세적 조정은 아니지만 한 두 차례 정도는 금리를 더 내릴 수 있다는 의미를 담은 것으로 분석했다.

파월 의장의 발언과 관련, 한화투자증권 권희진 연구원은 1일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파월 의장이 금리 인하 전쟁에 동참하라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요구를 거부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보고서 제목에도 나타나 있듯이 파월 의장이 트럼프 대통령과 선긋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같은 맥락에서 파월 의장의 발언을 ‘매파적’이라 해석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은택 KB증권 연구원은 파월 의장의 발언이 이전과 달라졌음을 지적하면서 “시장은 파월 의장의 매파적 발언에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 [사진 = 로이터/연합뉴스]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 [사진 = 로이터/연합뉴스]

파월 의장의 발언을 ‘매파적’으로 해석하기는 시장도 마찬가지였다. 연준의 금리 인하 결정이 내려진 직후 미국 증시에서는 주가가 폭락했고, 달러화가 강세를 보였다. 보다 완화적 메시지를 기대했던 시장이 실망감을 드러낸 데 따른 현상이었다.

파월 의장의 발언 중 ‘보험적 측면’이란 워딩은 이번 금리 인하 조치의 성격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이에 대해서는 언론이나 시장의 분석이 대체로 일치하고 있다. 당장 필요해서가 아니라, 글로벌 경기 침체 기류 탓에 미국 경제가 나홀로 호황을 이어가지 못할 경우에 대비해 선제적으로 금리 인하를 단행했다는 게 분석의 요지다.

전미경제연구소(NBER) 집계 결과 미국은 현재 사상 최장 기간의 경기확장을 경험하고 있다. 경기확장이 이어진 기간은 이달로 121개월째를 기록했다. 이전의 최장 기록은 1991년 3월부터 2001년 3월까지 120개월이었다. 경기확장은 경기가 저점을 지나 정점을 향해가는 현상을 말한다.

이를 토대로 해석하면, 연준은 이번에 글로벌 경기 침체로 인해 미국의 경기확장 행진이 멈추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금리 인하 카드를 꺼내들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유로존과 중국의 경제가 부진에 빠질 우려가 커지고 있는 현실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연준이 향후 통화정책 방향에 대해 불분명한 스탠스를 취함으로써 한국은행 등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혼란스러운 입장에 처하게 됐다. 한은으로서는 일단 미국과의 금리 역전 폭이 다소 줄었다는 점에 안도할 수 있지만, 향후 통화정책 방향을 설정하는데 있어서는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연준의 금리 인하로 한·미 간 금리 차는 상단 기준으로 다시 0.75%가 됐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이날 연준의 금리 인하와 관련해 “예상과 부합한다”고 말했다. 다만 파월 의장의 발언에 대해서는 “시장이 생각했던 것보다 덜 완화적이라 평가한다”고 밝혔다. 이어 “연준이 경기 확장세 유지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하겠다고 밝힌 점에 주목한다”면서 “추가적인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가 여전히 크다”고 설명했다.

또 한국의 경제 상황이 많이 악화되면 당연히 금리 인하를 고민해야 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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