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2차 비상경제회의에서 나온 결과물의 핵심은 채권시장 안정펀드와 증권시장 안정펀드의 조성이다. 이번 펀드 구상은 한·미 통화스와프와 함께 시장 분위기를 바꾸는데 유의미한 작용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24일 정부가 이들 펀드 조성 방침을 밝히자 국내 증시는 이틀 연속 상승세를 보이며 반색하는 모습을 보였다.

자본시장 관계자들은 특히 채권시장 안정펀드가 예상보다 큰 20조원으로 기획된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여기에 증시 안정펀드 10조7000억원이 조성될 것이란 소식이 더해지면서 증시 분위기는 곧 긍정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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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펀드는 공히 우한 폐렴(코로나19) 사태로 불거진 금융시장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기획됐지만 성격과 운영 방식, 세부 목적에서는 차이를 보인다. 우선적으로 채권시장 안정펀드는 차입 시장에 개입해 기업들의 긴급 자금조달을 도울 목적으로 기획됐다. 기업들이 일시적 자금난에 빠져 졸지에 도산하는 것을 막는 것이 직접적인 목적이다.

이 같은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펀드로 조성된 자금은 회사채와 금융채, 나아가 우량 기업어음(CP) 등을 매입하는데 투입된다. 채권시장 안정펀드가 CP까지 매입하기로 한 것은 단기 자금시장의 안정을 동시에 도모하기 위함이다. 미국의 경우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가 직접적으로 회사채 및 CP 시장에 개입해 기업들의 장단기 자금난을 해소해주기로 했다.

채권시장 안정펀드는 우선 10조원 규모로 조성돼 운용된다. 이후 10조원을 추가로 조성한다는 것이 정부의 방침이다. 먼저 조성되는 펀드는 금융위기가 몰려왔던 2008년 말 당시 조성됐던 채권시장 안정펀드를 사실상 재가동하는 방식으로 조성·운영된다.

12년 전 당시의 펀드는 산업은행(2조원)과 나머지 은행들(6조원), 그리고 보험사들(1조5000억원) 및 증권사(5000억원) 등이 출자해 만들어졌다. 이번에 다시 조성될 첫 번째의 10조원짜리 펀드도 당시의 사례를 참고해 각자의 출자액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일단 산업은행이 일정액을 부담하고 나머지는 참여 금융사들이 자산 규모에 따라 적절한 선에서 자금을 부담할 것으로 전망된다. 참여 금융사에는 은행 외에도 생명보험, 손해보험, 금융투자사 등 80여개가 망라된다.

[그래픽 = 금융위원회 제공]

채권시장 안정펀드의 조성은 자금이 필요할 때마다 일정액을 내는 방식(캐피털 콜)으로 이뤄진다. 예를 들어 정부 방침 상 1차 캐피털 콜을 3조원 규모로 한다고 하면 각 참여 금융사들은 정해진 비율에 맞춰 그만큼의 액수를 먼저 조성하게 된다.

이후 출자사들은 각자 개별 펀드를 만든 뒤 운용사를 선정해 운용에 들어간다. 그러나 현재 일부 금융사들은 통합펀드 방식을 요구하고 있고, 당국도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각 펀드의 운용지침은 출자사들이 모여 만들 의사결정 기구인 투자리스크관리위원회의 논의를 통해 결정된다.

10조7000억원 규모의 증시 안정펀드는 국책은행이 2조원, 5대 금융지주가 각각 1조원가량씩 부담하고 나머지는 기타 금융회사 및 증권유관기관인 한국거래소와 한국예탁결제원 등이 부담하는 방식으로 조성된다. 증시안정 기금은 금융위기 당시에도 소규모로 조성된 적이 있다. 당시엔 증권협회와 증권선물거래소 등 증시 관련단체들만 참여한 가운데 5150억원이 조성됐었다.

새로 조성될 증시 안정펀드는 코스피200 등 증시를 대표하는 지수상품에 대한 투자 자금으로 활용된다. 감염병 사태로 인해 널뛰기 장세를 이어가고 있는 증시의 변동성을 최소화하는 것이 기금 운용의 목적이다.

당국은 이달 중순까지만 해도 증시 안정펀드 조성을 검토한 바 없다는 입장을 유지했었다. 그러나 증시가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 약속 등에도 불구하고 극도로 불안정한 모습을 이어가자 결국 대규모 펀드 조성에 나서기로 했다.

이상 두 개의 펀드를 운용하는 데는 참여 금융기관들의 부담이 커진다는 문제가 따를 수밖에 없다. 특히 중추적인 역할을 하게 될 5개 금융그룹이 짊어질 부담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문제가 되는 것이 채권 등 위험자산을 떠안음으로써 촉발될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의 하락이다. 금융지주사들도 이 문제를 우려하고 있다.

[그래픽 = 금융위원회 제공]

특히 주식은 채권보다 상대적으로 위험성이 더 높은 자산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회사채 역시 지금 시점에서는 안전자산이라 할 수 없다. 금융위기 때와 달리 실물경제가 먼저 타격을 받고 있는 상황이라 기업 자체가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위기 당시 조성된 채권시장 안정펀드는 일부 수익을 내기까지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기대를 품을 만한 상황이 아니다.

당국은 금융사들의 현실적 우려를 감안해 관련 펀드 투자 금액에 대한 위험가중치 비중을 낮춰주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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