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 우리 사회에서는 소득 분배 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논란은 정부가 소득주도성장 정책 등을 통해 분배에 많은 신경을 기울였지만 오히려 양극화가 심화됐다는 비판에서 비롯됐다. 정부는 한때 임금 근로자들을 따로 떼어낸 뒤 저소득층의 소득 수준이 향상됐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주장 역시 비임금 근로자를 제외함으로써 사실을 호도한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조만간 효과를 나타낼 것이라는 입장을 유지하면서 비판론에 맞서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소득 양극화 문제가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소득주도성장 정책 이행의 세부 방안으로 채택한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 저소득층의 일자리를 빼앗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진 게 원인이었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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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여의치 않게 전개되자 요즘 들어서는 정부 당국자들 입에서 소득주도성장이라는 말 자체가 아예 나오지 않고 있다. 청와대가 장담했던 2018년 말 또는 2019년 상반기에도 이렇다 할 정책 효과가 나타나지 않은 것이 그 원인인 듯 보인다.

그러던 정부가 모처럼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통계청이 21일 발표한 3분기 소득부문 가계동향조사 결과를 발표한 내용을 거론하며 한 말이었다. 이날 홍 부총리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정부가 일관되게 추진해온 소득주도성장, 포용성장 효과가 3분기엔 본격화되고 있다”고 밝혔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올해 3분기를 기준으로 할 때 우리 사회의 가계소득 격차가 4년만에 개선됐다. 그 근거는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5분위 배율이 5.37배로 개선됐다는 점이다.

3분기 기준 5분위 배율은 2015년 4.46배, 2016년 4.81배, 2017년 5.18배, 그리고 지난해엔 5.52배를 기록했다. 2015년 이후 3분기의 5분위 배율이 지속적으로 커져왔음을 알 수 있다. 그처럼 커져만 가던 5분위 배율이 올해 3분기 들어 처음으로 줄어드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 홍 부총리가 강조하고자 한 내용이었다.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5분위 배율은 우리 사회의 소득 상위 20%(5분위) 가구의 평균소득을 하위 20%(1분위) 가구의 평균소득으로 나눈 값이다. 이 값이 클수록 소득 불균형 정도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즉, 5분위 배율이 5.37이라 함은 상위 20%의 부자 가구 평균 소득이 하위 20% 가구 소득의 5.37배라는 것을 의미한다.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5분위 배율은 일반인들에겐 다소 난해한 개념일 수 있다. 계산법도 그리 단순하지는 않다. 이를 이해하려면 먼저 균등화 처분가능소득의 개념을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그 개념은 ‘일정한 기준에 의해 처분가능한 가구소득을 개인소득으로 환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게 해서 1분위와 5분위 가구의 각 평균치를 산출한 뒤 그 배수를 계산해내면 5분위 배율이 도출된다.

균등화 처분가능소득의 값은 가구의 처분가능소득을 ‘가족수의 루트값’으로 나눔으로써 구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처분가능소득은 세금이나 연금, 의료보험료 등과 같이 일정하게 지출하는 항목을 제외하고 각 가구가 임의로 쓸 수 있는 소득을 의미한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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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복잡한 계산 과정을 거치는 것은 가구원 수를 무시한 가구당 소득은 부의 실질적 척도가 될 수 없다는 점 때문이다. 즉, 특정 가구의 절대 소득이 많더라도 가구원 수가 지나치게 많다면 해당 가구는 빈곤을 면하기 어려워진다. 1인당 가처분소득이 줄어든다는 게 그 이유다.

결국 균등화 처분가능소득은 가구 구성원 수를 고려해 산출해낸 가구별 소득 관련 지표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를 토대로 추출한 5분위 배율은 1분위와 5분위 가구 간의 실질적인 빈부 격차가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주는 지표로 기능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계산된 올해 3분기의 5분위 배율은 수치상으로는 분명 전년 같은 분기의 그것보다 개선된 게 사실이다. 그러나 소득 통계의 세부 내용들을 들여다보면 오히려 그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워진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문제점은 1분위 가구의 소득 증가가 주로 정부의 현금성 복지 강화에 의해 이뤄졌다는 사실이다. 이는 1분위 가구가 벌어들인 소득의 세부 내역을 살펴보면 금세 드러난다.

올해 3분기 기준 우리 사회 1분위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137만4400원으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 대비로는 4.3% 증가한 수치다. 증가율로 보면 5분위 가구(월평균 소득 980만200원)의 증가율 0.7%를 능가한다.

눈여겨 볼 부분은 근로소득이다. 전체 소득은 늘었지만 1분위 가구의 월평균 근로소득은 44만7700원에 그쳤다. 이는 하위 20%의 저소득 가구가 취업 후 일을 해서 번 돈이 그것밖에 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전체 소득 137만4400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3% 수준에 불과하다. 전년 동기 대비 근로소득 감소율은 6.5%로 집계됐다.  

이들 가구의 근로소득 감소는 7분기째 이어지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감소폭이 두자릿수에서 한자릿수로 줄어들었다는 사실이다.

반면 1분위 가구의 월평균 이전소득은 67만3700원으로 전년 동기에 비해 11.4%나 늘었다. 이전소득은 내 손으로 번 돈이 아닌 불로소득이다. 이전소득의 증가는 기초연금 등 현금성 복지 강화의 시행 결과 나타난 현상이다. 물론 친척이나 친지 등으로부터 지원받는 돈도 이전소득으로 분류되지만, 특히 1분위 가구의 경우 이전소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정부지원금이라 할 수 있다.

이 같은 소득 구조는 1분위 가구가 자립 기반을 잃어가는 가운데 정부 의존도를 점차 높여가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런 추세가 이어진다면 향후 국가 재정의 건전성이 훼손되는 동시에 후대의 부담이 커지게 된다. 복지제도에 대한 근본적 손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 이유다.

1분위 가구의 사업소득이 24만400원으로 1년 전보다 11.3%나 늘어난 점도 눈길을 끈다.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월평균 소득 집계에서 사업소득이 4.9% 줄어든 것과 대조적이기 때문이다. 이는 2분위에 위치했던 자영업 가구가 소득이 줄어 1분위로 내려앉은데 따른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 또 하나 추론할 수 있는 것은 기존 1분위 가구 중 일부가 소득 증대를 위해 소규모 자영업에 나섰을 가능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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