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교역 환경이 악화된 가운데서도 한국의 수출 부진이 유독 심해진 원인은 무엇일까? 이 같은 의문을 풀어줄만한 설득력 있는 분석이 제기됐다. 동시에 대응책도 제시돼 눈길을 끌었다.

주체는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이었다. 연구원은 23일 공개한 ‘세계 소비재 시장 잠재력 분석 및 우리나라 수출 경쟁력 현황’이란 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수출 부진이 왜 유별나게 심화됐으며, 그 대응책은 무엇인지를 명료하게 분석해 내보였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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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은 우선 그 원인을 우리의 수출품목 구성에서 찾았다. 우리 수출 품목 가운데 중간재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다는 것이 직접적 이유라는 것이다. 중간재 비중이 높은 만큼 소비재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고, 그 결과 외부 환경 변화에 더욱 취약하다는 것이 연구원의 대체적 분석 내용이다.

연구원은 지난해 우리나라의 전체 수출에서 중간재가 차지한 비중은 71.5%나 됐다고 밝혔다. 이는 다른 수출 경쟁국들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준이었다. 연구원이 공개한 주요 경쟁국들의 중간재 수출 비중은 일본 51.5%, 미국 48.2%, 독일 46.4%, 중국 43.8% 등이었다.

반면 우리 수출 중 소비재 비중은 10.6%에 불과했다. 중국과 독일은 그 비중이 각각 25.7%, 25.1%였다.

이해를 돕기 위해 개념을 정리하자면, 소비재는 화장품이나 가전제품, 자동차 등처럼 소비자들이 바로 구매해 이용할 수 있는 상품을 의미한다. 소비재는 화장품이나 일회용 종이컵 등처럼 일찍 소모되는 비내구재와 자동차 가전제품과 같은 내구재로 나뉜다. 내구재 중 일부는 부를 생산하는데 이용되기 때문에 자본재의 성격을 띠기도 한다.

이와 달리 중간재는 소비재나 자본재를 생산하기 위해 쓰이는, 말 그대로 중간 단계의 활용성을 지닌 제품을 의미한다. 스마트폰 등을 생산하는데 필수적인 반도체나 기계조립에 소요되는 각종 기계부품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 중 우리의 경우 중간재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다 보니 미국과 중국 간 무역 갈등에서 비롯된 악역향을 더욱 심하게 받았다는 것이 연구원의 분석이다. 즉, 한국-중국-미국으로 연결된 글로벌 가치사슬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함에 따라 중국으로의 수출이 크게 감소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중국으로 중간재를 수출하면 중국이 그것을 활용해 소비재를 만든 뒤 미국으로 수출하는 흐름이 원활하지 못하게 되자 우리의 대중(對中) 수출이 부진해졌다는 의미다.

이는 얼마 전 한국은행 이주열 총재가 미·중 갈등으로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0.4%포인트 감소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한 것과 맥이 통한다. 이 총재는 0.4%포인트 중 0.2%포인트는 무역 경로를 통해, 나머지 0.2%포인트는 불확실성 심화에 의해 초래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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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현대상선 온라인 사보 바다소리/연합뉴스]

이 총재의 발언은 정책적 오류 가능성을 무시한 채 성장과 수출 부진의 원인을 대외 요인에서만 찾으려 했다는 비판을 낳기도 했다. 강대국 간 관세 장벽 높이기가 우리 수출에 반사이익을 준 측면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그러나 두 강대국 간 갈등이 우리 수출에 큰 타격을 가했다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국제통화기금(IMF)도 미·중 갈등으로 인해 지역별 성장률이 중국 1.0%포인트, 미국 0.3%포인트, 유로존은 0.2%포인트 정도 내려갈 것이라 추정했다.

연구원은 우리가 수출 부진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소비재 비중을 점차 늘려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중점 공략 지역으로는 소비재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는 신흥국들을 지목했다. 연구원이 특히 주목한 곳은 중산층 인구 규모가 급격히 커지고 있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중심의 신흥국들이다.

연구원이 소개한 주요 지역별 연간 소비재 수입 증가율은 중부 유럽 9.6%,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 7.2%, 중국 5.9% 등이었다. 거대 신흥국인 인도의 경우 연평균 증가율은 크지 않지만 세계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만큼 관심을 기울여야 할 대상으로 거론됐다.

우리가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할 소비재로는 화장품이 꼽혔다. 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소비재 수출품 중 59.4%(2018년 기준)를 차지하는 자동차가 근년 들어 수출 감소세를 보이고 있는 반면 화장품은 한국의 대표적 소비재 수출품목으로 부상하고 있다. 화장품의 연평균 수출 증가액은 26.3%로 집계됐다.

국제무역연구원의 이유진 연구원은 이상의 분석 결과를 토대로 의미 있는 제언을 했다. 그 핵심은 신흥국을 대상으로 소비재 수출을 늘리되 품질 고급화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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