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조세재정연구원(조세연)이 갑자기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조세연을 ‘얼빠진 연구 결과’나 내놓는 곳으로 매도하면서 ‘적폐’로 몰아붙인 것이 그 배경이다. 이재명 지사의 원색적인 공격은 매우 이례적이다. 조세연이 국무총리 직속의 국책연구기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의아스럽기까지 하다.

이 지사의 공격 이유는 간단해 보인다. 국책연구기관임에도 불구하고 ‘감히’ 현 정부의 정책 기조에 반하는 보고서를 냈다는 점이 이 지사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것 같다. 그 자신이 지역화폐 활용에 적극적이라는 점도 화를 돋군 배경이 된 듯하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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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연은 우리나라 조세와 재정, 금융과 관련된 분야를 관찰하고 연구·분석 결과를 내놓는 곳이다. 이를 통해 정부 정책이 올바른 방향으로 수립되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하는 두뇌 집단이다. 총리 직속 기관이고 기관장의 경우 기획재정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하지만 업무의 엄중함으로 인해 마땅히 정치색을 배제해야 하는 곳이다. 때론 전문가적 시각에서 정부의 정책에 비판적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조세연의 존재 이유다.

이번 사태의 발단이 된 것은 조세연이 작성한 최근 보고서 ‘지역화폐의 도입이 지역경제에 미친 영향’이었다. 문제의 보고서는 현 정부 들어 급격히 몸집을 불린 지역화폐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내용을 담았다. 조세연은 보고서를 통해 지역화폐가 가져다주는 지역의 순경제적 효과는 없다는 분석을 제시했다.

오히려 지역화폐 발행시 많은 비용이 발생하고 소비자 후생 손실과 보조금 지급으로 인한 예산 낭비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올해의 경우 지역화폐 발행에서 초래된 부대비용으로 인해 경제적 순손실이 2260억원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이 보고서는 지역화폐의 역기능에 대한 최초의 본격 분석물이 아닌가 싶다. 아직 역사가 일천하긴 하지만 최근 들어 지역화폐 발행 규모가 급격히 커지면서 그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는 상황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조세연 스스로 시사했듯이 이 보고서에는 아직 완벽한 분석 결과가 담겼다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현재로서는 그 효과를 정확히 측량할 데이터가 충분히 축적돼 있지 못하다는 게 그 이유다. 조세연은 데이터 수집의 한계로 인해 2018년까지의 자료를 토대로 연구를 마쳤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결국 조세연의 이번 보고서는 효과 분석이 부족한 가운데 급격히 규모를 키워가고 있는 지역화폐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본격적인 연구와 논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상기시켰다고 볼 수 있다. 즉, 스스로 연구 지속의 의지를 드러내면서 우리 사회에 하나의 의제를 던졌다는 얘기다. 지역화폐의 효용성 유무와 상관없이 그 자체만으로도 해당 보고서는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고 평가받을 만하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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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재명 지사는 보고서 내용이 알려지자 ‘얼빠진’이나 ‘적폐’ 등의 거친 표현을 동원해가며 조세연을 공격하고 나섰다. 보고서 작성 관련자들에 대한 ‘엄정한 조사와 문책’을 거론하기도 했다. 정권과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다른 의견을 가진 이들을 악으로 몰아붙이며 타도해야 한다는 입장을 드러낸 것이다. 그가 현 정권의 핵심이자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 언행에선 살벌함마저 느껴진다.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자발적인 자유 토론도, 국가를 위한 진지한 연구 보고서도 더 이상 생산되기 어려워진다. 이 지사의 언행이 비판을 받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제는 이재명 지사에 국한되지 않는다. 집권 여당의 원내대표는 조세연 비판에 직접 가담하진 않았지만 이 지사 뜻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내년도 예산에서 지역화폐인 지역사랑상품권 발행 규모를 15조원으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조세연 집계에 의하면 올해 229개 지방자치단체들이 발행한 지역화폐 발행 총량은 9조원에 이른다. 현 정부 출범 직전 해인 2016년에 53개 지자체가 1168억원을 발행했던 것에 비하면 엄청난 증가 기록이다.

이재명 지사와 여당의 이런 행태는 독선적이란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특히 이 지사의 언행은 나와 다른 목소리에 귀를 닫는 것을 넘어 의견 개진 자체를 강압에 의해 막으려 한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이 더하다 할 수 있다.

정책을 집행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반대 의견에도 항상 귀를 열어두어야 한다. 그래야 정책 이행 과정에서 나타날 오류를 미리 점검하고 발생 가능한 문제 요인을 제거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 그 이익은 고스란히 시민 개개인에게 돌아가기 마련이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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