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이 미국과 유럽에서 다소 주춤한 양상을 보이자 경제활동 재개 움직임이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일찌감치 감염병과의 사투를 시작한 우리는 세계가 주시하는 가운데 그들보다 한 발 앞서 방역 방식에 변화를 꾀하고 있다. 생활 방역이란 이름 하에 국민 각자가 스스로 기본수칙을 준수하면서 사회생활을 일부 정상화시켜가고 있는 것이다.

이럴 때 더욱 필요한 것이 긴장의 끈을 더욱 조이는 일일 것이다. 오랜만에 회복된 일상의 재미에 빠져들다 보면 긴장감을 풀기 쉬워지는 탓이다. 방심의 위험은 개인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정부가 섣불리 긴장을 풀었다가 낭패를 본 외국 사례도 적지 않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감염병 사태를 헤쳐가는 과정에서 정부가 방역 외에 크게 신경써야 할 것 중 하나가 전략적 대응 태세의 유지다. 요는 감염병과 싸움을 벌이는데 있어서 가장 확실한 무기인 재정을 적절히 조절해가며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쟁의 끝이 어느 시점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실탄을 모두 소진해버렸다가는 큰 낭패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코로나19의 2차 팬데믹에 대한 경고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고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남반구를 거쳐 겨울에 북반구로 올라와 다시 기승을 부릴 가능성이 거론되는가 하면, 바이러스가 지역별로 변이를 일으키며 동시다발적으로 기승을 부릴지 모른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수년에 걸쳐 일정 정도의 인구가 감염된 다음에라야 비로소 집단 면역력이 생겨 코로나19가 지구상에서 사라질 것이란 우울한 전망도 심심찮게 나온다.

방역 전문가들의 이런 우려는 경제관련 기관의 경고로 이어지고 있다. 일례로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경제난에 처한 나라들의 병참기지 역할을 하고 있는 국제통화기금(IMF)은 시간이 지날수록 세계경제 회복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고 있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는 최근 언론사 주최 행사에서 불과 한 달 전에 스스로 제시했던 세계경제 성장률 전망치가 너무 낙관적이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지난 달 자신이 말한 올해 세계경제 성장률 전망치 -3.0%를 보다 낮게 수정할 뜻을 밝힌 셈이다.

IMF의 세계경제 성장률 전망치는 시간이 갈수록 험악해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더욱 신경 쓰이는 것은 전망치 변화 추이다. IMF는 올해 초 세계경제 성장률을 3.3%로 제시했다가 지난달엔 그보다 6.3%포인트나 낮아진 수정전망치를 내놓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이를 더 낮추겠다고 총재의 입을 통해 예고한 것이다. 게오르기에바 총재는 구체적 전망치를 6월 중 내놓겠다고 밝히면서 “더 나쁜 소식을 내놓을 가능성이 크다”고 미리 경고했다.

때맞춰 나온 국제신용 평가사 무디스의 한국 관련 발표 내용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지난 12일 무디스는 한국의 국가신용등급 ‘Aa2’ 유지 결정을 발표했다. 등급전망도 ‘안정적’으로 유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무디스의 발표 내용 중에 우리가 흘려들을 수 없는 다른 것들이 포함돼 있었다. 그 골자는 그런 결정을 내린 이유와 향후 나타날 수 있는 변수에 대한 언급이다. 무디스는 한국의 등급을 유지한 배경 및 이유로 정부 재정 및 부채 상황을 거론했다. 코로나19 피해가 제한적인데다 이 두 가지 요인에서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신용등급 유지의 배경이자 이유임을 밝힌 셈이다.

국가채무 시계. [사진 = 국회 예산정책처 홈피 캡처/연합뉴스]
국가채무 시계. [사진 = 국회 예산정책처 홈피 캡처]

IMF는 그러나 장기적 관점에서 볼 때 한국의 재정 상태를 악화시킬 위험 요소가 상존한다는 점을 은연중 상기시켰다. 구체적 위험 요소로는 고령화와 지정학적 리스크를 지목했다. 이들 요인으로 인해 정부 재정 및 부채 상황이 악화될 수 있으니 미리미리 대비하라고 충고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내부에서 보는 현실은 무디스의 경고가 오히려 한가하게 느껴질 만큼 불안정하다. 이미 위기 상황에서나 있을 법한 슈퍼급 본예산이 짜여진데다 세 차례의 추가경정예산이 현실화될 것이 확실시된다는 점이 그 배경이다. 이것만으로도 우리는 100조 규모의 적자국채를 발행해야 하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40%대 중반을 감수해야 할 판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올 초 예상대로 상반기 중 마무리된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IMF만 해도 코로나19가 올해 하반기까지 이어질 경우와 내년에 다시 한 번 팬데믹이 나타날 가능성까지 염두에 둔 채 세계경제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이런 우려가 현실화될 경우 지금처럼 재정을 집행했다가는 큰 낭패를 볼 게 확실하다. 흔히 재정 남용 사례로 일본을 이야기하곤 하지만 우리는 기축통화국이 아니라는 점에서 일본보다 더 불리한 입장에 있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위기 때일수록 살아남으려면 주머니를 든든히 채워두어야 한다. 기업들이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될 기미를 보이자 현금 확보에 나서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국가라고 해서 예외일 수 없을 것이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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