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가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 등을 포함하는 산유국들 모임인 OPEC플러스가 하루 970만 배럴 원유 감산에 합의했지만 별무소용이다.

감산 협상에 관여해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트위터를 통해 “하루 2000만 배럴”을 언급했지만 시장의 반응은 여전히 시큰둥하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은 하루 2000만 배럴 감산에 합의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OPEC플러스 모임 밖의 산유국들을 자극하려는 의도가 담긴 희망을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15일(이하 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거래 마감된 5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의 배럴당 가격은 전날보다 1.2% 하락한 19.87달러였다. 뉴욕거래소에서 WTI 거래가가 20달러를 밑돌기는 2002년 2월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런던 ICE 선물거래소에서의 6월물 브렌트유가도 전날보다 배럴당 1~2 달러 하락한 가운데 거래가 진행됐다.

이 같은 현상은 OPEC플러스 합의 내용이 시장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난 12일 협상에 참가하고 있는 산유국들은 올해 5~6월 두 달 동안 매일 970만 배럴을 감산한다는데 합의했다. 원유 생산량 비교의 기준 시점은 2018년 12월이다.

하지만 합의 내용이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진 직후부터 이 정도로는 국제유가를 끌어올리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들이 제기됐다. 트럼프 대통령의 호들갑스러운 환호 역시 역설적으로 해석하면, 그런 우려를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은 다른 산유국들 이상으로 국제유가를 끌어올리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국제유가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올라가야 미국의 셰일원유가 국제적으로 가격 경쟁력을 지닐 수 있다는 점이 기본 이유다.

셰일원유의 경우 독특한 채굴 방식으로 인해 사우디 등 중동 산유국들이 전통 방식으로 채굴하는 원유보다 생산에 드는 비용이 높은 편이다. 그로 인해 국제유가가 지금 같은 수준을 유지한다면 미국의 셰일원유 생산업체들은 사실상 생산 활동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 미국의 셰일원유가 시장에서 경쟁력을 회복하려면 배럴당 국제유가가 최소 40달러, 많게는 60달러 정도로 상승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러나 상황은 미국의 희망대로 흘러가지 않고 있는 듯 보인다. OPEC플러스가 적지 않은 양의 감산에 합의했지만, 우한 폐렴(코로나19)이라는 뜻밖의 복병이 전세계 경제를 침체 국면으로 밀어넣은 것이 주요 원인이다. 미국 경제를 비롯한 세계경제가 심각한 부진에 빠지면서 원유 수요가 급격히 줄어들게 된 것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15일 밝힌 바에 따르면 이달을 기준으로 할 때 국제적 원유 수요는 하루 2900만 배럴 정도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OPEC플러스가 합의한 원유 감산량이 공급과잉을 해소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리라는 점을 시사한 셈이다.

국제유가 하락을 부채질하는 요인은 또 하나 있다. 세계 최대 석유 소비국인 미국의 원유 재고량 증가가 그것이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미국의 지난주 원유 재고량이 1920만 배럴 증가했다고 밝혔다. 시장의 증가 전망치는 1202만 배럴이었다. 이는 미국 경제가 시장이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부진하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나타내주는 요소일 수 있다.

[사진 = 로이터/연합뉴스]
[사진 = 로이터/연합뉴스]

미국의 실물경제 부진은 지표를 통해서도 드러나고 있다. 15일 미국 상무부가 발표한 바에 의하면 3월 미국의 소매판매는 그 전달에 비해 8.7%나 줄어들었다. 2월 감소폭 0.4%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임은 물론 18년 만의 최대 감소폭이다. 이 같은 결과는 시장의 예상을 훨씬 웃돌 만큼 참담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수치는 미국 실물경제의 버팀목인 소비가 그만큼 부진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생산 측면에서의 부진도 심각한 상황이다. 미 연방준비제도(연준)는 지난 달 미국의 산업생산이 전달보다 5.4%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1946년 이후 최대치인 것으로 전해졌다.

산업생산의 주류인 제조업 생산은 더욱 부진해 그 감소폭이 6.3%를 기록했다. 제조업 중단을 주도한 것은 자동차 산업의 부진 등이었다. 지난 달 미국의 자동차 생산은 27.2%나 감소했다. 사람들의 움직임이 멈추면서 자동차에 대한 수요가 덩달아 줄어든 것이 원인이었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경제의 침체는 원유 소비량 감소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따라서 원유 생산 감소가 소비 감소를 따라가지 못하는 한 국제유가는 당분간 내림세를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 이럴 경우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들의 에너지산업이 큰 타격을 입고, 이는 다시 국제적 원유 수요 감소를 자극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세계경제가 마이너스 3.0%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그간 상대적으로 고도 성장을 이어온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경우에도 60년 만에 처음으로 ‘제로 성장’을 경험할지 모른다는 전망을 제시했다.

이 모두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당분간 국제유가가 반등 기회를 찾기 어려울 것임을 보여주는 요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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