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 간 무역협상이 ‘1단계 합의’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 언론들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합의안을 승인했으며, 양국 대표가 조만간 미국 또는 중국에서 만나 서명식을 갖기로 했다.

1단계 합의안에 대한 공식 서명이 끝나면 미·중 무역갈등은 발발 21개월만에 유의미한 변화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지난 21개월 동안 두 나라는 치킨 게임을 하듯 위태로운 싸움을 벌이며 상대를 압박해왔다. 특히 미국은 중국의 항복을 요구하며 중국산 수입품에 대해 무자비한 관세폭탄을 퍼부어왔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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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대중(對中) 압박을 서서히 높여온 결과 13일 현재 2500억 달러어치의 중국산 제품에 25%, 1110억 달러어치의 다른 중국산 수입품에 15%의 관세를 각각 부과하고 있다. 만약 이번에 1단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면 오는 15일부터는 나머지 중국산 제품 1650억 달러어치에 대해서도 일차로 15%의 관세가 부과될 것이 확실시됐었다. 규모는 더 작지만 중국 역시 미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 공격으로 최대한 맞대응해왔다.

그러나 상대국 제품의 수입 규모에서 월등히 밀리는 중국은 수세적 입장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트럼프 대통령이 홍콩인권법 승인과 화웨이 압박 수단까지 동원해 전방위 공격을 퍼붓자 중국은 미국의 요구를 일부 수용하는 선에서 1단계 합의안에 동의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양보안 중 하나가 500억 달러 규모의 미국산 농산물 수입이다. 이번 1단계 합의안에는 중국이 내년 한해 동안 500억 달러 규모의 미국산 농산물을 수입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진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자신의 지지 기반인 팜벨트(미국 중서부 농업지대)의 표심을 얻기 위해 농산물 수출에 큰 관심을 기울여왔다.

결국 중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절실한 요구를 수용해주고 대신 조만간 부과될 예정이었던 자국 제품에 대한 미국의 추가 관세를 유예하는 선에서 1단계 합의안에 동의한 것으로 분석된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중국이 미국으로부터 기존의 고율관세도 일부 완화한다는 약속을 받았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산 제품에 대한 기존 관세가 최대 절반가량 감소될 것이라고 전했다.

중국은 이번에 자국 진출 미국 기업들의 지식재산권 보호를 강화하고 금융 서비스 시장을 미국 기업에 보다 폭넓게 개방한다는데 대해서도 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포함된 내용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이번 1단계 합의로 인해 양국 간 갈등 정도가 보다 약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이는 그간 높아져 가기만 하던 긴장 강도가 비로소 완화되는 국면으로 접어들 것이란 기대를 낳고 있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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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직 큰 기대를 갖기엔 여러 가지 석연치 않은 점들이 많다. 우선 이번 1단계 합의안 내용이 본질적인 문제에 접근했다기보다 미국이 일단 공격 강도를 완화하고 중국이 그에 상응하는 성의를 보이기로 한 정도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이번 합의안은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을 앞두고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방편으로 마련한 최소한의 내용을 담았다고 볼 수 있다.

그나마 합의안이 지속적으로 효력을 가질 수 있을지도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WSJ 보도에 따르면 미국이 내건 조건에는 중국의 미국산 농산물 수입 규모를 분기별로 평가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는 곧 양측의 갈등이 언제든 재연될 소지가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미국은 그동안 중국이 대규모 농산물 수입을 약속하고도 이를 성실히 이행하려 하지 않는다며 불만을 토로해왔다.

보다 큰 문제는 미·중 무역갈등의 본질적인 사안들에 대한 구체적 해결방안이 1단계 합의안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미국이 생각하는 문제의 핵심은 중국 진출 미국 기업들의 지식재산권 침해와 기술 이전 강요, 중국 당국의 자국 기업에 대한 보조금 지급 등이다. 미국은 이 같은 행태에 제동을 걺으로써 중국의 경제패권을 견제하려는 속내를 지니고 있다는 게 국제사회의 일반적 시각이다.

하지만 1단계 합의안은 이상의 핵심 쟁점들을 본격적으로 다루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은 굵직한 이들 현안에 대해서는 향후 2단계 또는 3단계 협의를 통해 다뤄나간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이상의 이유들로 인해 이번 1단계 합의는 어디까지나 ‘미니 딜’에 불과하다고 보는 게 옳을 것 같다. 따라서 이번 합의안 마련의 의미를 정리하자면 양측이 당분간 ‘휴전’ 모드에 들어갈 준비를 했다는 점을 꼽을 수 있을 듯하다. 선거전을 앞두고 미국민들의 지지를 모아야 하는 트럼프 대통령이나 홍콩 사태 등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는 시진핑 주석 모두에게는 내정 관리를 위한 휴전이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번 1단계 합의는 휴식과 휴전을 위한 명분쌓기용일 가능성이 크다고 해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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