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우리 경제의 최근 경기 정점을 2017년 9월이라고 공식확인했다. 당시를 기점으로 경기가 상승을 멈추고 하강 국면으로 전환했다는 것을 정부가 공식화한 것이다. 이번 경기 전환점 설정은 경기지표와 경제성장률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한 뒤 잠정적으로 내려진 결정이다. 최종 확정은 좀 더 시간을 두고 결정에 오류가 없음이 확인 된 뒤 신중하게 이뤄지지만 그대로 굳어질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지난해 말경부터 경기 정점 설정 문제를 고심해온 것으로 보인다. 동행지수 순환변동치와 선행지수 순환변동치 등 두 개의 경기지표가 지난해 12월 말을 기해 6개월 연속 하락했음이 확인됐다는 점이 그 배경이다. 두 지표의 동반하락은 당시 통계청이 발표한 ‘산업활동동향’을 통해 확인된 바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대개 두 경기지표가 반년 이상 동반하락하는 모습을 보이면 통계 당국은 경기 전환점 중 정점이 언제인지 공식 설정하는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한다. 우리 경기지표는 올해 3월까지 10개월 연속 동반하락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관련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후 두 달간 번갈아 상승 전환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지난 6월엔 다시 동반하락세로 되돌아갔다. 경기 하강을 본격적으로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진 셈이다.

이에 통계청은 경기 정점 공식화 문제를 검토해오다 지난 6월 국가통계위원회 경제통계분과위원회를 열고 이 문제를 논의했다. 그러나 복수의 위원들이 자료 미비 등을 이유로 좀 더 면밀히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신중론을 내놓는 바람에 결정이 미뤄졌다. 이에 따라 분과위는 지난 20일 다시 회의를 열었고, 결국 2017년 9월을 경기 정점으로 설정하기에 이르렀다.

주된 근거는 경기동행지수 순환변동치와 국내총생산(GDP) 상승률의 정점이 겹치는 때가 2017년 9월이라는 사실이었다. 동행지수 순화변동치는 2017년 3~5월과 9월에 101.0을 찍으며 절정을 이뤘고, 그해 GDP 성장률은 3분기에 3.8%(전년 동기 대비)를 기록했다.

분과위의 결정이 나오자 정부는 즉각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주도하는 국가통계위원회를 열고 이 문제를 심의한 뒤 경기 정점을 공표했다.

이번 결정으로 2013년 3월의 경기 저점 때부터 시작된 제11 순환기의 상승기간은 자동으로 54개월로 산정됐다. 상승기 54개월은 우리가 경기순환 주기를 처음으로 설정하기 시작한 이래 최장기 기록이다. 우리 경제의 제1 순환기는 1972년 3월~1975년 6월이다.

하지만 제11 순환기가 경기 저점을 찍고 마무리됐는지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현 순환기의 경기 저점에 대한 판단이 아직 내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정이지만 만약 우리 경제가 이달로 저점을 찍었다면 하강 기간은 24개월이란 계산이 나온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대체로 경기가 거의 바닥에 이르렀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김성태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실장의 경우 “경기가 저점 근방에 온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 분석이 맞다면 경기 사이클이 지금도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이는 곧 경기 하강 기간이 몇 개월 더 이어질 것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우리 경제에서 지금까지 나타난 최장기 하강기는 29월(1996년 3월~1998년 8월)이다.

일각에서는 현 순환기의 경기 정점이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였다는 점에 주목하며 정책적 오류 가능성을 거론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의견은 경기 하강의 주된 원인을 무엇으로 보느냐에 따라 갈린다.

정부의 정책적 오류를 원인으로 지목하는 이들은 소득주도성장 및 공정경제 정책이 경제의 활력을 자극하기보다 억누르는데 초점을 맞춘 것이어서 경기 하강을 초래했다고 주장한다. 정부 출범 이후 4개월만에 경기가 내리막 전환한 것이 그 정황증거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경기 전환점 설정 결과를 정책과 연계시키려는 움직임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정점 설정 자체가 경제정책을 평가하는 도구가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들은 2017년 말과 이듬해 초에 이르는 기간엔 전세계적 경기 흐름이 하강 국면으로 전환했다는 점을 특히 강조하고 있다. 우리 경제도 그 흐름 속에 있었을 뿐 정책적 오류가 특별히 작용한 것은 아니라는 취지의 항변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정책 당국은 경계심을 갖고 보다 면밀히 상황을 진단하면서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은 “경제가 반등할 수 있도록 개선 모멘텀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며 경제활력 제고를 위해 힘쓰면 내년 이후엔 잠재성장률 수준의 성장세를 회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기가 세계경제 흐름에 비해 보다 빨리, 보다 가파르게 활력을 잃었다는 점은 정책적 오류 가능성을 시사하는 요인들이다. 따라서 조만간 경기 반등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경제정책에 대한 신뢰가 훼손되면서 정부의 부담이 한층 커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저작권자 © 나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