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보건기구(WHO)가 마침내 우한 폐렴(코로나19)의 세계적 전파 상황을 팬데믹으로 규정지었다. 이미 그 단계에 진입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많았지만 그동안 결정을 미뤄왔던 WHO가 비로소 우한 폐렴 사태에 대한 경보단계를 최고 등급으로 올린 것이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11일(이하 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의 본부에서 가진 언론 브리핑을 통해 “코로나19가 팬데믹으로 특징지어질 수 있다는 평가를 내렸다”고 밝혔다. 114개국에서 11만8000여건이 확진된 가운데 4291명이 사망하는 상황에서 나온 팬데믹 선언이었다.

[그래픽 = 연합뉴스TV/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TV/연합뉴스]

팬데믹은 WHO가 설정한 6개의 감염병 경보단계 중 최고 등급에 해당한다. 한 지역에서 다수가 감염돼 사망자가 연이어 발생하면 5단계가 선언되고, 해당 감염병이 복수의 대륙을 오염시키면서 전세계적으로 확산되는 흐름을 보이면 팬데믹으로 규정된다.

‘팬데믹’은 그리스어에서 유래된 말로 전세계의 ‘모든’(팬) ‘사람들’(데믹)이 감염될 위험성이 있다고 여겨질 때 선언된다. 바꿔 말하면 비록 지금의 우한 폐렴보다 더 많은 감염자와 사망자를 발생시키더라도 한 지역에서만 유행하는 경우라면 팬데믹 선언 대상이 될 수 없다.

이를 감안하면, WHO의 팬데믹 선언은 전세계 모든 사람에게 예외없이 감염병이 번질 우려가 있으니 모든 국가가 경계심을 갖고 철저히 대응하라는 메시지의 발신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미국의 뉴욕 타임스는 WHO의 이번 팬데믹 선언이 갖는 의미에 대해 “법적 의미를 갖는 것도, 새로운 조처를 요하는 것도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전세계 회원국들에 대해 특별한 구속력을 지니는 것은 아니며 단지 경각심을 일깨우는 WHO의 행정적 조치임을 강조한 지적이었다.

방역 전문가들도 팬데믹 선언이 기술적 의미를 갖는 용어에 불과하다고 설명한다. WHO가 세계 회원국을 향해 의료 역량을 총동원해 감염병 사태에 대비하라고 권장하는 것으로서 강제성을 띠는 것도 아니라는 의미다.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 역시 팬데믹을 선언하면서 상황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코로나19 위협에 대한 WHO의 평가를 바꾸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각 나라가 해야 할 일도 바뀌는 것은 아니라고 부연했다.

이 같은 발언은 팬데믹 선언이 지나친 공포감을 조성함으로써 사람들을 위축시키고, 세계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 등을 우려한데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이런 해석을 뒷받침하는 메시지는 그의 발언 곳곳에서 나타났다. 그는 “모든 국가는 보건과 경제·사회적 혼란을 최소화하고 인권을 존중하는 가운데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그는 전세계에 미칠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모든 분야의 파트너들과 협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거브러여수스 총장을 향한 비난도 적지 않게 제기되고 있다. WHO의 거대 자금원인 중국의 눈치를 살피느라 우한발 감염병인 코로나19의 충격 정도를 실제보다 축소하려는 경향을 보여왔다는 게 그 이유다. 이번의 팬데믹 선언이 너무 늦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것도 그와 무관치 않다. 비난이 이어지는 가운데 서방의 일부 유력 매체에서는 WHO에 앞서 우한 폐렴 사태를 팬데믹으로 자체 판단한다고 선제적으로 공언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쏟아지는 비난을 의식한 듯 거브러여수스 총장은 팬데믹을 선언한 날 “이 용어를 잘못 사용하면 비이성적 공포는 물론 (질병에 대한) 대응이 끝났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로 인해 불필요한 죽음이 초래될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강세장을 상징하는 미국 뉴욕 월가의 황소상. [사진 = 연합뉴스]
강세장을 상징하는 미국 뉴욕 월가의 황소상. [사진 = AFP/연합뉴스]

그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비난의 목소리는 여전하다. 늦은 팬데믹 선언이 오히려 사태를 더 키웠다는 주장이 만만찮게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우한 폐렴은 직전 팬데믹 선언의 대상이었던 신종 플루와 비교되곤 한다. 신종 플루에 대해 WHO가 팬데믹을 선언한 2009년 6월 11일 당시의 확진자 수는 74개국 3만여명이었다. 이에 비하면 114개국 11만8000명의 확진자를 기록한 시점에 가서야 이뤄진 이번 팬데믹 선언은 너무 늦었다고 볼 여지를 안고 있다. 신종 플루는 팬데믹 선언 이후에도 기세를 이어간 결과 214개국으로 전파됐고 총 1만8500명의 사망자를 발생시켰다.

팬데믹 선언이 늦춰진데 대한 책임의 일부가 중국에 있다는 비판도 끊이지 않는다. 팬데믹 선언이 이뤄진 날 로버트 오브라이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중국의 초기 은폐가 전세계에 두 달 동안의 대가를 치르게 했다고 말했다. 중국의 사실 은폐로 우한 폐렴에 대한 세계적 대응이 두 달가량 늦춰짐으로써 그만큼 피해가 더 커졌다는 점을 강조한 셈이다. 실제로 발병 초기 중국 정부는 의료진들을 압박해 감염병 실태를 숨긴 것으로 드러났다.

팬데믹 선언이 있은 직후 뉴욕증시를 비롯한 전세계 증시엔 일대 혼란이 일어났다. 11일 뉴욕증시에서는 3대 지수인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지수, 나스닥지수가 각각 5.86%, 4.89%, 4.70% 하락했다. 폭락 장세는 미국을 넘어 전세계 증시로 전이됐다. 미국 언론에서는 이날을 기해 지난 11년간 우상향 추세를 보여온 뉴욕증시의 강세장이 종료됐다는 비관적 진단까지 등장했다.

최근의 불안한 장세에 이은 이날의 폭락장세 연출로 다우지수의 경우 불과 지난달 12일 이후 한 달 사이에 20.3%나 하락했다. 이는 뉴욕증시의 강세장이 종료됐다는 분석의 결정적 근거가 되고 있다.

밤 사이 뉴욕증시의 혼란상을 지켜본 우리 증시 역시 큰 혼란을 겪었다. 12일 코스피 지수는 3.9%나 하락했고, 이날 하루 동안 국내 증시에서는 61조원의 시가총액이 증발해버렸다.

증시의 혼란은 그간 버텨온 WHO마저 팬데믹을 선언해야 할 만큼 감염병 사태가 심각하다고 느낀 투자자들이 시장을 떠남으로써 빚어졌다는 분석을 낳고 있다. 결국 시기를 놓친 WHO의 팬데믹 선언으로 인해 더욱 강해진 불안 심리가 불안전자산에 대한 투자를 기피하게 만들고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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