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경제에 침체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지면서 ‘일본화(日本化, Japanification)’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더욱 커지기 시작했다. 일본화에 대한 우려가 처음 제기된 것은 꽤 오래 전의 일이다. 하지만 요즘처럼 이 말이 일상용어가 된 듯 자주 들린 적은 없었다.

‘일본화’는 특정 국가의 경제가 ‘잃어버린 20년’ 당시의 일본 경제와 유사한 상황으로 빠져들어가는 것을 의미하는 조어(造語)다. 특징적 현상으로 저물가와 저금리, 저성장이 거론된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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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물가는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대변하는 첫 번째 키워드라 할 수 있다. 당시 일본에서는 장기간에 걸쳐 물가 하락이 이어지면서 소비와 생산, 고용이 연쇄적으로 위축됐고, 경제는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런 상황이 1990년대 초부터 20여년이나 이어졌다. 일본 경제는 지금도 그 후유증을 앓고 있다.

이 같은 디플레이션의 장기화는 당연히 저금리와 저성장을 수반했다. 이들 세 가지는 서로 상호작용을 하며 일본 경제를 깊은 수렁으로 밀어넣는 작용을 했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촉진한 요인 중 하나로 거론되는 것이 인구 고령화다. 인구 고령화는 채권에 대한 수요를 늘려 채권 값을 올리는 작용을 하기 마련이다. 주지하다시피 채권가격의 상승은 곧 채권금리의 하락을 의미한다.

또 채권 금리의 하락은 전반적 금리하락으로 연결된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3년물 국고채 금리를 지표금리로 보고 있으며, 이 금리가 시장금리를 선도하는 것으로 인식돼 있다. 때론 한국은행 기준금리 흐름을 선반영한다는 인식마저 퍼져 있을 정도다.

저금리의 확산은 세계 경제가 그만큼 좋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금리를 낮추어 유동성을 늘리지 않으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만큼 경제가 활력을 잃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경제 회생을 위한 처방이긴 하지만 지나친 저금리는 현금에 대한 집착을 강화시키고 금융기관들의 대출 의지를 약화시켜 오히려 경제 활성화를 저해한다는 주장이 적지 않다. 오늘날 저물가에 저금리가 전세계 국가들에서 흔하게 나타나면서 경고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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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저금리 현상은 세계적 흐름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더 중요한 점은 그 추세다. 저금리로도 모자라 곳곳에서 마이너스 금리가 나타나고 있고, 그 추세는 갈수록 확산되어가고 있다. 저금리가 심화된 곳에선 예금금리는 물론 대출금리마저 마이너스로 돌아서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유럽의 몇몇 나라들이다. 덴마크에서 3위권에 랭크된 유스케은행은 이달 초부터 일정액 이상을 예치한 예금주에게 이자를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연 0.6%에 해당하는 수수료를 받기로 했다. 사실상 예금금리를 마이너스로 운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은행은 또 세계 최초로 주택담보대출에도 마이너스 금리를 적용하기 시작했다.

유럽 각국에서는 유스케은행처럼 예금주에게 수수료를 물리는 방식으로 사실상 마이너스 금리를 적용하는 은행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로 인해 독일 정부는 마이너스 금리 적용을 법으로 금지하는 방안을 강구하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마이너스 금리가 일반화되면 이자 소득으로 생활을 영위하는 고령 은퇴자들이 곤란한 지경에 빠지게 되고, 그것이 다시 사회문제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곤궁해지면 소비 또한 위축되기 마련이다.

마이너스 금리는 미국 금융사인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으로 세계적 금융위기가 본격화된 2008년 말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당시 미국의 단기 국채 수익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했고, 2012년부터는 유럽과 일본에서 정책금리가 마이너스 단계에 진입하는 현상들이 나타났다.

그 같은 현상들은 세계 경기의 침체와 맞물려 전세계로 확산되는 추세에 있다. 현재 세계 주요 경제국 가운데 미국은 나홀로 호황을 누리며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에서조차도 국채 수익률이 1.5% 정도에 불과해 물가상승률 등을 고려하면 실질 금리는 마이너스에 근접해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금의 세계적 저금리 현상은 분명 정상적인 경제 상황과는 거리가 있다. 여기에 맞물린 저물가와 저성장도 마찬가지다. 이에 대한 우려를 한마디로 뭉뚱그린 표현이 요즘 유행어처럼 번지고 있는 ‘일본화’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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