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라는 이름의 로드맵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모든 아파트는 향후 10년, 단독주택은 15년에 걸쳐 시세 대비 공시가격 비율이 90%에 도달하게 된다. 이를 두고 곳곳에서 볼멘소리가 나온다. 정부가 ‘공시가격 현실화’란 미명 하에 사실상 가혹한 증세를 꾀한다고 보는 시각이 많은 탓이다.

논란이 확산되자 정부·여당은 1가구 1주택자의 공시가격 6억 이하 주택에 한해 재산세율을 낮춰준다는 방침을 추가로 제시했다. 정부와 여당은 그 기준을 놓고 줄다리기를 한 끝에 경계선을 6억으로 정했다. 그 이하 공시가격의 주택에 대해서는 3년 시한으로 재산세를 절반으로 낮춰주기로 한 것이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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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시가격 현실화가 사실상의 무차별적 증세라는 반발이 일자 한 발 양보하는 제스처를 취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엔 문재인 정권 특유의 편가르기 심리까지 가세된 것으로 해석된다. 이 방법을 세수에 큰 영향이 없으면서도 내년 4월 재보궐 선거와 관련한 다수의 표심을 자극할 묘수라고 여긴 듯하다.

정부 집계에 따르면 올해 1주택자의 재산세 부과 대상 주택은 1086만호다. 이중에서 공시가 6억 이하 주택이 차지하는 비율은 94.8%다. 다주택자 보유분을 포함한 전체 주택에서 차지하는 1주택자의 6억 이하 주택 비율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유주택 가구원 기준으로 대략 8~9할의 국민에게 하찮은 선심을 베풀면서 나머지 소수를 상대로 대폭 증세라는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정부 로드맵의 내용을 뜯어보면 공시가격 현실화는 가렴주구에 다름 아니다. 보유세 증가 속도가 어지러울 정도로 빨라 정정이 불안한 제3세계 국가의 혁명정부에서나 있을 법한 조세정책이란 생각을 갖게 할 정도다.

연합뉴스가 전문가의 분석을 통해 추산한 바에 따르면 정부 방침대로 갈 경우 공시가 6억~17억 규모 주택의 보유세는 10년 뒤 지금의 3~4배 수준으로 올라간다. 올해 실거래가 17억원인 전용 84㎡ 마포래미안푸르지오 아파트(공시가 10억7700만원)의 경우 2030년이면 연간 보유세가 1314만원으로 상승한다. 올해 납세분 325만원의 4배가 넘는 액수다.

평생 직장생활을 해 이 아파트 한 채를 겨우 장만한 은퇴자라면 국민연금을 몽땅 쏟아부어야 겨우 보유세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집 한 채가 평생을 바쳐 일군 전재산이라면 황당함을 넘어 가혹하다는 느낌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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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의 웬만한 지역에서 같은 평수의 아파트 한 채를 지닌 사람이라면 마포 아파트의 두 배 또는 그 이상을 보유세로 내야 한다. 종합부동산세 부과시 고령자 공제 및 장기보유 공제가 있다지만 투기와 무관한 이들 1주택 보유자들에게는 기가 막힐 일이다. 값의 고하를 막론하고 1주택을 지닌 이들, 특히 장기 보유자들은 부동산 투기와 무관한 사람들이다. 이들이 부동산 시장 안정화 정책의 공격 대상이 된다는 건 그 자체로 모순이다.

공시가격 6억 이하 1주택자에 대한 감세 방침에서도 꼼수가 엿보인다. 여기서 말하는 6억은 작년의 시세를 반영한 올해 공시가다. 대략 작년 시세로 9억을 밑도는 주택이 여기에 해당할 것으로 판단된다. 올 들어 집값이 크게 오른 점을 감안하면 감면 혜택이 주어지는 내년엔 대상 주택의 범위가 지금보다 크게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 모든 점을 종합하면 공시가격 현실화의 본질은 조세법률주의에도 어긋나는 편법 증세라고 볼 수밖에 없다. 어디 그뿐인가. 보유세 부담을 못 견뎌 집을 팔려고 하면 이번엔 만만찮은 양도소득세와 취·등록세가 눈앞을 캄캄하게 만든다. 유일한 해법은 지금보다 싼 집으로 갈아타는 일이다. 미실현 소득에 대한 세금 부담 탓에 주거의 질 하락을 감내해야 하는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이러니 가렴주구 소리가 나오는 것 아니겠나. 가렴주구는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행하는 착취 행위다. 기업의 착취가 죄악이라면 가렴주구는 더욱 광범위한 죄악이라 할 수 있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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