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파업이 코로나19 감염병 사태 와중에 터졌다. 이로 인해 정부와 의료계의 대립이 극한으로 치닫고 있지만 해결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강대 강 대립이 길어지면 피차 상처를 피할 수 없겠지만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쪽은 일반 시민일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지금은 그러지 않아도 의료서비스의 공급망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는 시점이다. 이런 마당에 상당수 의료 인력이 환자 곁을 떠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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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해서 의료계가 무조건 잘못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파업 사태를 촉발한 쪽은 어디까지나 정부다. 정부가 의료계 의견 청취 없이 논쟁적인 의료보건정책을 밀어붙인 것이 의사들, 특히 의료 서비스의 장래를 책임질 의대생들과 전공의, 막 전문의가 된 전임의 등 젊은 의료인들을 자극했다. 이들은 정부가 의료계와의 협의는 고사하고 일언반구 예고도 없이 일방적으로 정책을 입안한 뒤 따를 것을 강요한다고 항변한다.

정부가 추진 중인 정책의 옳고 그름을 떠나 이 부분은 명백한 사실이다. 의료계는 자신들을 배제한 채 정부가 독단적으로 추진하는 의료보건정책은 결코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더구나 정책의 내용은 하나 같이 의료계의 반발을 부를 만한 것들이었다. 그러니 양측의 대립은 예고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독자적으로 정책을 만들어 강행하려 했으니 집단휴진 사태는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귀결이라 할 수 있다.

정부는 의료계 파업을 두고 ‘하필 이럴 때’라는 반감을 드러내고 있는 것 같다. 이를 여론전에 활용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이 코로나19 사태가 한창인 지금을 ‘전시’에, 의사들을 ‘군인’에 비유한 것만 보아도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하필 이럴 때 의료계 파업을 유도한 쪽은 정부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사안의 민감성으로 볼 때 의료계 반발이 불 보듯 뻔한 데도 무모하게 일을 밀어붙인 것이 혼란의 단초가 됐다는 의미다. 의료계 입장에서는 전대미문의 감염병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이 때 정부에게 뒤통수를 맞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오히려 격려와 지원을 받아야 할 시점에 그들로서는 달가울 수 없는 정책을 불쑥 던진 뒤 원안대로 강행하려는 정부가 원망스럽게 느껴졌을 것이다.

이 점이 특히 고된 노동에도 불구하고 의료인이라는 자부심으로 바이러스와 싸우는 의료인들을 분노하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그들은 국가 지시에 의해 움직여야 할 공무원도 아니고 더더구나 명령에 죽고 사는 군인도 아니다,

이번 사태는 정부의 일방통행식 정책 운용 관행이 부른 화라 정리할 수 있다. 정책의 당위성을 논하기에 앞서 추진 방식에서 큰 문제를 드러냈다고 보아야 한다. 사실 의료인력 확충, 공공의과대학 설립, 한방용 첩약에 대한 급여화, 원격의료 제도화 등은 이해 당사자 간 갈등을 조정해가며 하나하나 풀어가야 할 과제들이다. 관련 정책 추진은 정책의 성공을 현장에서 담보해줄 의료계의 의견을 청취해가며 하는 게 정도다. 이는 문재인 정부가 그토록 강조해온 민주주의의 기본정신에도 부합한다.

소통만 이뤄진다면 정부가 거둘 성과도 적지 않으리라 예상된다. 주요 현안에 대해서는 정부와 의료계 간 공감대도 상당 부분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난제 중의 난제인 의료인력 확충 문제의 경우도 절대수는 얼마나 부족한지, 인력 배치상의 문제는 무엇인지 등을 양측이 머리를 맞대고 따져보면 해결책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브리핑하는 김강립 보건복지부 차관. [사진 = 연합뉴스]
브리핑하는 김강립 보건복지부 차관. [사진 = 연합뉴스]

그러나 정부 당국의 행태를 보면 처음부터 의료계와의 소통은 안중에 없었다. 기껏 집단휴진 사태가 터진 뒤에야 긴급 대화에 나섰으니 상대방으로부터 진정성을 인정받을 리 만무했다. 근본 문제는 소통 부재라는 얘기다.

문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정책 추진 과정에 현 정부 특유의 정치논리가 작용했다는 의문을 갖게 하는 정황도 엿보인다. 이는 앞서 언급했듯이 추진 시점과 방식 등 모두가 상식적이지 않다는 것과 연결된다. 지난 3년간 현 정부가 보인 행태도 정황의 일부다.

요는 소수 엘리트 집단인 의사들은 마구 밀어붙여도 여론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게 아닌가 하는 것이다. 여당 의원이 의사들을 ‘바이러스’라 공격한 것도 그와 무관치 않게 여겨진다. 이 역시 소수 기득권 세력은 함부로 공격해도 정치적으로 손해 볼 게 없다는 계산에 의한 것이 아닌가 싶다.

종합하자면 ‘하필 이럴 때’ 민감한 정책을 내놓고 소통 없이 밀어붙임으로써 의사들에게 코로나19 위기에서도 자기 잇속만 챙기는 이들이라는 프레임을 씌우려 했다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는 뜻이다.

결자해지 원리에 맞게 이번 집단휴진 사태는 정부가 먼저 해결의 물꼬를 터야 한다. 정책 추진 중단을 선언하고 진지한 대화 의지를 표명하라는 것이다. 연후엔 의료인들도 즉각 파업을 풀고 업무현장에 복귀해야 한다. 물론 향후 진행될 대화는 원점 출발을 전제로 함이 마땅하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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