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K기업은행이 신임 행장 임명 시비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기업은행 노동조합이 행장의 적격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 그 배경이다. 노조는 청와대가 대통령 참모 출신인 윤종원 행장을 임명하자 그를 ‘낙하산’으로 지칭하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윤 행장은 지난 3일 첫 출근길에 올랐으나 노조의 출근저지 투쟁에 막혀 발길을 돌려야 했다.

윤 행장은 이날 노조원들이 을지로 본점 1층 정문에 집결한 상황에서 후문 진입을 시도했으나 여기에서도 미리 대기하고 있던 조합원들이 막아서자 뜻을 이루지 못했다. 10여분만에 되돌아선 윤 행장은 결국 인근에 마련된 임시 사무실에서 업무 보고를 받았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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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은행 노조는 1층 로비에 투쟁본부를 차려놓고 있고, 앞으로도 출근저지 투쟁을 지속해나가겠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기업은행 노조는 왜 윤 행장 취임을 이토록 극렬히 반대하는 것일까? 일각에서는 윤 행장이 적법한 절차에 의해 임명됐다는 점을 강조하며 노조의 행태를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정부가 이제는 낙하산 투하식 인사를 지양해야 한다며 노조를 지지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양측의 주장 모두 나름의 논리를 기반으로 삼고 있다. 형식논리로만 보면 전자의 주장이 전적으로 옳다. 중소기업은행법에 따르면 기업은행장은 금융위원장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돼 있다. 면직도 대통령의 권한이다. 따라서 이 절차를 거쳐 이뤄진 윤 행장 임명엔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기업은행뿐 아니라 다른 금융공기업들에 대한 수장 임면권도 대통령에게 있다. 다만, 제청 방식에서는 다소 차이를 둔 경우가 있다. 이를테면 산업은행 회장은 금융위원장, 한국수출입은행장은 기획재정부 장관의 제청을 거쳐 대통령이 임면한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는 임원추천위원회 추천과 주주총회 의결 절차를 거치는 등 제청 방식에서 차이를 보인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임면 권한은 대통령에게 주어져 있다.

기업은행 노조도 이 점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노조가 일차로 문제시하는 것은 ‘낙하산’ 투입이다. 윤 행장은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장 출신의 정통 관료 이력을 가졌다. 청와대에서 경제금융비서관과 경제수석을 지내기도 했다. 국제 기구 근무 경험도 지니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상임이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특명전권대사 등이 그것이다.

이상에서 보듯 윤 행장은 경제관료로서의 이력은 화려하지만 은행 업무를 다뤄본 경험을 갖고 있지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와대가 자신들의 입맛대로 인선을 한 뒤 행장 임명을 강행했다는 것이 노조의 기본인식인 듯 보인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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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에서는 기업은행이 금융공기업이긴 하지만 업무 성격상 일반 시중은행과 상당 부분 비슷한 면이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런 만큼 금융업계 현실을 잘 아는 인물이 행장으로 취임해야 한다는 것이 노조의 입장이다. 앞서 청와대가 반장식 전 일자리수석을 기업은행장으로 임명하려 했을 때도 노조는 금융 분야에 대한 전문성이 없다는 것을 이유로 들며 반발한 바 있다. 노조가 은행 업무를 모르는 낙하산은 안 된다는 뜻을 거듭 밝히고 있는 것이다.

노조의 반발은 시대 변화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낙하산 임명이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지만, 시대 흐름에 맞지 않는 방식이라는 점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는 의미다. 즉, 시중은행들이 임원추천위원회 등 독립적인 기구를 통해 행장을 선임하는 등 발전된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반해 금융공기업들은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점이 논란의 단초다.

더구나 기업은행은 지난 10년 동안 내부 인사를 행장으로 앉힌 뒤 나름의 실적을 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달 임기를 마치고 물러난 김도진 행장도 내부 출신 행장이었다. 이처럼 시대가 변했고, 행장 선임 관행도 새롭게 형성되어가고 있는 마당에 청와대가 과거로 회귀하듯 대통령 참모 출신을 내려보내니 곧바로 사달이 난 것이다.

문재인 정부 스스로 노조에 낙하산 반대 명분을 제공한 측면도 있다.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야당 시절이던 2013년 청와대가 기재부 차관 출신을 기업은행장으로 내려보내려 하자 “관치는 독극물이며 발암물질과 같다”며 반발했다. 그 일로 청와대는 결국 뜻을 거둬들였다. 이를 빗대 은행 노조는 이번 인사를 두고 정부가 독배를 마시라고 강요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이번 기업은행 사태는 행장 인선 관행이 유지될지 여부로 각별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현재로서는 청와대가 임명을 강행한 터라 10여년 간 이어져온 새로운 내부 승진 관행이 깨질 가능성이 커 보인다. 하지만 새로운 관행을 유지하려는 조직 내부의 의지와 이를 지지하는 외부 여론이 만만치 않은 만큼 향후 추이를 가늠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또 하나 눈여겨볼 점은 기업은행 사태가 금융 공기업 전반의 수장 임명 방식에 대한 논쟁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이다. 비록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하더라도 정치적 이해에 따라 조직의 장이 결정되는 방식은 구태의연하다는 비판을 살 여지가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치들이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우선은 관련 법률들을 개정해 임명 방식에 근본적 변화를 꾀는 것이 최선이다.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임명 대상자의 자격 요건을 보다 면밀히 규정하고, 제청 절차에도 객관성을 더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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