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 간 갈등이 빠르게 관리 국면에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

양측 간 긴장은 이란이 이라크 내 미군기지 두 곳에 대해 도합 20여발의 미사일 공격을 감행함으로써 절정을 이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란이 공격을 감행하면서도 수위 조절에 신경을 쓴 정황이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미국도 이란의 행동에 담긴 은근한 메시지에 화답하듯 무력 대응을 삼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두 나라 간 갈등이 숨고르기 단계에 들어갈 가능성을 높여준 것이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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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은 8일 새벽 1시 30분쯤(현지시간) 이라크 내 알 아사드와 에르빌에 있는 미군기지를 향해 지대지 미사일 공격을 퍼부었다. 닷새 전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의 사령관 거셈 솔레이마니가 바그다드에서 미국에 의해 폭살당한 때와 똑같은 시각이었다.

공격은 특히 이슬람국가(IS) 격퇴 활동의 핵심 거점으로서 미군 1500여명이 밀집해 있는 바그다드 북서쪽의 알 아사드 기지에 집중됐다. 이곳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8년 말 깜짝 방문함으로써 널리 알려졌다. 이곳에만 20발 가까운 미사일 공격이 단행된 것으로 전해졌다.

또 다른 피격 장소인 북부의 에르빌은 이라크 내에서는 비교적 안전한 지역으로 평가받던 곳이다. 과거 자이툰 부대가 머물렀던 곳이어서 우리에게 친숙한 곳이기도 하다.

이란은 공격 감행 후 미군 사상자가 80여명에 이르며 주요 시설들이 대거 파괴됐다고 선전했다. 이로 인해 전세계의 이목은 미국으로 집중됐다. 다소 과장이 섞였을 것이란 점을 감안하더라도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다면 미국이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란 우려 탓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한동안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아 궁금증을 키웠다. 그러다 사건 발생 4시간 남짓이 지난 뒤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를 통해 “괜찮다”는 글을 올렸다. 인명 피해가 없었음을 짐작하게 하는 반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자 전세계의 시선은 여전히 긴장을 풀지 못한 채 워싱턴으로 향했다.

미국의 공식 반응은 워싱턴 시간으로 8일 오전 11시에 나왔다. 이란의 미사일 공격 감행 시간이 미국 동부시간으로 7일 오후 5시 30분이었으니, 근 18시간 만의 일이었다. 발표 내용의 요지는 인명 피해는 전혀 없었고 시설물 일부가 파손됐을 뿐이라는 것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국민 연설을 통해 “사상자는 없었다”며 “단지 우리 기지에 최소한의 피해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그는 미군은 물론 이라크인 사상자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조기경보 시스템 등이 잘 작동한 덕분이라는 등 특유의 자화자찬성 발언도 잊지 않았다.

이전부터 중동 국가들의 전투 관련 성명에 과장이 많았던 것과 달리 여론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미국의 공식 발표인 만큼 세계 각국은 이를 신뢰하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미국은 모든 사람들과 평화를 끌어안을 준비가 돼 있다”며 더 이상의 군사력 사용을 자제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이란에 대해 핵 개발을 불용하면서 경제 제재를 강화할 뜻을 밝혔다. 물리력 대신 경제적 제재를 통해 이란을 압박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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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의 연설 이후 긴장감은 급격히 해소됐다. 이를 반영한 것이 뉴욕증시의 움직임이었다. 이날 뉴욕증시의 주요지수들은 전날보다 상승한 상태에서 거래를 마감했다. 전 거래일에 비해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는 0.56%, S&P500지수는 0.49%, 나스닥지수는 0.67%의 상승률을 보였다. 나스닥 지수의 경우 9129.24로 거래를 마감함으로써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뒤늦게 드러난 사실이지만, 이라크의 미군기지 공격은 상당히 조심스럽게 이뤄졌다. 이를 뒷받침하는 정황은 하나 둘이 아니다.

우선 이라크는 알 아사드 기지 등에 미사일 공격을 하면서 시간차를 길게 둔 것으로 전해졌다. 한꺼번에 동시다발적으로 공격을 가한 것이 아니라 약 한 시간에 걸쳐 차례로 한발씩 공격을 가했다는 것이다. 쏘아올린 미사일 수는 도합 22개였다지만 피습 당사자에게 최대한 대피할 시간 여유를 주었다고 볼 수 있다.

응징의 의미를 살리느라 솔레이마니 폭살 시간에 맞추려 했다지만 새벽 시간대를 택한 것도 수위 조절 의도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미사일 낙하 지점이 미군 밀집지역도 아니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 등은 미국이 이란의 공격 의도를 수 시간 전부터 파악한 가운데 미리 대비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이란이 이라크에 공격 개시 시점을 1시간 전에 귀띔해주었다는 보도도 나왔다.

미군기지 공격 직후 공개된 이란 외무장관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의 트위터 글도 이란의 속내를 짐작하게 했다. 그는 트위터를 통해 이란의 공격이 유엔헌장에 따른 자위적 조치였음을 강조하면서 “솔레이마니 폭살에 대한 이란의 대응은 끝났다”라고 적었다. 이어 “우리는 전쟁을 원치 않는다”고 덧붙였다. 서방 언론들은 특히 “대응은 끝났다(concluded)”라는 표현에 주목하며 솔레이마니 폭살 사건이 관리 국면에 들어갈 가능성을 거론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은 미사일 공격을 전후한 이란의 이런 움직임들을 면밀히 지켜보며 그 속내를 간파한 뒤 숙고 끝에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란 정부가 체면을 세우는 선에서 수위 조절을 해가며 공격을 마치자 미국이 알겠다는 듯 “무력사용 불원”이라 화답한 것이 지금의 형국이라는 의미다.

다만, 미국은 핵 개발 감시를 빌미로 석유수출 봉쇄 등 경제 제재를 지속 또는 강화할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여기에 이란 역시 명분상의 ‘결사 항전’을 외치고 있는 터라 국지적 도발 등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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