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백신 상온노출 사고로 많은 이들이 불안해하고 있다. 불안감은 단순히 사고 백신을 나 또는 내 자녀들이 맞게 되지 않을까 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은 다량의 물량 폐기로 백신 부족 사태가 나타날 가능성을 우려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백신을 서둘러 접종하려는 이들이 몰려들면서 의료기관에 긴 줄이 이어지는 기현상까지 나타났다. 마스크 대란 속에서 약국마다 사람들이 몰려들었던 모습을 연상케 하는 장면들이다.

이런 혼란은 보건 당국의 방역 계획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들 수 있다. 당초 접종에 무관심했거나 독감의 본격 유행 직전에 접종하려 계획했던 이들이 앞다퉈 밀려들면 정작 필요한 이들이 기동력 부족으로 접종 기회를 놓치는 일이 발생할 수 있어서이다.

독감 예방접종을 위해 의료기관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 [사진 = 연합뉴스]
독감 예방접종을 위해 의료기관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 [사진 = 연합뉴스]

올해 당국이 준비한 독감백신의 물량은 유·무료를 포함해 총 2964만명분에 이른다. 전체 국민의 60% 정도가 맞을 수 있는 물량이다. 전문가들은 이 정도를 준비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설명한다. 집단면역을 기대할 수 있는 수준에 어느 정도 맞추면서 예년의 소비량 통계를 함께 감안한 결과라는 것이다.

우리나라만 그런 것도 아니다. 다른 선진국들도 방역 효율성을 따진 뒤 적정 물량을 확보해둔다. 필요한 물량을 준비한 뒤 독감 감염 취약 연령층 등에 집중적으로 투약하는 것이 효율적인 방역이라는 게 정설이기 때문이다. 감염 취약 그룹은 병을 쉽게 얻은 뒤 다른 사람들에게 바이러스를 옮기는 매개 역할을 하기 쉽다. 다만, 올해의 경우 코로나19 팬데믹이란 특수한 환경이 만들어진 탓에 준비 물량이 예년보다 늘어났다.

예년의 사례에 비추자면 올해에도 준비된 물량 중 일부는 폐기처분 수순을 거치게 되는 게 자연스럽다. 물론 상온노출 사고에 의한 다량 폐기가 없다면 그럴 것이란 얘기다. 코로나19가 나타나지 않았던 예년에는 2000만~2500만명분의 독감백신이 공급됐고 그 중 수백만명분은 폐기되는 게 일반적이었다. 유행하는 바이러스가 해마다 달라지는 탓에 독감백신은 해가 바뀌면 쓸모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이번 배송 과정에서의 사고로 얼마나 많은 독감백신이 폐기처분될지 현재로서는 알 길이 없다. 유통업체 주장에 따르면 그 물량은 17만명분이다. 하지만 물백신 논란 외에 안전성까지 고려한다면 이번에 문제가 된 13~18세용 백신 500만명분 전량을 폐기처분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 모두가 차분히 대처해 나간다면 일정량의 폐기까지 예상하고 확보된 지금의 백신물량으로도 웬만큼 수요를 감당할 수 있게 된다. 과도한 불안감이 퍼지지 않는다면 최악의 경우에도 소기의 방역 효과를 100% 가까이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해서 돌발사고 변수를 무시한 채 기존 계획만으로 접종 계획을 진행하자는 것은 아니다. 방역 당국은 가장 혹독한 상황을 상정한 뒤 한정된 물량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분배하는데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독감 백신. [사진 = 연합뉴스]
독감 백신. [사진 = 연합뉴스]

올해 독감 백신을 추가로 공급받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무료접종 대상을 보다 세분화해 더 촘촘한 대응책을 마련해두어야 할 것이다. 무료 접종 대상 연령대롤 재조정하고, 감염병 취약 요인인 기저질환의 종류를 엄선한 뒤 취약 그룹에 집중 투약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중요한 문제는 사회 전반에 퍼진 불안감을 차분히 관리하는 일이다. 그러려면 당국이 치밀한 대응책을 제시함으로써 국민 모두에게 신뢰감을 심어주어야 한다. 무작정 조사 결과를 기다려 보라거나 문제의 백신에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 강조하는 것만으로 혼란이 다스려지리라 여긴다면 그건 큰 오산이다.

문제의 백신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는 기간 중에라도 보건 당국은 새로 보강된 대응책을 제시해 국민들의 혼란을 잠재워야 한다. 그래야만 불안감에 휩싸인 국민들의 마음도 어느 정도 다독여질 수 있을 것이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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