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한 폐렴(코로나19) 확진자 증가 속도가 갑자기 빨라지기 시작했다. 질병관리본부 발표에 따르면 21일 오전 9시 현재 감염자 수는 156명으로 늘어났다. 눈에 띄는 것은 증가 인원이다. 전날 같은 시점에 비해 늘어난 확진자 수는 74명이나 된다. 지난 18일 오전 9시까지만 해도 31명에 그쳤던 확진자 수가 무서운 속도로 증가한 것이다.

숫자도 문제지만 더욱 우려되는 점은 이제 지역사회 감염을 의심할 여지가 거의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중앙사고수습본부 관계자는 대구의 일부 사례를 지역사회 감염으로 볼 수 있다는 취지를 밝히기도 했다. 공식선언만 없었을 뿐 지역사회 감염이 현실로 다가왔다고 볼 수 있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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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대구·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제주·전주 등 타 지역으로 빠르게 확산되는 확진자 중 일부는 감염 경로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다.

지역사회 감염은 방역망 밖에서 독립적으로 확진자가 발생하는 경우를 지칭한다. 어디서, 누구로부터 감염됐는지 등의 역학관계가 확인되지 않는 환자가 의혹의 대상일 수 있다. 이들 중 한명이라도 중국과의 연결고리가 전혀 없는 가운데 별개로 바이러스에 감염됐다는 사실이 분명히 확인되면 그게 곧 지역사회 감염 사례가 된다.

이때부터는 국내에서의 우한 폐렴 사태가 완전히 새로운 국면에 진입하게 된다. 그에 맞춰 당국도 방역체계 전반을 다시 구축해야 한다. 이 순간부터는 재앙적 상황이 전개될 가능성이 열린다고 볼 수 있다.

당장 대구의 경우 확진자 대부분이 31번 환자와 함께 신천지교회 예배에 참석한 것으로 파악됐다지만 정작 누가 감염원이고 누가 피감염자인지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다. 31번 환자의 감염 경로도 아직 속시원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대구 외에 청도나 서울 성동구 등의 사례도 지역사회 감염에 대한 의심을 선뜻 거둬들이기 어렵게 하고 있다. 청도의 사례도 31번 환자와 연관됐을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지만 뚜렷한 감염 경로가 밝혀지기까지는 지역사회 감염 여부를 단언할 수 없다.

불행 중 다행으로 경로가 일일이 확인된다 해도 확진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것 자체는 큰 문제일 수밖에 없다. 방역 및 진료 인력, 시설에 한계를 느끼면서 어느 순간 통제 범위를 넘어설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21일 현재 신천지교회 예배 참석자 1000여명 중 추가로 의심 증상을 호소하는 이들만 100명을 바라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또한 각각 다수의 사람들과 접촉하면서 바이러스의 연결고리 역할을 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교회 측이 예배 참석자 모두를 자가격리시켰다 해도 워낙 수가 많다 보니 안심할 수 없는 노릇이다. 교회가 당국의 방역활동에 비협조적인 일부 신도들을 제대로 통제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사태가 급격히 악화되자 정부와 여당은 뒤늦게 발걸음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불과 하루 이틀 전만 해도 낙관론을 펼치며 자화자찬에 오히려 더 집중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온 그들이었다.

우한 폐렴 확진자가 다수 발생한 뒤 한산해진 대구 시내 거리. [사진 = 연합뉴스]
우한 폐렴 확진자가 다수 발생한 뒤 한산해진 대구 시내 거리. [사진 = 연합뉴스]

그러나 30명을 조금 웃돌던 확진자 수가 사흘 만에 5배 이상으로 급증하자 부랴부랴 새로운 대책 마련을 서두르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정부는 대구·청도 지역을 감염병 특별관리지역으로 지정하겠다고 했고, 여당 의원으로부터는 대통령 긴급 명령권 발동 가능성을 묻는 목소리가 나왔다. 정부 내에서 감염병 위기경보 단계를 ‘심각’으로 격상하는 문제를 검토한다는 소리도 들린다. 이에 맞춰 여당도 야당과 함께 국회에 코로나19특위를 개설하겠다며 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급격히 악화된 상황과 180도 돌변한 정부·여당의 허둥대는 모습을 마주하는 국민들은 그저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정부·여당이 감염병 사태 대응을 자화자찬하며 별일 아니라는 듯한 반응을 보였던 것이 불과 하루 이틀 전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 시작은 문재인 대통령의 지난 13일 발언이었다. 문 대통령은 그날까지 사흘째 새로운 확진자가 나타나지 않자 “안정 단계로 들어선 것 같다”고 자체 진단을 내리며 질병이 오래지 않아 종식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19일 당내 회의석상에서 “잘 대응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 이틀 전엔 “우리 방역 및 의료체계는 세계적 수준”이라고 자랑했던 그였다.

그 이전까지 정부와 여당은 중국인 입국에 대한 통제를 보다 강화해야 한다는 대한의사협회 등의 주장을 묵살해왔다. 심지어 여당 일각에서는 의사협회장이 정치적인 인물이라고 주장하며 전문가적 의견 개진을 정치적 공세로 몰아세우기도 했다.

결국 지금의 악화된 상황은 정부와 여당의 안일한 대응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밖에 없다. 상황의 엄중함을 무시한 채 정부 홍보에만 치중하는 사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허점을 비집고 들어오는 바람에 방역망에 크게 구멍이 난 형국이라 할 수 있다. 만약 정부가 의사협회 등의 전문가 집단이나 야당 등의 일리 있는 비판을 조금이라도 귀담아 들었다면 사태가 이 지경까지 악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야당 등에서는 정부야말로 정치적 이해 탓에 그간 방역망을 보다 촘촘히 구축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내놓고 있다.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조기 방한을 노려 중국의 비위를 맞추다 보니 중국인 전면 입국 통제 등의 엄중조치를 취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북한마저 중국과의 국경을 봉쇄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중국 후베이성 한 곳 만을 입국 금지 지역으로 지정해두고 있다.

우리 정부가 중국에 대해 유별나게 관대한 자세를 취하는 사이 중국인들은 사실상 평소와 별반 다를 바 없이 입국한 뒤 한국 전역을 휩쓸며 돌아다니고 있다. 각 국가들이 진작부터 중국과의 왕래를 다양한 방법으로 통제하고 있지만 우리 국민들은 공항철도 등에서 예사로 중국인들과 어깨를 비벼야 하는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그로 인한 불안함은 고스란히 시민 각자가 감당해야 할 몫이 되고 말았다.

지역사회 감염까지 심각히 우려해야 하는 상황을 맞은 이상 이제라도 정부 당국의 보다 과감한 조치가 나와야 할 것이다. 국민 안전을 위한 것인 만큼 그 조치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적극적이어야 한다. 더구나 문재인 정부는 ‘사람이 먼저다’라는 구호를 앞세워 탄생한 정부 아닌가.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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