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주시에 있는 원자력 발전소 월성 1호기의 영구 정지가 확정됐다.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가 24일 전체회의를 열고 논란 속에 표결을 강행함으로써 내려진 폐쇄 확정 결론이었다. 원전 영구 정지 결정은 고리 원전 1호기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월성 1호기 존폐 문제는 정권 논리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우리 사회의 뜨거운 현안이었다는 점에서 이번 결정은 두고두고 여운을 남길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결정이 쉽사리 해결될 수 없는 탈원 정책 관련 논란과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는 탓이다.

월성 1호기. [사진 = 한국수력원자력 제공/연합뉴스]
월성 1호기. [사진 = 한국수력원자력 제공/연합뉴스]

당장 결정 과정을 둘러싼 논란부터 쉽사리 가시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월성 1호기 문제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난제 중의 난제였던 만큼 국회의 개입을 거쳐 현재 감사원 감사가 진행 중인 사안이다. 그런데 아직 감사원의 결론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원안위가 서둘러 영구 정지 결정을 내린 것이다.

24일 원안위는 전체회의에서 이 문제를 표결에 부쳤다. 첨석 위원 7명 중 6명이 표결 처리에 찬성함으로써 단행된 일이었다. 출석 위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표결 처리가 가능하다는 규정이 그 근거가 됐다.

표 대결 결과는 찬성 5표, 반대 2표였다. 찬성 의견을 낸 이는 엄재식 위원장과 장보현 사무총장, 그리고 김재영·장찬동·진상현 위원 등이었다. 이병령·이경우 위원은 반대 의견을 낸 것으로 밝혀졌다. 이병령 위원은 표결 방식 자체에 반대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월성 1호기 문제를 둘러싼 쟁점은 논의 및 결정 과정이 합리적이었느냐 하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이는 월성 1호기 영구 정지가 결정되기까지의 과정을 되돌아보면 금세 이해되는 문제다.

월성 1호기는 1982년 11월 가동을 개시한 뒤 상업운전을 이어왔다. 그러다 한차례 수명 연장이 결정돼 2022년까지 연장운전을 보장받았다. 수명 연장이 결정된 이후 월성 1호기 안전성 강화를 위한 설비 교체 등이 이뤄졌고, 그 과정에서 원전 운영 주체인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7000억여원의 비용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이 출범하면서 분위기가 급변했다. 대통령 선거 공약 이행의 일환으로 한수원 내부에서 느닷없이 월성 1호기의 조기 폐쇄 결정이 내려진 것이다. 한수원 이사회가 지난해 6월 회의를 열고 경제성 부족을 이유로 들며 월성 1호기 조기 폐쇄를 결정한 것이었다. 당시 이사회가 특별히 강조한 것은 안전성이 아니라 경제성이었다.

그에 앞선 2017년 6월 문재인 대통령은 고리 원전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 참석한 뒤 월성 1호기 문제를 거론했다. 고리 1호기에 이어 월성 1호기도 “가급적 빨리 폐쇄하겠다”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문 대통령의 강력한 주문에 한수원 이사회가 그 이듬해에 무리수를 두어가며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결정을 내린 모양새가 됐다.

그러나 한수원이 경제성을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이유로 든데 대해 거센 반발이 이어졌다. 반발의 주된 내용은 한수원이 정권 논리에 장단을 맞추기 위해 자료를 조작하는 방식으로 월성 1호기의 경제성을 실제보다 낮게 평가했다는 것이었다. 구체적으로 문제가 된 것은 월성 1호기의 가동률이었다. 이것을 실제보다 낮게 잡은 뒤 경제성을 계산해 어거지로 원하는 결론을 얻어냈다는 것이 반발의 요지였다.

원자력안전위원회 회의 모습. [사진 = 연합뉴스]
원자력안전위원회 회의 모습. [사진 = 연합뉴스]

한수원이 이사회 개최 하루 전에야 회의 장소와 개최 시간을 벼락치기로 통보한 뒤 서둘러 결론을 내린 점도 논란을 키웠다. 당시 한수원 주변에서는 이사회가 이미 정해진 결론을 얻기 위해 벼락치기, 날치기로 이사회 결정을 유도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었다.

이상의 주장들이 사실이라면 절차적 하자는 둘째로 치더라도 일의 진행 과정에서 심대한 조작이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논란이 확산되자 이 문제는 결국 국회로 넘어가게 됐고, 국회는 지난 9월 제기된 의혹에 대해 따져볼 여지가 있다는 전제 하에 감사원에 감사를 요청했다. 당시 국회는 폐쇄적 방식으로 월성 1호기 영구 정지를 결정한 한수원 이사들에게 배임 등의 혐의가 있는지 여부를 가려달라며 한수원에 대한 감사 요구안을 의결했다.

이로써 감사원 감사가 시작됐고, 원안위의 일부 위원들은 적어도 감사가 끝날 때까지는 원전 조기 폐쇄 결정을 미루자는 주장을 펼쳐왔다. 이번 원안위 전체회의에서 월성 1호기 영구 정지에 반대한 이병령·이경우 두 위원은 그 같은 의견을 제기했으나 수 싸움에서 밀려 뜻을 관철하지 못했다.

이날의 원안위 전체회의는 지난 2월 한수원이 월성 1호기 영구 정지를 위한 운영변경 허가를 신청함에 따라 열렸다. 원안위는 지난 10월과 11월에도 잇따라 회의를 열고 같은 안건을 다뤘지만 위원 간 격론이 맞서는 바람에 쉽사리 결론을 내리지 못했었다. 그러다 이날 표결 처리 방식을 강행함으로써 영구 정지 결정을 내리게 됐다.

이날 원안위가 원전 영구 정지 안건을 회의에 상정한 논리적 근거는 안전성이었다. 감사원이 ‘경제성 평가’ 부분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과 별개로 안전성을 논의의 근거로 삼은 셈이다.

이날 원안위 결정이 내려졌다고 해서 원전 논란이 쉽사리 가라앉을 것 같지는 않다. 당장은 감사원이 어떤 결론을 내놓을지가 문제다. 특히 한수원이 경제성을 축소 조작했다는 결론이 내려질 경우 이 사안이 지닌 폭발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설사 그 반대의 결론이 나온다 할지라도 탈원전과 맞물린 사안인 만큼 월성 1호기 문제는 우리 사회의 현안으로서의 열기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저작권자 © 나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