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 SK이노베이션 대표이사 총괄사장이 이사 연임에 성공했다.

26일 열린 SK이노베이션 주주총회는 김 사장을 임기 3년의 사내이사로 재선임하는 한편 유정준 기타비상무이사 선임 안건과 김종훈 사외이사 재선임 안건도 원안대로 통과시켰다. 김 사외이사는 이날 주총에서 감사위원으로도 선임됐다.

주총은 또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강조해온 ‘구성원과 이해관계자의 행복 추구’ 이념을 경영철학에 반영하기 위해 마련된 ‘SK 매니지먼트 시스템’ 등의 내용을 담은 개정 정관을 승인했다. 새 정관에는 이 시스템의 설치 및 운영을 위한 사업목적 신설 등의 내용도 추가됐다.

SK이노베이션 인사위원회는 김준 사장의 이사 재선임과 관련, 경영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배터리와 소재산업 등의 신사업을 안정적으로 이끌며 회사를 도약시킬 수 있는 적임자라는 평가를 내놓았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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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사장은 이날 주총에서 우한 폐렴(코로나19) 팬데믹 물결에 휩쓸려 있는 현 상황을 “전대미문의 위기상황”이라고 표현하며 난국 타개 의지를 드러냈다.

하지만 김 사장 앞에 놓인 길은 탄탄대로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가 강조했듯이 감염병 사태로 인한 전대미문의 위기가 세계경제를 덮친 데다 당장 회사 나름의 골치 아픈 난제를 풀어가는 데 주력해야 할 상황을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난제는 다름 아닌 LG화학과의 소송전이다. 소송전은 SK이노베이션에 불리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게다가 소송전이 최태원 회장이 강조하는 기업의 사회적 가치 및 상생의 가치와 무관치 않은 다툼이라는 점은 김준 사장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설 수밖에 없다. 회사와 김 사장 모두에게 그 점이 특히 뼈아프게 느껴질 것으로 분석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 소송전에서 패한다면 SK이노베이션은 그룹 총수가 추구하는 가치를 정면으로 거스른 파렴치한 기업이란 낙인을 얻게 된다. 다른 기업이 수십년 동안 공들여 이룩한 노하우를 거저 얻을 목적으로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는 것이 낙인의 이유가 될 것이다.

소송전의 시작은 지난해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LG화학은 미국의 국제무역위원회(ITC)에 SK이노베이션이 자사의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소송을 제기했다. SK이노베이션도 지려 하지 않았다. 5개월 뒤인 지난해 9월 ITC에 LG화학을 상대로 하는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하며 맞섰다. 이에 LG화학은 곧바로 같은 혐의로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맞소송을 걸었다.

미 ITC는 통상 및 지적재산권 침해 이슈 등에 대한 감시와 조사, 그에 따른 행정조치 등을 취할 권한을 지닌 준사법기관이다. 특정 기업이 지식재산권이나 영업비밀 등을 부당하게 침해한 것으로 결론을 내린 뒤엔 해당 상품에 대한 수입금지 조치 등을 미국 통관 당국에 지시할 수도 있다. 따라서 미 ITC 소송전에서 패한 기업은 미국으로의 상품 수출에서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크다고 봐야 한다.

현재까지의 진행 경과로 보면 불리한 입장에 서 있는 쪽은 SK이노베이션이다. ITC는 지난달 14일 진행 중인 2차전지 영업비밀 침해 소송과 관련한 예비결정에서 LG화학의 손을 들어주었다. SK이노베이션 측에 조기패소 판결을 내린 것이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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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 중인 송사의 일부에 대한 예비결정이지만, 이것만으로도 SK이노베이션은 심각한 이미지 훼손을 감수해야 한다. 일단 예비결정이고 이의 제기를 통해 재고를 요구할 수 있지만, 전례로 볼 때 최종결정에서 결론이 뒤바뀔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는 게 일반론이다.

SK이노베이션을 더욱 곤혹스럽게 한 것은 ITC가 예비결정의 근거로 삼은 판결문의 내용이다. ITC가 지난 22일 공개한 판결문은 SK이노베이션이 악의적인 증거 인멸을 통해 공정하고 효율적인 재판을 방해했다고 적고 있다. 판결문엔 진행 중인 소송이 증거 인멸과 포렌식 명령 위반 등으로 인해 어려운 지경에 빠져 있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ITC의 이 판결문은 최종판결에 대한 SK이노베이션 측의 희망적 기대에 여지없이 찬물을 끼얹었다고 볼 수 있다. 만약 LG화학과 타협을 이뤄내지 못한다면 SK이노베이션은 여러모로 큰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우선 2차전지와 관련된 배터리 셀과 모듈은 물론 관련 부품 등의 미국 수출길이 막힐 수 있다.

그 못지않게 중요한 손실은 회사에 대한 이미지 실추다. 이는 그룹 전반의 이미지와도 연관되기 십상이다. SK그룹 회장이 그토록 강조해온 기업의 사회적 가치 추구가 헛구호에 그쳤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최태원 회장은 그간 경제적 가치 못지않게 사회적 가치의 중요성 강조하며 그 개념을 지표화하는데 심혈을 기울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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