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재난지원금 기부가 정부·여당의 의도대로 이뤄지게 됐다. 그 의도를 정확하게 말하면 긴급재난지원금 플러스 알파 기부다. 가구당 최대 100만원의 재난지원금을 지급할테니 형편이 나은 사람들이나 공무원들은 알아서 수령을 사양하고, 이참에 기업들도 추가로 뭉텅이 기부금을 보태달라는 게 골자다. 대상을 명문화한 것은 아니지만 그간 여권에서 분위기잡기용으로 나온 발언들을 회고하면 사실상 타깃은 명료해졌다.

표면적 대상은 소득 상위 30%다. 정세균 총리는 지난 28일 열린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2차 추가경정예산과 관련한 의원 질의에 답변하면서 ‘상위 30%’를 거듭 거론했다. 그는 “(재난지원금 지급 대상에서} 상위 30%를 제외하는 것이 제 원래 생각”이라며 “대통령도 같은 의견”이라고 강조했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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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여야는 재난지원금 전국민 지급 문제를 두고 갑론을박을 벌였지만 국회는 결국 기존보다 4조6000억원 증액된 총 12조2000억원 규모의 2차 추경안을 의결했다. 이 추경안은 재난지원금 전국민 지급과 소득 상위 그룹의 자발적 기부를 전제로 한 것이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국회는 긴급재난지원금 기부 근거를 담은 ‘기부금 모집 및 사용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의결했다. 이 특별법은 재난지원금을 미수령할 경우 그 돈을 고용보험기금 수입으로 돌린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긴급재난지원금’은 신청과 동시에 자발적 동의를 얻거나, 지원금 신청 접수 이후 자발적 의사에 의해 모집된 돈으로 개념 정리됐다.

그간 논의됐던 대로 3개월 이내에 신청 접수가 안 된 경우 자발적 기부 의사를 표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내용도 추가됐다.

재난지원금을 기부한 사람에 대해 정부는 연말정산이나 종합소득세 신고 때 15%의 세액공제 혜택을 부여하기로 했다.

이로써 재난지원금 지급 문제를 둘러싼 법적·절차적 문제는 일단락됐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문제가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니다. ‘자발적 기부’의 성격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 논란은 두고두고 이어질 수밖에 없다, 논란의 핵심은 허울만 자발적 기부일 뿐 사실상 울며 겨자 먹기 식의 강요된 기부라는 점이다.

여권에서는 2차 추경안과 기부금 관련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기 이전부터 바람잡기가 진행됐다. 대표적인 것이 여권 인사들 입에서 나온 “삼성이 30억쯤 내주면 좋겠다”라든가 “대통령이 1호 기부에 나선다면…” 등등의 발언이다. 노골적으로 기업과 공무원들의 기부를 압박하는 내용들이다.

이런 분위기로 인해 벌써부터 기부를 선언하는 기업이 나오기 시작했다. 감염병 팬데믹으로 그러지 않아도 궁지에 몰린 기업들이 지원 대상이 아니라 지원의 주체가 되는 불합리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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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들이 느끼는 압박감은 상술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대통령 1호 기부’ 발언만으로도 장·차관, 국·실장들은 물론 그 이하 공무원들은 줄줄이 압박감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권에서는 이에 아랑곳없이 “100만 공무원” 운운하며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다.

주로 여당 인사들 입에서 비공식적으로 나오는 이런 유의 유도성·압박성 발언들에서는 특정한 노림수가 엿보인다. 재난지원금을 전국민에게 주기로 한 총선 공약은 공약대로 지키면서 부자들에게까지 지원금을 줄 필요가 있느냐는 일각의 비판을 희석하려는 속내가 깃들어 있다는 얘기다.

특히 논란이 되는 것은 기업들에 대한 기부 압박이다. 그러지 않아도 공정경제라는 명분 하에 각종 압박을 받아온 데다 최근 들어서는 감염병 충격까지 힘겹게 견뎌내고 있는 기업들은 새로운 준조세 부담까지 덤으로 짊어져야 할 판이다.

그렇다고 해서 기부 분위기를 외면하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이 돼버렸으니 딜레마도 그런 딜레마가 없을 것이다. 옆구리를 푹 푹 찔렀음에도 불구하고 기부금을 내지 않을 경우 나타날 수 있는 반기업 정서를 생각하면 3중고에 4중고를 견뎌낼 각오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권이 이런 상황까지 염두에 두고 기부 분위기 조성에 나선 것은 아니라고 믿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여권이 보이는 행태는 왠지 개운찮은 뒷맛을 남기고 있는 게 사실이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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