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의 오래된 이론 중에 파레토의 법칙이란 게 있다. 80대 20 법칙으로 통칭되는 이 법칙은 통계학적 이론으로서 부의 불평등 현상을 설명할 때 자주 인용된다. 19세기 말 이탈리아 경제학자 빌프레도 파레토는 자신의 집 정원에서 콩을 재배하다가 이 법칙을 발견했다. 요지는 잘 여문 20%의 콩깍지가 전체 콩 수확량의 80%를 담당한다는 것이었다. 이 법칙은 신기하리만큼 사회 현상에서도 거의 비슷하게 작동된다. 특별한 통제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경쟁사회에서는 상위 20%의 부자들이 전체 사회의 부 가운데 80%를 과점하게 된다는 것이다.

파레토가 이 법칙을 주창하게 된 배경엔 당시 이탈리아의 사회상이 자리하고 있었다. 소수의 사람들이 이탈리아 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그의 인식이 이 법칙을 발견하는 동인이 됐다는 의미다.

[사진 = 르노삼성 제공/연합뉴스]
[사진 = 르노삼성 제공/연합뉴스]

학자들은 이 같은 사회 현상을 어떻게 해석할지를 두고 오랫동안 논쟁해왔다. 보수와 진보,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이론가들은 각자 대립구도를 이루며 나름의 주장을 펼쳐왔다. 사회 불평등에 대한 시각 차를 드러내는 양대 이론으로 기능론과 갈등론도 자주 거론된다. 전자는 조화에, 후자는 갈등에 각각 주목하려는 경향성을 띤 이론들이다.

사회 불평등에 보다 관대한 쪽은 기능론자들이다. 사회 구성원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능력과 적성에 맞는 역할을 담당할 때 사회가 유기적으로 작동하면서 건강성을 유지해 나간다는 것이 그들의 견해다. 그들은 능력 차에 따른 보상의 많고 적음을 당연시한다.

자본주의 이념을 추구하는 국가에서는 사회 불평등이 불가피하다는데 대해 일정 정도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불평등 현상을 보다 적극적으로 수용하려는 이들은 소수 엘리트들이 더 많은 보상을 누리지만, 그에 걸맞게 사회 발전에 기여한다는 생각을 드러내곤 한다. 그들 중엔 1%의 엘리트가 99%의 나머지 사회 구성원들을 먹여 살린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어떤 경우든 극단의 생각엔 늘 비판의 여지가 생기기 마련이다. 사회가 극단으로 갈릴수록 갈등의 강도가 세질 수밖에 없어서이다. 중요한 것은 양극단을 어떻게 조화시키느냐다. 소수의 수월성을 사회 발전의 동력으로 활용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변동 자극의 한계점을 넘어서는 갈등을 관리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상의 두 가지 주장과 생각을 잘 대변하는 것이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인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이다. 소득주도성장이 분배에 방점을 찍은 정책이라면, 혁신성장은 소수 엘리트의 주도적 역할에 주목한 정책이라 할 수 있다. 혁신성장의 정확한 내용이 무엇인지는 지금도 불분명하지만 혁신은 소수 엘리트가 주도할 수밖에 없는 개념이다.

하지만 현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에 무게 중심을 두어왔던 게 사실이다. 아무리 봐도 혁신은 그저 구색 갖추기용의 이름뿐인 정책이란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다만, ‘3축’ 정책의 또 다른 하나로 강조되는 공정경제는 소득주도성장과 함께 문재인 정부의 실효적 경제정책으로 기능해오고 있다. 이는 공정경제 정책 주무 당국인 공정거래위원회의 업무 영역을 넘어 급기야 범정권 차원에서의 스튜어드십 코드를 적극 행사하는 단계로까지 비약했다.

2019 글로벌 혁신성장 포럼. [사진 = 연합뉴스]
2019 글로벌 혁신성장 포럼. [사진 = 연합뉴스]

사실상 혁신을 배제한 소득주도성장과 공정경제의 불균형적 강화는 각종 부작용을 일으켜왔다. 이는 끊임없는 ‘마사지’ 논란을 유발해온 통계청의 소득 관련 자료를 통해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경제적 불평등의 실질적 척도인 근로소득이 현 정부 들어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다. 근로소득은 가계가 스스로 일을 한 대가로 벌어들인 돈이다. 실질적 생존능력을 말해주는 요소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올해 3분기 1분위 가구의 근로소득은 급격히 줄어들어 44만7700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47만8900원)에 비해서는 6.5%, 2017년 동기(61만8400원)에 비하면 27.6%나 감소한 것이다. 이를 메워준 것은 현 정부의 현금성 지원이 주가 되는 이전소득의 증가였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중요한 실천 방안 중 하나인 최저임금의 가파른 인상이 오히려 1분위 가구의 자생 능력을 훼손한데 따른 결과다. 그 직접적 주범은 저소득층 일자리의 감소다.

임기 반환점을 돈 현 시점에서 확인된 이 같은 결과는 정부의 경제정책이 성공적이지 않음을 웅변해준다. 그렇다면 방법은 궤도 수정 외엔 없다고 보아야 한다. 구체적 대안 중 하나가 명실상부한 혁신성장의 강력한 추진이다. 이를 효율적으로 실천하고 주도할 수 있는 경제주체는 대기업과 혁신적 스타트업 등 소수 엘리트 집단이다. 대기업에 대한 적대감을 버리고 기업 친화적 정책을 펴면서 야심찬 혁신가 그룹을 보다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필요한 이유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이제부터라도 경제정책의 방점을 규제와 관리 대신 활성화에 두어야 한다는 뜻이다. 고언하건대 그 출발점은 청와대 정책실의 과감한 폐지여야 한다. 이는 현 정부 출범 이후 3기째를 맞은 청와대 정책실이 경제 활성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생각해보면 웬만큼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청와대 정책실은 집행기관으로서의 법적 자격을 갖추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간 경제정책을 좌지우지해왔다. 소위 ‘어공’(어쩌다 공무원)들이 어설픈 정책 실험을 하느라 경제사령탑을 유명무실한 존재로 만든 것 자체도 정책실이 안겨준 폐단의 중요한 일부다.

실행만 된다면 정책실 폐지는 그 자체만으로도 경제주체들에게 희망적 메시지를 줄 수 있다. 때마침 경제통 총리 지명설까지 나도는 상황이니 지금이 바로 결단의 적기가 아닐까 생각된다.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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