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장의 장마가 이어지면서 홍수 피해가 속출했다. 지난 12일을 기점으로 한 인명 피해만 해도 사망·부상·실종을 망라해 50명을 넘어섰고 이재민도 8000명 가까이 발생했다. 국가적 역량을 모아 수해 복구와 피해자 지원에 적극 나서야 할 상황이다.

이런 판국에 정치권에서는 엉뚱하게도 4대강의 효용성을 둘러싼 논란이 열기를 더해가고 있다. 논란의 불씨를 제공한 쪽은 미래통합당이다. 4대강 사업에서 제외된 섬진강이 제방 붕괴로 범람해 물난리가 발생하자 거보란 듯 4대강 사업의 효과를 강조한 것이 그 불씨였다.

부여 백제보 모습. [사진 = 충청남도 제공/연합뉴스]
부여 백제보 모습. [사진 = 충청남도 제공/연합뉴스]

논란을 키운 쪽은 이를 맞받아친 문재인 대통령이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0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수·보회의)를 통해 작심한 듯한 발언을 쏟아냈다. 홍수 피해의 원인과 책임 규명도 소홀히 하지 않아야 한다며 한 말이었다. 문 대통령은 4대강 보를 직접적으로 거론하면서 그 영향에 대해서도 깊이 있는 조사와 평가를 해달라고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이번 물난리가) 4대강 보가 홍수 조절에 어느 정도 기여하는지를 실증적으로 분석할 기회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의 이 발언은 관계 당국에 대한 지시로 볼 수 있다. 정부 당국으로서는 어떤 식으로든 4대강 보의 효용성에 대한 조사에 착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이 해묵은 쟁점인 4대강 보의 효용성을 따지기 위해 행정력을 쏟아부어야 할 때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피해지역 주민들이 망연자실해 있는 이 상황에서 정치적 논쟁을 심화시키고 또 다시 국론을 분열시킬 논제를 제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냐는 것이다.

청와대와 정부가 지금 만사 제쳐두고 집중해야 할 일은 수해 복구와 재난 극복을 위한 지원이다. 일반 국민들도 일의 우선순위를 너무나 잘 알기에 앞다퉈 수해복구 현장으로 달려가고 있지 않은가.

4대강 사업에 대한 논쟁을 두고는 넌더리가 난다는 사람이 많다. 지금까지 감사원이 네 차례에 걸쳐 감사를 진행했지만 결과는 그때그때 달랐다. 국민들이 보기엔 정권 입맛에 맞춰 감사 결과를 내놓은 것이란 의심을 품을 수밖에 없다.

감사는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진행됐다. 당시 감사는 시작 단계에서부터 논란을 낳았다. 대통령의 지시로 감사원이 움직이는 것 자체가 논란거리였다. 아무리 대통령 소속 기관이라지만 독립성이 강조되는 감사원에 대통령이 특정 사안을 제시하며 감사 지시를 내리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더 중요한 것은 감사 결과였다. 같은 사안에 대한 감사 결과가 매번 달라지니 모든 감사 결과가 신뢰를 잃게 됐다. 달라진 것은 정권일 뿐이었는데 그때마다 감사 결과가 달랐으니 당연한 귀결이었다.

문재인 대통령. [사진 =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 [사진 = 연합뉴스]

사실 4대강 사업 효과에 대해서는 국민 모두가 궁금해 하고 있다. 진실은 하나일 텐데 진영별로 너무도 다른 주장을 하고 있으니 뭐가 정답인지 알 방도가 없다. 학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조차 두 패로 나뉘어 상반된 주장을 펴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니 학문적 순수성마저 실종됐다는 개탄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모두 정치 과잉, 이념 과잉이 낳은 불행한 결과들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다시 4대강 사업에 대한 효용성을 조사한다니 우려가 앞설 수밖에 없다. 일의 우선순위로 따져도 지금은 수해 복구에 전념해야 할 때다. 복구가 끝난 다음 할 일은 수해 자체에 초점을 맞춰 그 원인을 규명하고 책임 소재를 가려 귀책사유가 있는 사람은 처벌하는 것이 순서다. 이를 토대로 재발 방지책을 세워야 수해 대응이 완결된다. 그게 이번 사태를 인재로 판단하고 있는 피해 주민들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이기도 하다.

민간 전문가를 참여시킨다 해도 정부 주도의 4대강 사업 조사는 논란만 키울 공산이 크다. 야당은 물론 적지 않은 국민들도 조사 결과를 선뜻 신뢰할 수 없을 만큼 이 사안은 이미 정치적으로 쟁점화돼 있다.

굳이 4대강 사업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려면 정부 주도가 아니어야 한다.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위원회를 구성해 조사를 하는 것이 그나마 나은 방법일 수 있다. 이상적이기로는 장기적 관점에서 감사원을 국회 소속으로 바꾼 뒤 재감사를 실시하는 방안이 있다. 헌법 일부 개정이 필요한 일이긴 하지만 국회의 기본기능 중 하나가 국정에 대한 감사라는 점을 감안하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해볼 만한 방법이 아닌가 싶다.

방법이 무엇이 됐든 정부 주도의 4대강 사업 조사는 문제가 있다. 어떤 결론이 나오든 정치적 대립은 더욱 첨예화될 것이 명약관화하다. 그러지 않아도 다수 국민들은 진영 간 다툼으로 지새는 나날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자꾸 논란거리를 제공하는 여권에 있다. 적폐 청산도 좋고 국면 전환도 좋지만 이제 그만할 때도 됐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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