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이 전기요금 인상의 칼을 뽑아들었다. 한전은 특별히 적용해온 할인 요금제를 폐지할 뿐이라 강조하지만 전력 소비자에게는 실질적 요금 인상 조치일 수밖에 없다. 더 중요한 점은 이번 조치가 본격적인 전기요금 인상의 예고편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이는 모든 소비자들이 긴장한 채 이번 한전의 조치를 바라보는 이유다.

30일 한전이 이사회 의결을 거쳐 정부와 공동으로 발표한 특례 전기요금 할인 개편안에 따르면 그간 적용돼온 주택용 절전할인제가 31일자로 폐지된다. 올해 일몰 예정이라는 점을 들어 예년과는 달리 연장조치를 취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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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은 주택용 절전할인제와 함께 전통시장 전기요금 할인제와 전기차 전력충전 요금 할인제도 원칙적으로 없애기로 했다. 이들 세 가지는 그간 한전이 운용해온 11가지 특별할인제의 일부로서 올해 말까지 한시적으로 운용키로 했던 것들이다. 다만, 이들 할인제 가운데 전통시장 할인과 전기차 전력충전 요금 할인은 사실상 내년 6월까지 명맥을 유지하면서 보완책을 마련키로 했다.

한전이 그간 적용해온 할인제에는 이들 세 가지 외에 △주택용 필수보장공제 △주택용 하계 할인제 △에너지 저장장치(ESS) 충전전력 할인제 등이 있다. △신재생에너지 △초·중·고교 △도축장 △미곡종합처리장 △천일염 제조 등도 할인제 적용 대상에 포함돼 있었다.

전통시장 할인은 명목상 올해로 종료시키되 지원금을 통해 기존의 할인 효과가 유지되도록 하는 방법으로 정리된다. 전기차 전력충전 요금 할인제는 내년 6월까지 현행 할인율을 유지한 뒤 2년에 걸쳐 할인율을 점진적으로 축소하는 방향으로 마무리된다. 2022년 7월부터는 할인제가 완전히 폐지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한전은 주택용 절전할인제는 2017년 2월부터, 전기차 충전전력 할인제는 2016년 3월부터, 전통시장 할인제는 2011년 8월부터 시행하기 시작했고, 이후 지금까지 연장조치를 거듭해왔다. 그러다가 이번에 이사회 의결로 이들 할인제를 폐지키로 결정했다.

폐지 수순에 들어간 세 가지 중에서도 다수의 전력 소비자들에게 민감하게 다가서는 것이 주택용 절전한일제다. 이는 직전 2개 연도의 동월 전력사용량 평균치보다 20% 이상 전기를 아껴 쓴 주택용 소비자에게 전기료를 할인해주는 제도다. 월별 고지 요금에서 동·하계엔 15%, 기타 계절엔 10%가 할인된다. 이 제도로 인해 혜택을 본 가구는 2017년 168만, 2018년 181만, 2019년 182만을 헤아린다. 각각의 할인금액은 334억원, 288억원, 450억원 등으로 집계됐다.

액수로 보자면 미미한 수준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자신이 혜택을 받고 있다고 느끼는 전력 소비자도 많지 않은 게 사실이다. 이를 반영하듯 한전 관계자도 “주택용 절전할인제 혜택 대상자의 99%는 자신이 할인받는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고, 할인제 도입 이후 전력 소비량에서도 별다른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목적의 합리성도 없고 효과도 불분명하니 할인제를 일몰 시점에 맞춰 폐지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효과가 여기서 끝난다면 한전이 주장하고자 하는 바대로 이번 결정은 별것 아닐 수 있다. 한전은 이번 조치에 대해 비정상의 정상화 취지라는 점을 은연중 강조하고 있다. 정창진 한전 요금기획처장은 이번 조치의 당위성을 설명하면서 “정상화”라는 표현을 썼다.

[그래픽 = 연합뉴스TV 제공/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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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한전의 조치가 여기서 그칠 리 없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전후 맥락으로 보자면, 이번 한전의 조치는 전기요금 본격 인상의 물꼬를 튼 것으로 보아야 한다. 최근 급격히 늘어난 적자에 시달리는 한전으로서는 당장 특례할인에 따른 적자 요인부터 해소하려 들 것이 확실시된다. 지난 한해만 놓고 보더라도 한전이 특례할인으로 인해 거둬들이지 못한 돈이 1조1434억에 이르렀다. 여기엔 여름철 냉방 복지를 위해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단행한 주택용 하계 할인분 3587억원도 포함된다.

각종 할인혜택에 더해 갈수록 전력 생산단가마저 올라가고 있으니 전기요금 인상은 예정된 수순이라 할 수 있다. 생산단가 인상의 결정적 원인은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다. 전기요금 인상 없는 탈원전 정책 추진은 예의 ‘증세 없는 복지 증대’ 만큼이나 허황된 일이다.

한전은 경영 악화가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진작부터 특례할인을 일정에 맞춰 종료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우선 일몰제 대상부터 예정된 시점에 맞춰 폐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김종갑 한전 사장은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이 점을 공개적으로 강조했다. 한시적 특례 폐지와 함께 더 이상의 새로운 특례 허용도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그런 입장을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한전이 올해 말 일몰되는 세 가지 할인제도 중 한 가지만 31일자로 폐지키로 한 것은 정부의 압박 때문이었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최근 국회에서의 발언을 통해 전기료 할인 혜택의 일괄 폐지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한전에 대한 정부의 압박은 현행 전기요금 결정 시스템으로 인해 언제든 가능하게 되어 있다. 한전이 전기요금 체계를 바꾸려면 이사회 결의 사항을 산업부에 제출하고, 그 내용에 대한 승인을 받아야 한다. 결국 결정권을 정부가 쥐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도 한전의 경영 악화 현실을 언제까지나 외면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그로 인해 어느 시점에 가서는 한전의 요구를 일정 정도 수용할 것이란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그 어느 시점은 내년 4월 총선 이후가 될 것이 확실시된다. 지금 전기요금을 올리는 것은 내년 총선에서 여당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어서이다.

예상되는 시나리오는 내년 총선 직후 한전 이사회가 전기요금 체계 개편을 본격 시도하는 일이다. 이 때 일단계로 손질 대상에 오를 가능성이 큰 것은 주택용 필수사용량 보장공제 제도와 산업용 전기요금 체계이다.

주택용 필수사용량 보장공제는 일정 수준 이하의 전기를 사용하는 가구에 대해 전기요금을 깎아주는 제도다. 이것만 폐지해도 한전은 연간 수천억원을 아낄 수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한전은 이 제도 시행으로 인해 3963억원을 지원해야 했다. 가정용이나 일반용 등에 비해 싸게 공급되는 산업용 전기요금을 올리는 것도 논의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전기요금 인상은 사회적으로 큰 파장과 논란을 일으킬 것이 분명하다. 가정용 요금 인상은 가계 부담을 증대시킨다는 점이, 산업용 전기료 인상은 그러지 않아도 어려운 산업계의 경쟁력을 약화시킨다는 점이 그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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