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한국을 상대로 취한 수출 규제를 일부 완화하는 조치를 발표했다. 지난 7월초 포토레지스트와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고순도 불화수소(일명 에칭가스) 등 반도체·디스플레이 3대 소재를 대상으로 대한(對韓) 수출 규제를 본격화한 이후 처음 취해진 완화 조치다.

일본 교역당국인 경제산업성(경산성)은 지난 7월 4일부터 한국으로 수출되는 에칭가스 등 3대 소재를 일반포괄허가 대상에서 개별허가 대상으로 전환했다. 3년마다 한 번씩 갱신되던 경산성의 수출 일괄허가가 수출할 때마다 일일이 취해야 하는 개별허가로 바뀐 것이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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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3대 소재에 대한 수출규제 조치 이후 우리의 시행령에 해당하는 수출무역관리령을 개정함으로써 한국을 아예 화이트국가 그룹에서 제외했다. 이에 따라 한국으로 수출되는 대부분의 수출품목이 개별허가 대상으로 전환됐다. 안보상 리스크가 있는 품목에 대한 수출관리를 보다 철저히 한다는 게 일본이 내세운 표면적 이유였다. 즉, 안보에 관한 한 한국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점을 공표한 것이었다.

일본의 그 같은 논리는 한국 정부의 지소미아(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 통보로 이어졌다. 한국 정부는 이와 별개로 일본에 대한 수출절차 우대 조치를 철회했고, 일본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기도 했다. 이중에서도 지소미아 종료 통보는 일본이 표면상 내세운 안보상 이유를 정면으로 무너뜨리기 위한 조치로 평가됐다.

그러나 그 이후 본격화된 미국의 적극적인 중재에 의해 한국은 WTO 제소 절차를 중단하고, 지소미아 종료 통보의 효력을 조건부로 정지시켰다. 일본과 수출 규제 해제를 위한 대화를 재개한다는 것이 전제조건이었다.

일본의 이번 조치는 이 같은 일련의 과정 속에서 이뤄진 것이어서 후속 조치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한다. 경산성의 이 조치는 오는 24일 중국 청두에서 두 나라 정상이 만나 정상회담을 갖는다는 사실과도 연관돼 있는 듯 보인다. 정상회담을 보다 부드럽게 이끌기 위해 일본이 최소한의 성의를 보였다고 해석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상징성은 있지만 한국 입장에서 볼 때 이번 조치에 담긴 내용은 그리 긍정적이지 못하다. 내용 자체는 정상회담 직전이라는 시점과 앞선 한국의 유화 조치에 대해 그야말로 최소한의 성의만 보였다고 평가할 정도에 불과했다. 한국 정부 역시 일본의 이번 조치를 “일부 진전”이라 평가하면서도 “문제를 해결하기엔 미흡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실제로 일본 경산성이 내놓은 이번 조치의 내용은 최소한의 완화책에 해당한다. 경산성은 이번에 반도체 기판 위에 바르는 용도의 감광액인 포토레지스트에 한해 기존의 개별허가 대신 특정포괄허가 방식을 적용한다고 밝혔다. 경산성은 20일 이러한 내용이 포함된 포괄허가취급요령 개정령을 공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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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에칭가스, 포토레지스트. [그래픽 = 연합뉴스]

일본이 정한 수출 심사 및 승인 제도에 의하면 포괄허가는 일반 포괄허가와 특별일반 포괄허가, 특정 포괄허가 등 세 종류로 분류된다. 이중 일반 포괄허가는 화이트국가의 경우 한번 수출 승인이 떨어지면 그 효력을 3년간 인정하는 방식이다. 그 다음 단계인 특별일반 포괄허가는 일본 수출업체가 자율준수프로그램(ICP) 가입 기업일 경우에 한해 수출 승인의 효력을 3년간 인정해주는 방식이다.

최하위 단계로 평가되는 특정 포괄허가는 특정한 수입업체에 한해 포괄허가를 인정하는 방식이다. 특정 수입업체(한국 업체)가 그나마 이 혜택을 받으려면 6차례 이상의 개별허가 실적을 올려야 한다.

이번에 경산성이 취한 조치는 위의 세 가지 중 특정 포괄허가 방식을 포토레지스트 한 가지 제품에 한해 적용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대상으로 특정된 국내 수입업체도 불과 한 곳뿐인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의 이번 조치 내용을 고무적인 것으로 평가할 수 없는 이유는 이뿐이 아니다. 포토레지스트는 일본이 첫 번째 수출 규제 대상으로 삼은 세 가지 소재 중에서 쓰임새가 가장 미미하고, 요구되는 수입량 또한 가장 적은 품목에 해당한다. 게다가 수출국을 다른 곳으로 바꾸기도 비교적 용이한 품목이라 할 수 있다.

한 마디로 정리하면 일본의 이번 조치는 상징성을 제외한 채 그 내용만 놓고 보면 ‘안 해줘도 그만’이란 평가를 받을 만한 것에 불과하다.  일본 입장에서 굳이 명분을 찾자면 포토레지스트는 안보상 위험 요소가 가장 적은 품목이라는 점을 꼽을 수는 있겠다.

다만, 대화의 분위기를 긍정적으로 바꿔보려는 시도의 일환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보자면 우리 정부가 밝힌 대로 “일부 진전”이란 평가를 내릴 수 있다.

한·일 두 나라 정부는 지난 16일 도쿄에서 ‘제7차 수출관리 정책대화’를 갖고 통상 갈등 해소 문제를 논의한 바 있다. 이를 토대로 두 나라 정상은 오는 24일 중국 청두에서 한·중·일 정상회의 행사를 계기로 양자 회담을 갖게 된다.

현재 우리 정부는 일본이 수출관리령을 다시 개정해 한국을 화이트국가 그룹으로 복귀시키기를 원하고 있다. 일본이 대한 수출규제 조치를 처음 시작한 지난 7월 1일 이전으로 돌아가라는 얘기다. 그렇게 되지 않는 한 한국이 일본에 대해 취하고 있는 백색국가 제외 등의 교역상 제재 조치도 철회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우리 정부의 기본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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