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의 시간당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130원 늘어난 8720원으로 사실상 결정됐다. 올해 대비 인상률은 1.5%다. 최저임금제를 처음 시행한 1988년 이후 가장 낮은 인상률에 해당한다.

월급 단위로 환산한 내년도 최저임금은 182만2480원이다. 이는 주당 40시간에 주휴시간을 포함해 월 209시간을 일한다는 전제 하에 계산된 액수다. 올해 최저임금의 월 환산액은 179만5310원이었다. 최저임금 월 환산액 인상폭은 2만7170원이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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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도 최저임금은 14일 새벽에 끝난 최저임금위원회 9차 전원회의에서 의결됐다. 정부세종청사에서 진행된 전원회의 표결엔 진통 끝에 공익위원 9명과 사용자위원 7명만이 참석했다.

이날 회의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추천한 근로자위원 4명이 불참한 가운데 진행됐다. 결국 총 27명(사용자위원과 근로자위원, 공익위원 각 9명)의 위원 가운데 23명이 참가한 가운데 논의가 이뤄졌으나 막상 표결이 임박하자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추천 몫의 근로자위원 5명과 소상공인연합회 소속 사용자위원 2명이 회의장을 이탈했다. 공익위원이 제시한 안에 대한 불만의 표시였다.

공익위원들은 사용자위원과 근로자위원 간 대립이 이어지자 나름의 안을 제시했고 이를 두고 표결이 이뤄졌다. 당초 근로자위원들은 내년도 시간당 최저임금으로 1만원(올해 대비 16.4% 인상안)을 제시했었다. 반면 사용자위원들은 올해보다 2.1% 삭감된 8410원을 제시하며 버티기에 들어갔다. 경영계에서 진작부터 거론돼온 ‘최소 동결’을 관철하기 위한 수순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후 조정 노력이 이어졌지만 사용자위원과 근로자위원 간 입장차는 크게 줄지 않았다. 이에 공익위원 측은 8620~9110원을 심의 촉진 구간으로 설정해 양측에 제시했다. 인상률로 환산하면 0.3~6.1%에 해당하는 수준이었다. 이를 토대로 사용자위원과 근로자위원 양측에 재수정안을 요구했지만 끝내 입장차가 줄어들지 않았다.

그러자 공익위원들이 자신들의 안을 제시했고, 표결이 이뤄졌다. 결과는 찬성 9표, 반대 7표였다. 이를 두고 공익위원 일부가 경영계 측 입장을 지지했을 것이란 분석이 제기됐다.

이로써 내년도 최저임금은 사상 최저 수준의 인상률을 기록하게 됐다. 다음달 5일 시한인 고용노동부 장관 고시가 있기 전 재심의 요구가 있을 수 있지만 최저임금위 의결 내용이 바뀔 가능성은 거의 없다. 아직 그런 전례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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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이 소폭 인상에 그치게 된 배경엔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이 자리하고 있다. 올해 우리 경제는 마이너스 성장에 그칠지 모른다는 위기론에 휩싸여 있다. 그 여파로 고용난이 더욱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졌다.

그런 탓에 최저임금을 무작정 올리기보다 고용주들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줌으로써 고용을 유지하는 쪽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전보다 많아졌다. 고용 감소에 대한 우려는 국가 통계자료를 통해 어느 정도 뒷받침된다. 지난 5월 현재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 수는 한 해 전보다 20만명이나 감소했다.

지금의 고용 환경이 특히 취약계층에 불리하도록 조성돼가고 있다는 점도 이번 결정의 배경을 이뤘다고 봐야 한다. 과거 외환위기 당시엔 금융불안이 먼저 시작됨에 따라 금융권과 대기업 중심으로 대량 해고가 이뤄졌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가 한창인 지금의 상황에서는 실물부문이 곧바로 타격을 입으면서 취약계층이 전면에서 그 충격을 받아내고 있다.

이 같은 현실이 최저임금 인상률을 외환위기 당시(1998년 2.7%)보다 더 낮게 의결하는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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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도 최저임금이 소폭 인상됨에 따라 문재인 대통령 임기 중 최저임금 1만원 시대가 열릴 가능성마저도 희박해졌다. 문 대통령은 당초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을 달성하겠다는 것을 대선 공약으로 제시했었다. 하지만 이 공약은 진작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문 대통령 취임 초기 최저임금이 연이어 급격히 올라간 점도 이번의 소폭 인상을 초래한 원인 중 하나로 꼽을 만하다. 급격한 인건비 증가로 자영업자를 비롯한 소상공인들이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면서 최저임금 인상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여론이 많아졌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현 정부 취임 초반부의 과도한 최저임금 인상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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