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한 폐렴(코로나19) 사태로 나라 경제가 어려워지자 돈 풀기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봇물 터진 듯 쏟아져 나온다. 때마침 다가온 총선도 그런 목소리를 키우는데 일조하고 있다.

사실 우리 경제는 지금 1990년대 후반의 환란 당시에 버금가는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우리만이 아니라 전 세계 국가들이 비슷한 상황에 처했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전세계가 조만간 1930년대 대공황기와 비슷한 상황에 직면할 수 있음을 경고하고 나섰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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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IMF 회원국 가운데 170개국 이상이 올해 마이너스 성장을 경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체 회원국 189개국의 약 10%만이 경제적 후퇴를 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미다. 어려운 상황임을 입증하듯 현재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국가 수는 90개국을 넘어섰다. 만약 감염병 사태가 2분기를 넘어 하반기로 이어진다면 그 수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4000억 달러가 넘는 외환 보유고에 미국과의 통화스와프 계약 체결 등으로 기반을 다져놓은 우리가 그들 국가처럼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하지만 우리 역시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한국은행의 이주열 총재마저 올해 우리 경제의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 총재는 9일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2분기에 감염병 사태가 진정 국면을 맞는다는 전제 하에 올해 한국 경제가 0%대 성장을 이룰 것이란 전망을 내놓았다. 예상 경로대로 경제가 굴러가지 않는다면 마이너스 성장도 가능하다는 것을 시사했다고 해석할 여지를 남긴 발언이었다.

보수적 민간 싱크탱크인 한국경제연구원의 전망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한경연은 올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로 -2.3%를 제시했다. 최근 발표한 1분기 ‘경제동향과 전망’ 보고서를 통해서였다. 성장률 전망치를 지난해 4분기 당시의 1.9%보다 무려 4.2%포인트나 낮춰 잡은 것이다. 하지만 이는 노무라증권이 제시한 -6.7%에 비하면 긍정적 전망치에 해당한다. 우리 경제가 후퇴 실적을 남긴 때는 2차 석유파동이 일었던 1980년(-1.6%)과 환란이 한창이던 1998년(-5.1%) 두 개 연도뿐이었다.

한경연은 올해 우리 경제가 외환위기 이래 가장 부진한 성장 실적을 보일 것으로 예상하면서 장기 침체 가능성에 대비할 것을 촉구했다. 한경연은 감염병 사태 와중에 기업실적이 부진해져 명목임금이 크게 감소하면서 민간소비가 줄 것으로 내다봤다. 가계부채 원리금 상환의 부담 증가와 주식·부동산 등의 자산가치 하락도 소비 감소를 재촉하는 원인이 될 것으로 보았다. 이와 함께 부동산 시장 억제정책에 의한 건설투자 감소 우려를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경연 보고서 중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내용은 따로 있었다. 극심한 경기 위축이 불가피한 상황인 만큼 정부가 어느 정도 재정 여력을 비축해두어야 한다는 지적이 그것이었다. 하반기 이후 현실화될 것으로 보이는 장기 침체에 대비하려면 재정의 소진을 최대한 자제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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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의 비축은 경제성장률과 함께 국가 신용도와 직결되는 기본 요소로 평가된다. 우리가 국가 신용도 등급에서 일본보다 상위에 위치하고 있는 것도 이와 관련이 깊다. 실제로 사방의 자금 지원 요청에 시달리는 IMF와 달리 무디스나 피치 등 국제신용평가사들은 감염병 팬데믹이 한창인 지금도 재정 건전성 유지를 강조하고 있다.

무디스는 지난 6일 ‘신용 의견서’를 통해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Aa2로, 등급 전망은 ‘안정적’으로 각각 유지한다고 밝혔다. 일부 산업과 금융권의 신용등급이 하락 압력을 받고 있지만, 중기적으로 한국은 결국 성장 동력을 회복할 것이라는 판단이 작용한 결과였다.

그러면서도 무디스는 한국의 고령화 현상을 지적하면서 장기적 관점에서 국가신용등급이 하락할지 여부는 경제성장률과 재정 상태에 의해 좌우될 것이라고 충고했다.

국내외 기관들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재정 건전성 유지는 국가경제의 기초를 튼튼히 해주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그리고 지금 같은 위기상황일수록 재정 여력의 확충에 대한 필요성은 더욱 절실해지기 마련이다.

평소 재정을 튼실히 관리해 왔다면 국가 기간산업 붕괴 위험에도 보다 여유롭게 대처할 수 있게 된다. 해당산업을 한시적으로 국유화해서라도 산업 기반을 유지해 나가면서 고용 대란 등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몸이 면역력을 필요로 하듯 국가 경제도 평시에 위기 대응을 위한 기초체력을 탄탄히 다져두어야 한다. 그런 노력의 하나가 재정 건전성을 유지해나가는 일이다. 이번 감염병 사태를 계기로 경제의 건강성을 점검해보고 그 필요성을 새삼 확인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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