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주 52시간제 보완을 위해 경제계의 의견을 수렴할 뜻을 내비쳤다. 4일 경제단체장들과 가진 청와대 오찬 간담회에서의 일이었다. 문 대통령은 한 단체장이 내년부터 시행범위가 넓어지는 주52시간제에 대해 보완이 필요하다고 건의하자 “기업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다”며 모처럼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그간 문재인 대통령이 번번이 “우리 경제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정책 노선 변경 요구에 꿈쩍도 하지 않았던데 비하면 진일보한 반응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번 발언은 경제정책 전반과 관련된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부 내용이나마 정책 손질 의도를 시사했다는 점에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재계 인사들과 만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사진 = 연합뉴스]
경제계 인사들과 만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사진 = 연합뉴스]

현재 우리 경제는 대부분의 지표가 부정적 흐름을 보이는 바람에 ‘M의 공포(마이너스 공포)’라는 유행어를 낳을 만큼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학자들 중 일부는 이미 우리 경제가 디플레이션 초입에 들어섰다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우리 경제가 점차 부진의 늪을 향해 가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경제전문가 대부분이 동의하고 있다.

이를 두고 개방경제 구조를 가진 우리 경제가 악화된 대외경제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한 결과라고 진단하는 의견도 나온다. 이 역시 틀린 진단은 아니라고 본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유독 빠른 속도로 악화되고 있다는 점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가장 큰 문제는 우리 경제가 근년 들어 잠재성장률 수준에도 못 미치는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올해와 내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1%대에 불과할 것이라는 각 기관의 분석은 큰 관심조차 끌지 못할 정도로 일반화돼 있다. 이를 부정하며 우리 경제가 제 경로를 찾아 순항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쪽은 사실상 청와대뿐이다.

그러는 사이 우리 경제는 점점 더 디플레의 늪 한가운데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음이 경제지표들을 통해 드러났다. 대표적인 것이 8, 9월 두 달에 걸쳐 연이어 나타난 마이너스 물가상승률(전년 동월 대비)이다. 공식집계 상으론 8월 물가 상승률이 0.0%라지만 소수점 세 자리까지 계산하면 그 값은 -0.038%로 산출된다. 9월 공식 집계치는 -0.4%였다. 관련 집계가 시작된 이래 우리 사회에서 소비자 물가가 1년 전보다 낮아지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정부는 일시적 현상으로 치부하지만 많은 경제전문가들은 이를 심각한 전조로 받아들이고 있다. 정부와 달리 수요 측 요인이 적지 않게 작용했다는 점에 주목한 결과다. 정부 설명대로 공급 측면의 요인에 의해서만 저물가 현상이 나타난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즉, 정책에 의해 물품 등의 공급가를 낮춘 것만이 저물가의 원인은 아니라는 게 민간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이는 지금의 저물가 현상이 상당 부분 수요가 부진한 데서 비롯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요 부진이 길게 이어지면, 즉 소비자들이 소비를 멈추거나 늦추는 일이 장기화되면 그게 바로 디플레이션 상황으로 연결된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따지고 보면 수요 부진의 근원은 고용상황 악화와 서민 가계의 가처분소득 감소라 할 수 있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일환으로 최저임금을 급격히 올린 것은 저소득층 일자리와 소득을 크게 줄였고, 지속적인 증세 정책은 중산층의 붕괴를 초래해 그들의 가처분소득조차 덩달아 줄어들게 했다.

특히 소득 하위 20%의 가구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고용 및 근로소득의 감소는 기업들의 어려움이 가중된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 기저엔 최저임금의 급속 인상과 주 52시간 근무제의 무차별적 도입, 공정경제 정책의 전면 가동 등이 도사리고 있다. 기업 측면에서 보자면 최저임금 급속 인상은 노동비용을 높였고, 주 52시간제는 노동공급을 줄여 결과적으로 산업생산을 위축시켰다. 여기에 공정경제 실현이란 명분을 앞세워 기업에 대한 옥죄기를 강화하니 민간 주도, 기업 주도의 성장이 제대로 실현될 리 만무하다.

오죽하면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을 기초한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이 경제 관련 행사에서 세무서와 공정거래위원회를 앞세운 기업 옥죄기식 조사를 축소해야 한다고 말했겠는가. 김 위원장의 이 같은 지적은 최근 서울 여의도에서 한국경제연구원이 주최한 특별좌담 행사에서 제기됐다.

그는 세계 경제가 만성질환을 앓고 있다고 진단하면서 체질이 약화된 상황에서 충격을 가하면 회복 불능 상태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가 말한 충격이란 우리 정부가 각종 정책을 통해 실행하고 있는 고강도 기업 규제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 문재인 정부가 실시해온 경제정책의 가장 큰 문제점은 경제를 활성화시키기보다 통제하는데 초점을 맞춰왔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이 2년 넘게 지속되다 보니 경제가 활력을 잃고 마침내 디플레 위기론까지 제기되는 상황을 맞게 된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경제정책의 기본은 통제가 아니라 활성화여야 한다는 점을 상기해야 할 시점이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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