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들이 한국 주식시장에서 급히 이탈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 정도가 이례적으로 심해 ‘엑시트 코리아’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들은 지난달 초부터 영업일 기준으로 20일 넘게 순매도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이로 인해 5일 현재까지 국내 주식 시장에서 누적된 외국인 순매도 규모는 5조678억원(잠정)으로 늘어났다.

외국인들의 순매도 행진이 시작된 때는 지난달 7일이었다. 당일 하룻동안 발생한 외국인들의 순매도 규모는 1549억원이었다. 외인들의 순매도는 늘상 있는 일이다 보니 처음 며칠 동안은 대수롭지 않은 일로 받아들여졌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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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순매도 행진이 10영업일 이상 이어지면서 누적 액수가 2조원을 넘어가자 외국인들의 움직임을 심상치 않게 받아들이는 기류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들의 순매도 누적액은 지난달 22일 2조2000억원을 기록하더니 29일엔 4조원을 넘보는 단계까지 올라갔다.

외국인 순매도 행진은 달이 바뀌어도 멈출 줄 몰랐다. 순매도 행진 21일째(영업일 기준)를 기록한 5일 하룻동안에도 외국인들은 국내 유가증권 시장에서 660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최근 한달 가까이 이어진 외국 자본의 이탈 행진으로 코스피 주가는 무려 4%가량이나 하락했다. 더욱 심각한 점은 세계 주요 증시가 상승세를 보이는 시점에도 유독 국내 증시만 추락하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같은 현상을 두고는 여러 가지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누구도 그 이유를 확실히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외국인 각자의 의중을 정확히 꿰뚫어보는 것 자체가 애시당초 불가능한 일인 탓이다.

다만, 분석가들이 제시하는 이유 중엔 몇 가지 공통적인 것들이 있다. 그 첫째는 역시 외부 환경에 취약한 한국의 개방형 경제구조다. 그로 인해 미·중 무역갈등은 한국의 주식시장에 직격탄이 되고 있다. 더구나 중국과 미국은 차례로 우리의 1, 2위 교역국이다. 우리 주식시장은 미·중 무역갈등이 장기화되면서 협상 추이와 관련된 언론 보도에 일희일비하는 등 취약한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지금의 ‘셀 코리아’ 현상과 보다 직접적 연관성을 갖는 요인으로는 모건스탠리 캐피털 인터내셔널(MSCI)의 신흥시장(EM) 지수 정기변경이 거론된다. 지난달 26일 끝난 지수변경 작업 결과 이 지수에서 한국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든 것이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최근 외신 보도를 통해 알려진 바에 의하면 재조정된 MSCI 신흥시장 지수에서 한국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중국·대만에 이어 3위에 그쳤다. 대만에게 2위 자리를 내주고 한 계단 밀려난 것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MSCI 지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투자시장 결정의 중요한 참고자료로 삼고 있는 게 현실이다.

국내 분석가들은 MSCI의 신흥시장 지수 순위에서 한때 1위를 달렸던 한국이 중국은 물론 대만에도 밀렸다는 점을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새로운 경제 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국가적 위상이나 경제 규모 등 모든 여건이 우리보다 못한 대만에도 밀린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이를 두고 일본의 악의적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제기되고 있다. 그 같은 의심은 일본의 전범 기업 미쓰비시가 MSCI의 모회사인 모건 스탠리의 최대 주주라는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있다. 모건 스탠리는 미국 뉴욕에 본사를 두고 있지만 세계적 금융위기 이후 미쓰비시의 영향권 아래로 들어갔다. 미쓰비시는 현재 한국과 전시 징용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는 기업이다.

최근 2년여 동안 소득주도성장 등 실험적 경제정책이 적용되면서 한국 경제가 활력을 잃은 채 저성장의 늪에 빠져들고 있는 점이 외국인의 불안감을 자극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셀 코리아’ 현상이 최근 국내에서 부쩍 자주 거론되는 디플레이션 우려와 무관치 않다는 뜻이다.

한·미 간 외교 갈등으로 한국 특유의 지정학적 위기감이 한층 고조됐다는 점도 외국 자본의 이탈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압박하면서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까지 시사한 것 등이 위기감을 자극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여러가지 분석이 제시되고 있지만 아직은 어느 것이 정답인지 알기 어렵다. 다만, ‘한국만 왜?’라는 의문을 던진 뒤 그에 대한 답을 찾으려 노력해야 할 필요성은 어느 때보다 커졌다고 할 수 있다. 그 답을 찾기 위해서는 미·중 갈등과 같은 세계 공통의 요인 외에 무엇이 ‘셀 코리아’의 결정적 원인으로 작용했는지를 분석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는 많은 외신들이 지적한 대로 정책적 오류가 원인 중 하나일 수 있다는 점도 충분히 감안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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