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우한 폐렴(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할 목적으로 11조7000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기로 했다. 정부는 이 같은 내용의 추경안을 4일 열린 임시국무회의에서 통과시켰다.

추경 예산은 세출 기준으로 8조5000억원이다. 나머지 3조2000억원은 세입경정분이다. 세입경정분이란 당초 계획에 비해 모자란 세입을 메우기 위해 사용되는 부분을 가리킨다. 이로 인해 추경 전체 규모는 11조7000억원이지만 세출을 통해 실제로 우한 폐렴 사태 극복을 위해 사용되는 액수는 8조5000억원에 그치게 됐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러나 이는 2003년 사스나 2015년 메르스 사태 당시 편성했던 감염병 극복용 추경에 비해서는 규모가 큰 편에 속한다. 총액 기준으로 사스 추경은 4조2000억원, 메르스 추경은 11조6000억원이었다.

메르스 추경은 총액으로는 이번 추경과 비슷했지만 그중 세입경정으로 인한 부족분을 메우는 용도로 쓰인 것이 5조4000억원이나 됐다. 그 결과 세출 추경 액수는 6조2000억원에 불과했다. 이번 우한 폐렴 추경 규모가 실질적 지출 규모 면에서 볼 때 메르스 추경보다 2조3000억원이나 더 많음을 알 수 있다.

우한 폐렴 추경은 이전의 기타 추경안과 비교해 봐도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다. 규모가 비교적 큰 편이어서 ‘슈퍼 추경’이란 표현도 등장했다. 실제로 이번 추경은 2000년대 들어 편성된 16번의 추경 중 세 번째로 규모가 크다.

올해 추경보다 큰 것은 2009년과 2013년의 28조4000억원 및 17조4000억원이었다. 가장 규모가 컸던 2009년 추경은 금융위기 여파로 심화된 경기 침체를 만회하기 위해 결정됐었다.

올해 추경은 6년 연속이면서 문재인 정부 들어 4년 연속 편성된다는 특징도 지니고 있다. 현 정부는 문 대통령 취임 첫해인 2017년에 일자리 창출을 명분으로 내세우며 11조원의 추경을 편성한 바 있다.

세출 추경분을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감염병 피해를 본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 지원에 2조4000억원이, 침체된 지역경제 회복에 8000억원이 할당돼 있다. 이밖에도 민생과 고용 안정 지원에 3조원이 투입된다.

정부는 추경안이 국회를 통과하는 시점을 기준으로 2개월 이내에 추경 예산의 75%를 집행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추경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이다. 추경은 액수도 중요하지만 적시 투입이 필요한 만큼 집행 속도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정부는 이 점을 강조하며 야당을 향해 추경의 빠른 국회 통과에 협조해달라고 주문하고 있다.

야당도 감염병 사태의 조기 수습에 반대할 명분이 없기에 최대한 협조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정부가 우한 폐렴 사태 극복을 빌미로 삼아 선심성 사업을 추경안에 끼워넣지 않았는지 면밀히 따지고 들 것으로 예상된다.

추경안 중에서 특히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이 세입경정분이다. 1분기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세수 부족을 예상하고 거액의 세입경정분을 추경에 포함시키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려는 분위기는 진작부터 나타났다.

야당들은 추경을 논하기 이전에 우선 예비비를 집행함으로써 우한 폐렴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정부 또한 이달 초까지만 해도 예비비 사용을 주요 방안으로 거론했었다. 국무회의 의결만 거치면 당장 집행할 수 있는 정부 보유 예비비는 3조4000억원에 이른다. 이 같은 기반 덕분에 홍남기 경제부총리도 지난달 3일 ‘현재로서는’이란 단서를 붙이긴 했지만 기자간담회를 통해 추경을 검토한 바 없다고 말했었다.

그러나 정부 입장은 빠르게 추경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결국 홍 부총리는 지난달 28일 추경 검토로 정부 입장이 바뀌었음을 밝히면서 “세출 기준으로 6조2000억원보다 적지 않은 수준에서 추경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더니 그 말 이후 5일 만에 이 액수는 8조5000억원으로 증가했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국회 의결 과정에서 제기될 시빗거리로 또 하나 예상되는 것은 재정건전성 훼손 문제다. 우한 폐렴 추경 편성으로 인해 정부는 10조3000억원의 적자국채를 추가로 발행해야 한다. 그러지 않아도 올해 60조원의 적자국채 발행이 예정돼 있던 터여서 이는 재정건전성 논란으로 이어질 여지를 안고 있다.

정부는 이번 추경을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강조하지만 결과적으로 정부의 재정건전성은 적지 않게 훼손될 수밖에 없다. 올해 추경안이 그대로 국회를 통과한다고 가정할 경우 우리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은 종전의 3.5%에서 4.1%로 늘어나게 된다.

관리재정수지는 통합재정수지에서 사회보장성기금수지 등을 제외한 것으로서 정부의 살림살이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는 지표다. 지금까지의 기록상 외환위기 충격과 그 여파가 남아있던 1998~1999년, 그리고 금융위기 영향에 시달렸던 2009년을 제외하면 이 비율이 3%를 넘긴 적은 없었다.

이번 추경으로 국가채무 규모도 기존 805조2000억원에서 815조5000억원으로 늘어난다.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도 심리적 마지노선인 40%선을 훌쩍 넘어 41.2%로 올라서게 된다.

정부도 추경안을 짜면서 재정건전성이 악화될 가능성을 의식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발등의 불인 우한 폐렴 사태를 조기에 진정시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정부의 이 같은 입장과 별개로 야당은 국회 논의 과정에서 재정건전성 문제를 집중 거론하면서 진정한 의미의 우한 폐렴 추경인지 여부를 따질 것으로 전망된다. 총선을 목전에 두고 있다는 점 또한 야당의 결기를 더욱 자극할 가능성이 있다.

저작권자 © 나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