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의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 강행으로 시행중인 전월세 상한제가 자칫 전월세 동결제로 둔갑하게 됐다. 비록 5% 이내 범위일지라도 임차인이 임대료 인상을 거부하면 임대인은 한 푼도 올려받지 못하게 된 탓이다. 이는 여당이 속도만 강조하며 법률 개정안을 무리하게 밀어붙이면서 생긴 입법사고인 것으로 보인다.

불의의 사고가 아니라는 시각도 대두됐다. 여당이 처음부터 전월세 동결을 목표로 삼은 채 법안 통과를 밀어붙였고, 정부도 그 속 내용을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의심이 그 배경에 자리하고 있다. 이로 인해 ‘입법사기’라는 말도 등장했다.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던 당시 모습. [사진 = 연합뉴스]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던 당시 모습. [사진 = 연합뉴스]

입법사고 논란은 개정된 임대차보호법에 새롭게 들어간 조항에서 비롯됐다. 개정 법률엔 동법 7조(차임 등의 증감청구권)의 1항에 대한 단서조항이 추가돼 있다. 추가된 내용은 ‘1항에 따른 증액 청구는 약정한 차임(借賃, 임대료)이나 보증금의 20분의 1 금액을 초과하지 못한다’였다.

문제는 개정된 법에 임차인의 임대료 인상 수용 의무가 명시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 결과 임차인으로서는 임대료 인상 요구를 거부할 명분을 얻게 된 셈이다.

이 조항은 전월세 계약갱신청구권 관련 조항과 대비된다. 해당 조항엔 집주인이 기존 임차인의 계약갱신 청구를 거부할 수 없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임대차보호법 6조의3(계약갱신 요구 등)의 1항이 그것이다. 이 조항에 따르면 임대인 본인이나 그 직계존비속이 직접 거주할 경우 등이 아니면 계약갱신 요구는 거부될 수 없다.

전월세 상한제와 관련한 문제점이 뒤늦게 노출된 계기는 국토교통부의 해설서 공개였다. 국토부는 개정 임대차보호법을 둘러싸고 혼선이 빚어지자 이를 해소할 목적으로 Q&A 형식의 해설서를 만들어 지난 23일 공개했다.

논란의 직접 도화선이 된 것은 12개의 질문·답변 중 9번째 문답이었다. 여기엔 ‘임대인은 임대차 기간 동안 1년마다 임대료를 5%씩 올릴 수 있는지?’라는 질문이 나온다. 이에 대한 답변은 ‘그렇지 않다. 임대인이 임대료 증액을 청구할 수 있다는 것일 뿐 임차인이 증액 청구에 반드시 응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 꼭 5%를 증액해주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였다. 이어진 답변엔 임대료 인상은 양자 협의를 통해 기존의 5% 이내에서 가능하다는 내용도 들어 있었다.

종합하자면, 임차인이 수락하지 않는 한 임대인은 한 푼일망정 임대료 인상 의지를 관철할 수 없다는 의미다.

국토부는 임대차보호법 해설서를 오는 28일 국토부와 법무부 홈페이지 등을 통해 전자문서 형태로 배포한다. 상세한 내용을 필요로 하는 이들은 해당 부처 홈페이지에서 해설서를 내려받을 수 있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국토부 해설서 내용이 공개되자 야당은 전월세 상한제 졸속 도입이 문제를 일으켰다고 주장했다.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는 25일 진행된 당 원내대책회의 발언을 통해 “졸속으로 밀어붙인 임대차보호법의 부실이 밝혀졌다”고 말했다. 그는 국토부 해설서 내용을 거론하면서 세입자가 동의하지 않으면 임대료 인상이 안 된다고 소개했다.

그는 이어 “세입자는 계약을 4년까지 연장할 수 있고, 집주인은 세입자 동의 없이 임대료를 못 올린다”면서 “이런 상황에선 4년치를 미리 올려받는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주 원내대표는 개정 법률로 인해 임대인과 임차인 간 형평성이 상실됐음을 지적하면서 “분쟁이 속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여당의 솔직한 사과와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하지만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이에 대해 별다른 문제의식을 드러내지 않았다. 김 장관은 이날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전월세 상한제 논란에 대한 질의가 나오자 “임대인과 임차인이 조화롭게 합의하길 바란다”고 답했다. 문제의 법 조항이 부를 혼란과 갈등을 외면하려는 듯한 인상을 주는 발언이었다.

하지만 법률의 졸속 개정에 대한 비판은 두고두고 이어질 것이 확실시된다. 우선은 정부·여당이 처음에 강조했던 입법 의지가 무색해졌다는 게 문제다. 나아가 법안이 초래할 논란과 관련해 임차인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국토부의 유권해석까지 나왔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또 한 번 뒤통수를 맞았다고 느낄 임대인들의 불만이 증폭될 것이란 점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임차인과의 갈등 심화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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