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가시화 단계에 돌입했다. 원자력의 안전 관리를 위해 설립된 기관으로서 원자로의 생사 여탈권을 쥔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가 월성 1호기의 조기 폐쇄를 결정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원안위는 지난 24일 찬반 논란 속에 그 같은 결정을 내렸다.

이번 결정은 고리 1호기 폐쇄에 이은 두 번째 원전 폐로 조치다. 하지만 이번 결정은 고리 1호기 폐로와는 차원이 다르다. 고리 1호기는 한차례 수명 연장 조치를 거치며 사실상 소임을 다한 뒤 가동 중단에 들어갔다. 고리 1호기는 1978년 4월 상업운전을 시작한 뒤 30년 수명을 다했으나 10년 더 운행 허가를 받아 근 40년 간 임무를 수행했다. 고리 1호기에 대한 영구 가동 정지가 이뤄진 때는 2017년 6월이었다.

월성 1호기 모습. [사진 = 연합뉴스]
월성 1호기 모습. [사진 = 연합뉴스]

따라서 우리 원전 역사에서 첫 번째로 영구 정지 조치를 당했지만 고리 1호기의 가동 중단은 별다른 사회적 논란이나 갈등을 부르지 않았다. 어떤 면에서 보자면 고리 1호기 폐로 조치는 너무 늦었다는 감마저 안겨줬다. 국내 최초의 원전인 고리 1호기는 유독 많은 사고를 일으켰다. 그 바람에 고리 1호기의 가동을 불안하게 여기는 사회 분위기도 형성돼 있었다. 그런 원전이 폐로됐으니 별다른 파장이 있을 리 만무했다.

하지만 월성 1호기는 10년 수명 연장을 결정한 뒤 무려 7000억원을 잡아먹으며 안전성을 보강한 ‘멀쩡한’ 원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원안위가 영구 정지 안건을 전체회의에 상정한 근거는 경제성이 아닌 안전성이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원안위의 이 같은 주장은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회의 참가 위원 일부의 반발도 그렇거니와, 안전성 운운하는 것 자체가 현재 진행 중인 감사원 감사 결과가 자신들에게 불리하게 나올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한 것으로 의심되기 때문이다.

당초 원자로 운영 주체인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경제성을 이유로 월성 1호기 영구 정지를 위한 운영변경 허가를 원안위에 신청했다. 이 과정에서 한수원이 원전 가동률을 실제보다 낮추는 방식으로 경제성을 고의로 과소평가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같은 의혹은 국회가 한수원 이사들의 배임 가능성을 거론하며 감사원에 감사를 요청함으로써 상당한 설득력을 얻게 됐다. 현재 감사원은 이에 대한 감사를 진행하고 있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런데 이번에 원안위가 안전성을 들어 덜컥 월성 1호기 조기 폐로 결정을 내렸으니 사회적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이다. 논란과 파장의 확산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당장 원안위 내부에서부터 거센 반발이 일고 있는 점이 그 배경이 되고 있다. 전문가적 식견을 가진 이들의 반발이라는 점에서 상당한 설득력까지 얻고 있는 게 사실이다.

기술적인 부분을 논하기 이전에 국회마저 한수원의 방침 결정 과정에 의혹이 있다며 감사원 감사를 청했고, 감사가 진행 중인 과정에서 원안위가 서둘러 조기 폐로 결정을 내린 것은 아무래도 이해하기 어렵다. 월성 1호기는 가동이 일시 중단된 상태여서 위험성을 안고 있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안위가 ‘안전성’을 이유로 들며 서둘러 원전을 폐쇄키로 결정한 것은 더더욱 납득하기 힘들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정치 논리가 아니고서는 이를 이해할 근거를 찾기 어렵다.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충실하고자 하는 위원들이 우세한 가운데 원안위가 문재인 대통령의 “가급적 빨리 폐쇄하겠다”는 발언에 압박감을 느낀 것이 무리수를 둔 배경일 것이라는 얘기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6월 고리 1호기 영구 정지 선포 행사에 참석해 월성 1호기도 조기 폐쇄토록 하겠다고 천명한 바 있다.

이번 결정이 몰고 올 파장이 어느 정도일지는 현재로서 가늠하기조차 쉽지 않다. 감사원 감사가 이번 원안위 결정의 단초가 된 한수원 이사회 의결 내용을 문제시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린다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밖에 없다.

그 반대의 상황을 가정하더라도 파장은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원안위 내부에서부터 불거져 나온 반발이 이미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여당은 이제라도 자신들이 주입한 정치 논리가 법적 독립성을 갖춘 기관들의 국익에 대한 냉정한 판단을 흐리게 하는 일은 없었는지 엄밀히 되돌아보기 바란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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