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여당이 또 한 번 편가르기 작업에 나섰다. 이번엔 그 대상이 영남이다. 영남권을 대구·경북(TK)과 부산·경남(PK)으로 갈라 정치적 이득을 얻겠다는 속내가 엿보인다. 정치판에서 편가르기는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는 고약한 술수다. 정도(正道)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정권 들어 편가르기는 일상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그런 시각으로 보자면 여권이 동남권 신공항 이슈를 앞세워 영남을 두 토막으로 가르려 하는 것도 그리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총리실 산하 김해신공항 검증위원회가 사실상 기존의 동남권 신공항 건설안을 백지화하자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기다렸다는 듯 가덕신공항 건설을 위한 특별법 제정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가덕신공항 건설을 정부의 제도적·재정적 지원 하에 속전속결로 밀어붙이려는 게 그 목적이다. 누가 봐도 ‘짜고 치는 고스톱’이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정부·여당의 이런 움직임은 지난 17일 검증위의 발표가 있기 이전부터 감지됐다. 전·현직 총리가 번갈아가며 가덕신공항 건설 방침을 시사한 것이 단적인 사례들이다. 이 건과 관련해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부산을 방문한 자리에서 “(지역민들의) 희망고문을 빨리 끝내겠다”고 다짐했다. 그에 앞서 정세균 현 총리는 부산 현지에서 “부·울·경(부산·울산·경남)의 간절한 여망이 외면받지 않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낙연 대표는 총리 재임시 김해신공항 검증위를 꾸리도록 한 장본인이다.

동남권 신공항 건설 계획은 오랜 논란 끝에 김해신공항을 확장하는 쪽으로 이미 결론이 내려졌다. 이 안을 제시해준 곳은 공항 설계 분야에서 국제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이었다. 4년 전 김해신공항안 확정 과정에서는 영남권 5개 광역시·도의 합의도 한몫을 했다. 이 결정으로 인해 밀양을 내세우던 TK와 가덕도 카드를 고집하던 PK 간의 갈등도 상당 부분 해소됐다.

그러나 이번에 문재인 정부와 여당이 이 이슈를 다시 꺼내들며 사그라들던 갈등에 불을 지폈다. 갈등을 봉합해야 할 집권 세력이 정 반대의 행동을 하고 나선 것이다. 삼척동자도 짐작할 수 있듯이 그 배경엔 내년 4월의 부산시장 보궐선거가 자리하고 있다.

ADPi 실사 결과 가덕도는 세 개 후보지 가운데 꼴찌를 기록한 곳이다. 모든 주요 항목에서 김해나 밀양보다 낮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경제성과 접근성에서 김해공항에 비해 크게 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건설 비용만 놓고 보더라도 김해는 수심 10m 이상을 광범위하게 메워야 하는 가덕도에 비해 훨씬 유리했다. 실사 당시 ADPi는 김해와 가덕도의 공사 비용을 각각 4조3000억원과 10조2000억원으로 추산했다.

접근성 면에서도 가덕도는 김해보다 뒤질 수밖에 없다. 이는 가덕신공항안을 두고 ‘동남권 신공항안’이 아니라 ‘부산 신공항안’이라는 비아냥이 나오는 이유다. 실사를 주도했던 장 마리 슈발리에씨는 최근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가덕도는 태풍이 몰려드는 곳이라서 안전성도 보장되지 않는 곳이라고 강조했다.

총리실 검증위는 이번에 김해신공항안의 문제점으로 ‘확장 불가능’을 지적했다. 그러나 이 부분에서도 가덕도는 김해보다 못하다는 게 ADPi의 판단이었다. 실사 당시 가덕도는 용량 확장성에서도 최하위를 기록했다.

김해냐 가덕도냐를 놓고 보면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어느 쪽이 더 합리적인지 금방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PK 지역 주민 상당수가 원한다는 이유로 가덕도를 밀어붙이는 것은 누가 봐도 난센스다. 이를 논리적으로 해석할 길은 선거용이라는 결론밖에 없다.

부산시의 가덕신공항 수정안. [사진 = 부산시 제공/연합뉴스]
부산시의 가덕신공항 수정안. [사진 = 부산시 제공/연합뉴스]

합리적 의심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내후년 봄에 치러질 대통령 선거에서 또 한 번 재미 좀 보겠다는 심사가 엿보인다. 영남을 둘로 갈라 어차피 보수 야당의 텃밭인 TK를 떼어놓은 뒤 PK를 확실한 지지 기반으로 만들려는 속셈이 작동했을 것이란 얘기다.

특히 고약스러운 건 국민의힘 입장에서도 가덕신공항안을 내놓고 반대하기 어렵다는 점을 노렸다는 사실이다. 부산시장 선거전에 나서야 하는 국민의힘으로서는 잘못된 선택인줄 뻔히 알면서도 끌려가기 십상인 것이 가덕신공항안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국민의힘은 국익과 명분을 좇아 가덕신공항안에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히는 게 옳다. 표 계산을 하느라 어정쩡하게 가덕신공항안에 소극적 찬성 입장을 표하는 것은 당당하지 못하다. 자칫 소탐대실의 우가 될 수 있다.

물론 비판받기로 치자면 정부·여당이 맨 앞자리를 차지한다. 국책사업을 국익이 아니라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악용하는 것은 집권 세력의 도리가 아니다.

기업의 경우 고객의 니즈에 부응하지 못하면 망한다. 하지만 정권은 국민 다수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더라도 물러나면 그만이다. 그 책임은 뒷날 선량한 다수 국민의 몫으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국민들이 두 눈 부릅뜬 채 정부 정책을 냉정히 감시하고 평가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나이스경제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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