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디플레이션 우려가 나타남에 따라 실질금리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곤 한다. 물가가 마이너스 행진을 이어갈 경우 실질금리가 올라가고 그로 인해 차주(돈을 빌린 사람)들의 이자 상환 부담이 커질 것이라는 게 논의의 주된 내용이다.

물가 움직임에 따라 실질금리가 달라진다는 얘기인데 이게 무슨 소리일까?

실질금리는 돈을 빌린 경제주체가 실질적으로 부담해야 하는 금리를 말한다. 명목상 책정된 이자율(대출시 계약서에 표시된 이자율)과는 다른 개념으로서 차주의 현실적 부담 정도를 나타내주는 척도라 할 수 있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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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질금리는 명목금리에서 물가상승률을 빼고 난 금리다. 다시 말해 물가상승률을 감안해 계산해낸 금리가 실질금리다. 여기서의 ‘실질’은 실질임금의 ‘실질’ 등과 비슷한 개념이다. 명목상 임금이 일정 비율로 올라도 물가가 그 비율 이상으로 뛰면 실질임금이 줄어든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설명해보자. 은행의 대출금리가 0%인 사회에서 물가상승률도 0%를 기록했다고 가정해보자. 이 경우 차주가 부담하는 실질금리는 0%가 된다. 돈을 공짜로 빌려쓰는 상황이 된 셈이다. 하지만 같은 상황에서 물가가 마이너스를 기록할 경우 명목상 금리는 0%로 그대로이지만 은행은 사실상 대출을 통한 이득을 취하게 된다. 만기 후 같은 액수의 돈을 상환받지만 돈의 가치가 마이너스 물가상승률 만큼 커진 덕분이다.

반대로 차주는 그만큼의 손해를 보게 된다. 숫자로 계산하면 다음과 같다. 명목금리가 0%이고 물가가 마이너스 1%라면 차주가 부담하는 실질금리는 ‘0%-(-1%)=1%’라는 계산이 나온다.

이것 말고도 실질금리라는 개념이 쓰이는 경우는 또 있었다. 차주가 은행에서 돈을 빌릴 때 소위 꺾기에 의해 원하지 않은 예금상품에 비싼 이자를 주고 가입하는 경우가 그에 해당한다. 양건예금이라는 말로도 불리던 꺾기는 한때 은행권에서 관행처럼 통용됐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7월 기준 은행의 전체 대출금리 평균(신규 취급액)은 전달보다 0.09%포인트 하락한 3.40%였다. 하지만 여기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빼고 계산한 실질금리는 2.80%로 집계됐다. 실질 대출금리의 전달 대비 변동률은 +0.01%포인트였다. 6월 대비 7월 금리만 놓고 볼 때 명목금리는 하락했지만 실질금리는 소폭 올랐음을 알 수 있다. 명목금리가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차주들의 상환 부담은 오히려 커졌다는 얘기가 된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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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주들의 실질금리 부담 증가에 대한 우려는 최근 디플레이션 가능성이 활발히 거론되는 것과 연관돼 있다. 우리 사회에선 지난 8월의 소비자물가가 전년 동월 대비 마이너스를 기록(-0.038%)한 이후 디플레 현실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당분간은 마이너스 물가 상승률이 연이어 나타날 것이란 전망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 경우 실질 대출금리가 커지면서 취약 계층인 영세 자영업자와 저소득 가계의 대출 상환 부담이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 가계의 빚에 대한 부담 증가는 소비 위축으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기업들의 생산과 투자 위축을 불러올 개연성이 있다. 이는 다시 디플레이션 현실화를 촉진하면서 우리 경제를 악순환의 고리에 빠지도록 유도할 수 있다.

한은이 추산한 올해 2분기 말의 자영업자와 가계의 대출 잔액은 3개월 전보다 28조원 늘어난 1893조원이었다. 이 가운데서도 자영업자들이 빌려간 돈은 425조9000억원으로 추산된다. 3개월 전과 비교하면 12조6000억원이 늘어난 액수다.

전문가들은 전체 가계대출 가운데서도 자영업자들이 받은 개인사업자 대출이 가장 먼저 부실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한다. 이들 대부분이 영세한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는데다 경기 침체의 영향을 전면에서 가장 실감나게 받을 수 있어서이다.

이런 우려 속에서도 자영업자 대출은 날로 늘어나고 있다. 한은의 산업별 대출금 분석 현황에 의하면 올해 2분기 숙박·음식업 및 도·소매업 대출은 1년 전보다 12.0%나 증가했다. 이는 2009년 1분기 이후 가장 높은 증가율에 해당한다.

우리가 흔히 가계대출 뇌관이 터질 가능성을 거론할 때마다 전면에 내세우며 크게 우려하는 부분이 자영업자들의 대출이다. 경기가 일정 정도 수준에서 상승 기조를 이어간다면 당장은 별 문제가 없을 수 있다. 하지만 경기가 심각한 상태로까지 나빠진다면 뇌관의 폭발 위험성은 덩달아 올라가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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