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개발연구원(KDI)이 20일 ‘2020년 상반기 경제전망’을 제시했다. 이번 KDI 보고서는 우한 폐렴(코로나19) 사태로 올해 우리 경제가 외환위기 이후 가장 안 좋은 상황을 맞고 있는 와중에 나왔다는 점에서 특히 관심을 끌고 있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그 내용도 평소와는 달랐다. 관점에 따라 분석에 차이가 나타날 수 있겠지만, 이번 보고서의 메시지는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재정 지출의 급격한 증가가 몰고 올 후유증에 미리 대비하라는 것이었다. 이는 정부가 이미 슈퍼급 본예산을 편성한데 이어 올해에만 최소 세 차례의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는 사실과 연관돼 있다.

브리핑하는 KDI 경제전망실장. [사진 = 연합뉴스]
브리핑하는 정규철 KDI 경제전망실장. [사진 = 연합뉴스]

보고서에 직접 언급된 내용의 골자는 기준금리를 제로금리 수준으로 낮추는 동시에 중앙은행이 국채를 적극 매입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금리인하와 양적완화 정책의 병행을 주문한 셈이다. 우선은 통화 당국이 적극적인 통화정책을 펼침으로써 시중 유동성 확대를 꾀해야 한다는 의미다.

재정 관리 당국에 대해서는 신중한 행보를 당부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제적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노력하되 재정지출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재정 지출 규모는 물론 사용 방식에 대해 면밀한 검토가 수반돼야 한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보고서는 먼저 통화 당국을 향해 적극적인 통화정책 운용을 권고했다. 감염병 사태로 경제 성장세가 위축돼 있고,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0% 내외 수준으로 둔화된 현실을 반영해 기준금리를 “0%에 충분히 가까운 수준으로” 인하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였다.

통화 당국을 향한 권고 내용은 단순히 금리 인하만을 강조하는데 그치지 않았다. 보고서는 금리를 인하하는 것과 함께 비전통적 방식의 양적완화를 병행하라는 권고까지 덧붙였다. 이를 통해 시중 유동성이 최대한 늘어나게 하라는 것이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분석될 수 있다. 그중 하나는 정부가 재정지출을 크게 늘림에 따라 수반되는 국채 발행의 후유증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점이다. 국채 발생이 늘면서 자칫 시중 유동성이 대거 흡수될 수 있으니 그 부작용을 미리 막아야 한다는 게 KDI의 분석이다. 그래야만 시중 유동성이 마르지 않아 금리인하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정규철 KDI 경제전망실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다량의 국채 발행이 시중 유동성 공급 효과를 낮출 가능성을 거론했다. 그는 “유동성이 부족해져 기업과 가계가 파산하면 경기회복이 더 지체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으로 정 실장은 한국은행의 적극적인 국채 매입을 권고했다.

유동성 공급 확대와 함께 그가 강조한 또 하나의 대책은 늘어난 유동성이 경제 주체들에게 고루 스며들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정 실장은 광범위한 사람들에게 유동성이 고루 공급되게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금리인하라는 점을 강조했다.

통화정책과 관련한 그의 발언을 종합하면 금리인하를 통해 사회 전반에 걸쳐 유동성을 늘려주는 한편 적극적인 국채 매입으로 이미 공급된 유동성이 유지되도록 노력하라는 것이다.

통화 정책과 관련한 KDI의 권고는 한국은행의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회의를 목전에 두고 나온 것이어서 특히 주목된다. 한은은 오는 28일 금통위 회의를 열고 올해 들어 네 번째로 기준금리 조정 문제를 논의한다.

따라서 KDI의 이날 보고서는 사실상 한은을 향해 이달 금통위 회의에서 현행 0.75%인 기준금리를 추가로 인하하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 할 수 있다. 보다 적극적으로 해석하자면, 기준금리를 낮추되 그 폭을 0.25%포인트 이상으로 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여지도 있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재정정책에 대해서는 보다 신중한 자세를 유지할 것을 권고했다. 재정을 통해 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하되 지출 규모와 구성에 신중을 기하면서 재정 건전성 유지해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게 그 골자였다. KDI는 “최근의 급격한 재정적자 증가는 향후 재정 건전성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진단하면서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할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올 들어 정부는 이미 두 차례에 걸쳐 23조9000억원 규모의 추경을 편성했고, 이에 더해질 30조원가량의 3차 추경을 눈앞에 두고 있다. 3차 추경 편성이 마무리되면 2차 추경으로 이미 41.4%까지 악화된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40%대 중반 수준으로 올라가게 된다. 그런 상황에서 추후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4차, 5차 추경이 이어진다면 국가채무 비율이 50%를 넘어가는 것도 가능해진다.

재정 악화는 정부에 증세 부담으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다. 재정 악화의 부담을 최종적으로 져야 할 대상은 국민들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날 KDI도 증세 가능성을 거론했다. 정 실장은 “지금 당장은 어렵겠지만 재정수입 확대를 위해 증세가 필요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금이 증세 논의를 시작할 시점임을 강조했다.

KDI는 그에 앞서 우선은 재정 지출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즉, 지출 대상을 ‘한시적이고 가역적인 성격’에 국한시킴으로써 추가적인 재정지출이 고착화되는 일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 주요 강조점이었다.

이는 섣부른 복지 지출 확대를 자제하라는 메시지라 할 수 있다. 복지 지출은 한 번 실행하고 나면 멈추기 힘들다는 점을 에둘러 경고했다는 얘기다. 재정지출 확대의 지속은 코로나19 위기 극복 이후의 경기 회복에 장애가 될 수 있다는 점이 그 같은 경고의 배경이다.

한편 정 실장은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0.2%로 조심스레 전망하면서 “불확실성이 커 역성장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나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